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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현석 Feb 06. 2024

영원한 순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리뷰

그런 순간이 있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다. 그 순간, 주변의 모든 게 멈춘 것처럼 느리게 흘러간다. 시공간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고 모든 게 소거된 흰색 도화지 속엔, 방금 전 눈이 마주친 그 사람만이 존재한다. 찰나의 순간, 우리는 마치 우주에 다녀온 듯 무중력의 현상을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순간에 자리한 우리의 존재를 향해 수많은 과거와 미래가 틈입한다. 어제 술 마시고 했던 실수, 저번 달 생각 없이 했던 쇼핑, 내일 출근과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과제까지. 후회와 미련, 불안과 두려움이 매 순간 현재의 시간을 채운다. 문득 정신을 차린 채 시계를 확인했을 때엔, 속절없이 과거가 되는 지금을 마주할 뿐이다. 그렇게 우리의 존재와 삶 사이에는 시차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의 불일치가 해소되는 경우가 있다. 끊임없이 흐르던 모든 것들이 멈추고 머릿속을 가득 메우던 생각들의 초점도 현실에 자리할 때, 멍한 머릿속을 파고드는 건, 마찬가지로 같은 현재를 공유하는 눈앞의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의 온기와 향기, 언어와 숨결은 빠르게 지나가는 순간에 제동을 건다. 1초가 1년이 되고, 순간이 영원이 되는 변주 위에 비로소 우리는 삶을 감각한다. 항상 옆을 지나 흐르는 줄로만 알았던 시간은 뱀이 똬리를 틀듯 한데 모여 눈앞에 자리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속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역시 순간의 영원을 경험한다. 초상화를 그릴 때 모델이 정지한 채 자리하듯, 멈춰버린 세계 속에는 그녀들만이 자리한다. 가쁜 숨과 섞이는 시선은 서로가 공유하는 순간이 같음을 증명한다. 화가가 모델을 보듯, 모델도 화가를 본다. 서로는 상대를 보며, 동시에 서로에게 비친 자신을 바라본다. 너와 나의 구분이 사라지며, 초상화 속 그녀는 엘로이즈이면서도 마리안느를 닮는다. 그렇게 둘은 사랑을 발견한다. 혹은, 그들이 발견함으로써 사랑이 발생한다.


그녀들은 결국 헤어진다. 정해진 이별을 거스르기에 현실은 견고하며, 타오르는 사랑은 엘로이즈의 옷자락을 태우지 못하듯 연약하다. 그러나, 이별이 존재하는 사랑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마지막 순간, 엘로이즈는 마리안느를 돌아보게 한다. 그녀는 사랑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에우리디케는 결국 오르페우스와 이별한다. 하지만, 이별의 필연은 사랑을 증명한다. 그렇게 깨달은 둘은, 이별을 받아들인다. 다시 영원이 순간이 된다. 1초는 본래의 간격을 얻는다. 그러나, 서로의 머릿속을 채우던 과거와 미래는 조금 달라져 있다. 후회는 기억으로 대체되고, 그날의 감각들은 여전히 머물러 있다. 서로를 그린 초상화를 통해 그녀들은 다시금 그때를 떠올린다. 기억은 과거에 있지만, 사랑은 기억을 현재로 불러온다. 그렇게 그녀들은 현재를 살아간다. 끝없이 사랑하고, 기억하면서.


눈을 감으면 그 사람이 생각난다. 그날의 향기가 코끝에 머무르고,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분홍빛 입술이 움직이며 입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이 선연하게 그려진다.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고 한데 모인 빛은 그 사람을 오롯이 비춘다. 무중력을 경험하듯 두 발이 뜨는 느낌과 함께 기분 좋은 어지러움에 몸을 바보처럼 가누게 된다.


그런 순간이 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20), 출처 : 그린나래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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