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무엇인가? - 로댕의 생각 (로댕 저) 리뷰
나홍진 감독의 단편 <완벽한 도미 요리>는, 제목 그대로 완벽한 도미 요리를 만들기 위한 인물의 고투를 그려낸다. 흡사 실험실과 비슷한 주방에서 복잡한 수식과 과학적 지식으로 요리를 계획한 요리사는, 그러나 잇따른 요리의 실패 속에 점차 광기에 휩싸이게 된다. 치밀한 계량과 배합은 점차 무질서하게 뒤섞이며, 급기야 요리사는 손가락을 자르는가 하면 자신의 눈알을 뽑아 재료로 사용하기에 이른다. 요리는 점차 완벽을 향해 가고, 동시에 요리사는 점차 죽음으로 향하는 파괴에 이른다.
인간이 완벽을 동경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아마도, 삶이 유한하며 죽음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난 이후일 것이다. 출생과 동시에 시간의 법칙 아래 지배받는 인간은, 내재한 불완전성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한 노력을 이어간다. 죽음을 유예하기 위해 치료를 받고 운동을 하며, 결핍을 충족시키고자 기술을 개발하며 진보를 향해 간다. 그러나, 그럼에도 언젠가 경험할 죽음은, 완벽함이라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임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필멸성은 두려움을 느끼게끔 한다. 삶에 내재한 깊은 공포의 근원은, 결국 맞이할 죽음에 대한 감각인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은 완벽함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집착이 가능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완벽함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눈앞에 현현하는 완벽함은 경외감과 더불어 불신을 야기한다. 종교의 서사에서 메시아가 핍박받는 존재로 그려지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신으로 표상되는 완벽함은, 불완전한 인간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상이다. 완벽한 존재 앞에서 인간은 대상의 거세된 죽음을 본다. 그리고, 이는 반대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죽음을 마주한 인간은 내재된 공포를 느낀다.
로댕의 <청동시대>(1876)는 이러한 인간의 공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청동 상으로 제작된 인물의 골격과 외피, 곡선과 동세는 흡사 실제 인간과 같은 생동감을 자아낸다. 고정된 정물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기운은 죽음이라는 한계를 극복한 존재의 이상을 드러낸다. 그리고 관객은 정물의 완벽함 너머로 자신의 필멸성을 투영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작품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진다. 1870년 살롱전은 로댕의 작품에 대해, 너무 완벽하게 인체를 표현해 내고 있기에 살아 있는 인체를 그대로 형을 따낸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제기하며 비난한다. 완벽에 가닿은 예술은 역설적으로 부재한 죽음의 기운을 풍기기에, 공포는 불신과 경외를 동시에 추동한다. 로댕은 이 작품에 대해 생동함의 가치를 강조하며 항의했지만, 결국 <청동시대>는 살롱전에서 낙선되었다.
영화 <완벽한 도미 요리>의 결말은 요리의 완성으로 귀결된다. 눈알이 뽑히고 노쇠한 요리사는 완성된 요리를 들고 손님에게 다가간다. 식탁의 저편에는 시간의 법칙 아래 죽음에 다다른 손님의 시체가 놓여 있다. 요리사는 요리를 내려놓고 음식을 입에 갖다 대보지만, 결국 역시 죽음에 이르게 된다. 두 시체를 사이에 둔 완벽한 도미 요리는 강한 죽음의 기운을 풍긴다. 마치 로댕의 조각처럼, 죽음의 공포와 완벽함이 뒤섞인 존재는 그렇기에 찬란하고 아름답다. 그러한 점에서 예술이 구가하는 아름다움은 죽음에 대한 맹렬한 분투로 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멸의 존재가 꿈꾸는 불멸의 이상은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며, 조각가로 하여금 돌을 깎도록 한다. 그러는 동안 죽음은 서서히 그들에게 스며들며, 이 가학적인 딜레마 속에서 우리는 어떤 야릇한 쾌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