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이 안 되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전문성이나 감성, 아니면 창의력 등의 이유보다는 내가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들의 공감을 누구에게도 끌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만약 이것이 부정적인 생각이라면 특별한 미운오리새끼라는 말인가? 그것도 아니다. 글 쓰는 것에만 여가 시간을 또 한 번 몰두하게 된다면 내 세상에 빠져서 모든 인간관계가 끝날 것만 같았다. 그 때문에 제법 장문의 글을 써야 하는 브런치를 오래 멀리 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글을 좀 써보고 싶다. 내가 내 세상에 빠진다는 게 나쁜 것이 아니겠다는 결론이 생겨서다. 타인에게 피해 주는 것이 아니기에 이보다 의미 있는 삶이 또 있을까?
브런치에서 활동하는 콘셉트를 지금 정하고 싶다. 글 쓰는 배달원? 글 쓰는 국밥장수? 아니면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볼까? 세 권의 저서 중 두 번째 저서를 배달원 콘셉트로 출간했다가. 너무 안 팔렸다. 원래 무명작가가 어렵다. 내가 만약 엄청 유명한 유튜버라 3일 만에 원고를 쓰고 출판사로 넘겨 편집자님들이 알아서 책 한 권을 만들어줬다고 가정했을 때 평은 안 좋더라도 책은 순식간에 팔려나갔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출간한 책 세 권 모두 각 1,000부조차 판매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양면의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책이 세상에 나왔다면 어떻게든 팔아야 한다는 것이고, 다음 한 가지는 내가 진심을 다해 쓰고 싶은 내용을 담았으면 그것으로 됐다는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책은 안 팔릴 수도 있지만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책은 내 글을 썼음에도 더 많이 판매될 수도 있다. 이 점을 인스타그램이라는 sns에서 느꼈다. 유저들이 좋아할 만한 글을 썼을 때 반응은 좋겠지만 필자의 정체성을 잃게 되는데 언제가 알고리즘이 자신에게서 돌아섰을 때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만들어지고 어쩌면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서른 즈음에"라는 제목이 어떨까? 단순히 무난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물레방아 같은 하루를 보내지만 그 속에서 보고 느꼈던 흘러가 잊힐 것들을 메모해 뒀다가 남겨보는 것이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고 해도 카카오는 망할 회사가 아니기에 오랜 시간 남아있지 않을까? 그래, 20대에 대부분을 남기지 못하고 흘려보냈다. 죽자고 너무 빨리 달려서일까? 웃긴 것은 30대에는 더 빨리 달려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테이블 4개짜리 아주 조그마한 국밥집에 어머니와 둘이서 지난 5년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세대차이로 인한 다툼의 내용, 진상 손님 내용, 너무 힘들어서 어딘가 기대고 싶은 내용, 조금의 장사 철학까지 결국 지나갈 시공간이기에 와중에도 훗날 도대체 나는 무엇을 남겼는지, 그때 내 어머니는 세상에 계신지, 또 왜 그랬는지 과거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유서를 종종 쓰는 편이다. 직업의 특성으로 인해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준법을 준수하고 일반 운전자들에 비해 몇 배 높은 시야의 폭과 센스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 교통사고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남겨두는 것이다.
내 글을 읽다 보면 어떨 때는 부드럽고, 어떨 때는 냉철하고 또 어떨 때는 날카롭다는 것을 미리 알려둔다. 그것을 구분하고 싶지는 않다. 내 기분에 달린 거니까. 필자가 그마저도 컨트롤할 때 프로가 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아마추어로 남는다. 그렇지만 아마추어가 안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대로의 낭만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글을 잘 못 쓰지만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독자가 물어올 때면 두 가지 내용을 알려주고는 했다. 첫 번째는 괴로울 때 쓰는 글은 가슴으로 읽히고 평온할 때 쓰는 글은 편하게 읽힌다. 완벽에 가까운 글이 나오려면 괴로울 때 써놓고 평온할 때 수정을 하면 되는 것이다. 두 번 째는 자신의 반성이다. 언제나 나를 기반으로 반성할 때 가장 큰 울림의 글이 나온다. 지금까지 내가 글을 썼을 때 느낀 두 가지다. 또 언젠가 수정되거나 세 번째, 네 번째가 생길지 모르지만, 이것이 글을 쓰고 남기는 가장 큰 사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은 감성 시인이 되고 싶었다. 짧게는 두 줄 길어봤자 여덟 줄 짧고 강한 시를 쓰는 그런 청년이 되고 싶었다. 그때는 내 영혼이 아주 맑았던 것 같다. 점점 글이 길어졌고 나이 드는 것을 느꼈다. 글을 많이 쓰면 장단점이 있다. 내면이 풍부하게 성숙해진다는 것과 또래와의 공감대에서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짧은 시와 글귀만 다룰 때는 또래 친구들이나 짧은 글만을 원하는 독자들이 많이 좋아해 줬던 것 같다. 지금은 최소 가방에 한 권의 책을 넣어 다닐 만큼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만 남았다. 솔직히 그 과정과 기간이 너무 외로웠다. 나는 왜 안 될까?, 내가 어떻게 하면 될까?를 왔다 갔다 하며 사투를 벌이고는 했는데 부정에 항상 1% 차이로 패했다. 그렇지만, 지금 나온 결론은 "되든 안 되는 솔직히 상관없다."다.
글쎄 이 내용은 사실상 에필로그에 가깝다. 매일 쓰지는 못해도 조금씩 써 나가면서 죽어 있던 필력을 살려볼 계획이다. 최상이라 해봐야 간신히 읽어줄 정도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내 소개를 섬세하게 하지 않은 까닭은 나중에 소재가 없을까 봐. 그게 조금은 두려워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