배달원의 유서

2021년 02월 06일 00:47 - 33화 -

by 임주형

요즘 매장이든 배달 주문이든 장사가 워낙 안 되다 보니 위험할 일이 없으므로 유서를 쓰는 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 가게의 건물 주인은 올해 71세가 되셨는데 초저녁에 오셔서는 두 시간 만에 친구 한 분과 소주 6병, 맥주 8병을 마셨다. 그것도 모자라서 각 한 병씩 더 달라고 하시기에 곧 21시가 된다고 돌려보냈다. 옆 테이블에 있던 50대 손님들은 건물주인 일행이 떠난 테이블에 남겨진 소주와 맥주 빈병의 개수를 세어 보았다. 그리고는 “정말 대단한 분이시다.”라는 말을 남기고 가게를 나갔다. 사실 50대 손님 중 한 명은 예전에 만취 상태로 우리 가게에서 음식과 술을 먹고는 계산도 안 하고 도망가다 나에게 잡힌 이력이 있다. 계산을 마저 받고 돌려보냈었는데 아마도 만취상태라 기억이 없을 거다. 요즘은 만취한 진상 손님이 그립다. 국밥집의 단점이 있다면 술자리를 하더라도 1차로 오는 게 아니라 2차나 3차로 가게를 찾는 거다. 이미 취해 있는 것은 기본이고 네 명이서 국밥 한 그릇을 시킨다거나, 졸다가 뚝배기에 머리를 박고 뜨거움에 놀래서 깨는 등 가지각색이다. 알코올 중독이라도 주사가 없으면 크게 나쁠 일이 없다. 본인 신체가 망가지는 거지 타인에게 정신적인 큰 피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사가 있다면 큰 문제가 된다. 주변인이 더 빨리 병들기 때문이다. 시달려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가 없다. 대체적으로 알코올 중독자는 거의 주사가 있다. 길을 지나다가 술 취한 사람이 보도블록에 누워 자고 있을 때 경찰에 신고해주는 사람은 그 주사에 시달려 본 적 없는 아름답고 순수한 사람일 거다. 반면 보고도 그냥 지나가는 사람은 지독하게 시달린 사람일 거다. 중국 무술 ‘취권’이라는 게 진짜로 있는지 절대 쉽게 안 죽는다. 개인적이지만 나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정량의 알코올을 섭취하게 됐을 때 변하는 눈빛이 싫다. 그래서 몇 안 되는 친한 친구들도 술을 못 마신다. 아니 안 마신다. 마시면 다들 마지막까지 살아 있을 정도로 강하지만 그냥 술이 주는 피해가 싫은 거다. 주사에 시달려 본 이력 있으니까 말이다. 그녀도 술을 좋아한다. 오래전에 ‘무인도에 가서 같이 살면 어떨까?’라고 물었을 때는 곱창과 술이 없어서 싫다고 거절하기도 했었다. 얼마 전에 대뜸 연락만 오지 않았더라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요즘 솔직히 조금 예민한 상태다. 내가 정해놓은 내 주량은 맥주 한 캔인데 지금 편의점에 가서 한 캔 사 와서 마시고 싶을 만큼 괴롭다. 인정한다. 몇 개월 걸릴 거다. 다른 여자가 잔잔한 울림이라면 이 여자는 멈추지 않은 화산 폭발이다. 유독 그렇다. 정말 미우면서도 안개꽃을 선물하고 싶고 타이르면 변해줄 것 같으면서도 절대 변하지 않는 여자다. 이 여자 이야기를 다루고 싶지 않은데 현재 내 감정 비중이 크고 다루지 않으면 답답해서 그러니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아무튼 이제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잘 버티던 가게들도 무너질 시기가 왔다. 폐업하는 가게가 매일 눈에 보일 정도다. 지금까지 예행연습이었다면 앞으로 몇 개월간은 경제가 크게 흔들릴 거다. 가게 근처에 중식집이 새로 들어서고 있는데 우연히 그 앞을 지나는 중에 그 가게 사장님이 말을 걸어왔다. 오토바이는 얼마인지, 요즘 코로나 때문에 배달이 늘어서 좋은 거 아닌지 등을 물어왔는데 장사를 뜯어말리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그 해맑은 모습에 “버티면서 하는 것 아니겠나요?”라는 말로 둘러대며 자리를 피했다. 지금은 기적과 신화를 바라며 장사를 시작하는 것은 어리석은 판단이다. 진짜 자신이 있거나, 실력이 있어도 시작하면 괴로워질 거다. 무언가를 팔아서 남아야 하는 게 장사다. 그렇지만 당분간은 아니다. 돈을 좇지 않으며 손실을 보지 않고 버티는 것이 요즘 장사다. 마음가짐을 바꿔야 한다. 코로나 19 이전에도 마진율이 거의 없어서 뿌듯함만으로 장사를 이어왔기 때문에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사태가 더 이어진다면 아마도 걱정할 일이 보다 많이 생길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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