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의 해부> 리뷰
AI 요약: 웹페이지나 기사를 빠르게 요약하여 전체 내용을 읽지 않고도 내용의 요점을 파악.
출처 : 갤럭시S24 시리즈 10대 AI 기능, 란즈크
삼성 갤럭시 시리즈의 신형 모델은 AI 기술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 중, 긴 기사나 웹상의 내용을 요약해주는 기능이 눈길을 끈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밀려드는 정보들을 적당히 사용하기 위한 선별 작업은 이제 AI에게 맡기는 추세이다. 인공지능이 적당히 거르고 요약해 준 정보는 오마카세처럼 접시에 잘 세팅되어 몇 줄의 형태로 사용자에게 제공된다. 이제 몇 문단에 이르는 긴 글을 구태여 시간을 들여가며 읽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혁신적이지는 않다. 매체의 주류가 영상으로 넘어가면서, 벽돌처럼 두꺼운 책도 15분가량의 미디어 형태로 요약된 채 전달하는 시대가 도래한 지 오래다. 지식과 정보가 보편화되고 효율성의 가치가 대두됨으로써, 빠르게 요점만 파악하고자 하는 수요가 급부상하였다. 웹사이트를 가득 채운 기사들은 헤드라인만 읽어도 대강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모 연예인의 불륜, 모기업의 비리, 정치와 경제, 세계의 여러 소식들을 훑는 데 더 이상 몇 시간이나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체계성과 진실의 미덕은, 현대에 이르러 압축과 요약의 미덕에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쉽고 간편하게 필요한 것들을 소유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된 시대. 그렇다면 구성원의 행복도 그만큼 신장하였는가를 따져보면 의문이 남는다. 만연한 갈등과 혐오, 몰이해와 비난은 형태를 달리하였을 뿐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현상이다. 중세 시대의 마녀사냥은 단지 공간이 가상으로 이동하였을 뿐, 여전히 즉결 심판을 외치며 색출과 단죄를 지속한다.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 <주홍 글자>는 나무위키 상에서 ‘논란 및 사건사고‘로 환생하였다. 몇 줄의 문장과 온라인상에 떠돌아다니는 사진 몇 장으로 사건의 진위와 인물의 성격을 명징하게 파악할 수 있는가. 만인의 배심원이 된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은, 판결이 사회의 건강과 합치되지 않는 현실에 점차 의문을 갖게 된다. 그들 앞에 어느덧 법정의 정당성에 관한 논제가 대두된다. 과연, 우리는 요약된 정보로 타인을 판단할 수 있는가. 그 전에, 타인에 대한 판단은 정당한가.
영화 <추락의 해부>(2024)는 법정물이다. 이러한 장르의 대부분은 사건의 진위를 가려내는 데 중점을 둔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영화인 <12인의 성난 사람들>(1957)을 비롯하여, 무수한 영화들이 범인과 진실을 가려내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관객들의 시선을 비튼다. 카메라는 판사의 의사봉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 핸드헬드 기법을 통해 가벼운 흔들림을 일으키며 카메라는 피고인인 산드라를 바라본다. 재판이 지속되며 산드라의 부부 생활이 점차 드러나고, 선악의 경계를 지으려는 검사의 시도는 점점 무의미해진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법정물에서 진실을 지워버린다. 관객은 사라져버린 목적지 앞에 선 채, 비로소 자신이 지나온 길을 바라보게 된다.
영화 속에서 결국 선고는 내려진다. 하지만, 흔한 법정물의 판결이 주는 시원함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낱낱이 파헤쳐진 인물의 삶 앞에서 뜻 모를 불편함이 자리한다. 앞을 못 보는 아이의 입을 빌려, 감독은 진실이 ‘선택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진실과 진리가 동의어였던 기존의 문법을 영화는 비틀어버린다. 그것도, 진실을 그 무엇보다 진리화하였던 법정이라는 장소에서. 진실이 소거된 법정에는 결국 인간이 남는다. 진실을 좇던 관객 앞에는 그저 인물 자체가 남게 되며, 이는 영화가 전달하는, 삶이라는 긴 이야기에 대한 요약이다. 장장 2시간에 달하는 예술의 결론은 판단의 부재와 인간의 실존이다.
우리는 판단의 재료를 너무나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앞서 산드라의 경우도, AI 서비스를 이용하면 몇 줄의 정보로 쉽게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요약된 정보가 산드라의 삶과 사건의 진실을 전부 나타내어 줄 수는 없다. 인간은, 그리고 삶은 어떤 잣대에 따라 명료하게 나누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들여 자세히 바라보아야 한다. 직접 느끼고 공감하며 이해함으로써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 배심원석은 피고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내쉬는 공기가 섞이며, 서로를 감각할 수 있는 거리에 머무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