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나쓰메 소세키), <괴물>(고레에다 히로카즈)
마음
1.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
2.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
3. 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나 위치.
국어사전에서 정의한 ‘마음’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2,3번처럼 사람이 느끼고 가지게 되는 생각과 감정의 양태를 마음이라 칭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마음의 정의는 1번과 같은 ‘본래적 품성‘으로 나타내어지곤 한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또한 개개인들이 각자만의 형질로 지니는 성향, 가치관, 감정과 이성. 마음은 그러한 추상적인 인간성을 명료화하여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인간의 이러한 본래적 품성은 주변에 긍정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만은 아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개개인의 마음은 무수히 충돌하고 깎여나간다. 그로 인한 상처는 외부를 향하기도 하며, 내부에서 스스로를 곪아가게 만들기도 한다. 복잡하며 다층적인 인간의 마음은 자기 자신 역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기에,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 헷갈려 하고 괴로워하기도 하며 일렁이는 촛불처럼 불안해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은 인간의 마음의 형질과 그에 대한 인간의 고뇌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중 인물인 ‘선생님’은 과거 자신의 친구였던 K가 자살한 후, 끝없는 자책과 불안을 겪는다. 그러한 고뇌의 이면에는 K가 좋아하던 여인을 좋아했던 자신의 마음과, 그러한 마음으로 인해 K를 배반하여 그가 자살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이 자리한다. K의 감정을 알았지만, 여인을 향한 자신의 마음으로 인해 그의 사랑을 방해하였다는 사실은 선생님으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에 대해 반추하며 괴로워하게끔 만든다. 결국 선생님은, 메이지 시대에 천황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에 할복한 노기 대장의 순사에서 자살이라는 속죄의 방식을 결심하게 된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본래적 마음과 그로 인해 상처를 주게 된 이들에게 잘못을 뉘우치고자 하는 것이다.
소세키의 문학 전반에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반성과 속죄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여야 한다는 ‘인간의 도리‘에 대한 지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극단적인 방식일지라도 인간으로서의 마음을 지켜내야 한다는 소세키의 의식은 일본을 비롯한 근대 사회의 전반적인 윤리적 덕목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한층 다층화된 구성원들과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의 발현 속에서 당위성은 점점 사회 전반을 포괄할 수 없게 되었다. 본래적 품성이라 여겼던 마음은 온갖 끔찍한 범죄와 혐오 속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회의적 의문의 씨앗이 되었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악마와 같은 존재인가. 존재론적 의문을 수렴하며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현대의 예술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마음이란 게 있는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2023)은 현대 일본 사회의 모습을 다룬다. 작중 인물들인 미나토와 요리, 초등 교사인 호리와 미나토의 엄마인 사오리, 교장인 미카코 등은 저마다의 마음들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호리는 아동학대라는 누명으로 해임당하며, 요리는 가정학대를 당하고 미나토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사오리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상처를 삭이며 미카코는 손녀를 잃은 슬픔과 루머들 속에서 고통을 겪는다. 모두가 피해자이며 또한 가해자인 이들은 본래적 품성인 마음이라는 근거를 통해 선과 악을 구별짓던 기존의 잣대를 무너뜨린다.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이라는 게, 본래적인 게 있기는 한 것인가.
영화는 그에 대한 답을 명확히 제공하지 않는다. 마치 양자역학처럼 들여다보기 이전에는 중첩된 상태로 공존해 있는 마음을, 관객은 단지 일어난 행위를 통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는 자생한 의문을 해결하지 않고, 의문 자체를 이끈 채로 관객을 눈부신 햇살 아래로 초대한다. 폭우가 쏟아진 후, 미나토와 요리가 서로의 손을 잡은 채 향한 풀밭을 수놓는 황금빛의 물결을 통해 영화는 말한다. 인간의 마음은 알 수 없으나, 폭풍이 지나가고 해가 뜨듯 우리는 결국 희망을 향할 것이라고. 살아남은 아이들을 향한 볕은 그 희망의 이름을 삶으로 나타낸다. 소세키의 마음에 대한 대답이 죽음을 통한 속죄였다면, 히로카즈의 마음은 그럼에도 살아가는 삶이다. 근대의 새벽을 지나 현대의 아침이 되어, 해는 다시금 떠오르는 것이다.
마음의 제1 정의는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이다. 그러나, 그러한 본래성이 인간 존재에 우선해야 하는 시대는 막을 내렸다. 긴 터널을 지나 마주한 햇빛 아래,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있으며, 또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마음이라는 추상성을 에워싸는 인간 존재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 우리는 비로소 희망을 향한 싹을 틔워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