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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현석 May 03. 2024

챌린저스

관계의 매개

* 영화 <챌린저스>(2024)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낮의 작열하는 코트 위, 우렁찬 관중의 함성과 심판의 휘슬 사이의 공백을 거친 숨소리가 파고든다. 팽팽한 근육은 햇빛이 훑고 간 자리마다 새빨갛게 그을려 있고, 힘줄과 살갗이 만드는 골을 타고 끈적한 땀줄기가 흐른다. 뒤축이 들린 발이 지면에서 떠오르는 순간, 라켓이 허공에 곡선을 그리는 동시에 총성 같은 소리가 울리며 초록빛 공이 네트 위를 지난다. 긴장된 균형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우며, 그 필연적인 붕괴의 가능성이 공처럼 코트 사이를 빠르게 오간다.


반복되는 랠리와 흐르는 시간 속, 관중들은 점점 공 자체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플레이어의 위상, 경기의 서사, 경기장 안팎에 흐르던 욕망과 집착의 관념은 점차 휘발하며, 그 공허의 자리엔 부지런히 공을 좇는 시선과 선수의 몸짓, 거센 숨결만이 흐른다. 현상화된 경기 안, 대상의 개별성은 상실되며 그럼에도 이어지는 랠리를 지배하는 것은 유일하게 의미를 지닌 대상, 공이다. 힘이 작용하는 한, 구체(球體)는 영원히 회전하며 움직인다. 그것은 구체의 숙명인 것이다. 그리고 그 숙명은, 주먹만 한 작은 정물로 하여금 현상의 흐름을 추동하게끔 한다. 랠리는 계속되며 공은 부지런히 네트 위를 넘나들고, 마주 선 플레이어들은 시시포스처럼 끝없는 원형의 숙명을 이리저리 굴려보낸다.





Game 1 : 플레이어


타시(젠데이아)는 의심할 바 없는 스타다. 모두의 선망이자 매혹의 대상인 그녀는 둘도 없는 절친이었던 패트릭(조쉬 오코너)과 아트(마이크 파이스트) 사이에 나타난다. 그녀의 존재는 두 남자의 긴장을 유발한다. 곧이어 그들은 그녀를 둘러싼 긴 랠리를 시작한다. 아트는 타시와 사귀는 패트릭을 질투하고 이간질을 시도한다. 패트릭은 타시 앞에서 아트에게 배신당한다. 그들은 타시라는 공을 부지런히 주고받으며 긴 랠리를 이어간다.


아트와 패트릭 역시 랠리의 공이 되기도 한다. 패트릭과 타시의 긴장 관계를 휘젓는 건 아트의 비상과 추락이며, 아트와 타시 사이를 드리우는 불안은 패트릭의 존재이다. 코트 위의 플레이어였던 세 인물은, 각자의 복잡한 관계 속 서로의 공이 되어 기나긴 랠리를 추동한다. 네트 위를 넘나들며 끝없이 회전하는 공처럼, 그들은 어느 순간 자기 통제력을 잃어버린 채 몰아치는 타격에 이리저리 휘둘린다.



Game 2 : 휴대폰


패트릭은 삼류다. 욕망 본질의 추동 아래 움직이는 삼류는, 그렇기에 솔직하고 위험하며 매혹적이다. 그가 욕망이라는 삼류의 기름을 주입하는 수단은 휴대폰이다. 그는 쉴 곳과 성욕을 해소하고자 랜덤채팅으로 파트너를 찾으며, 은밀한 거래를 제안하고자 타시에게 연락처를 건넨다.


타시는 일류다. 일류는 포장된 욕망을 원료로 삼아 작동한다. 일류는 고상하며 진취적이고, 동시에 위태롭다. 일류의 기반을 구성하는 욕망은 철저히 감춰져야 한다. 허울이 덧입힌 욕망은 부식되기 마련이다. 벗겨진 칠 너머로 욕망이 새어 나오는 순간, 일류는 추락한다. 그러한 점에서, 일류와 삼류는 서로 닮았다. 타시의 욕망이 새어 나오는 곳 역시 휴대폰이다. 모니터 속 아트의 소식과 기사, 게임 체인저라 명명된 그들의 사진은 일류를 이뤄낸 욕망의 발원지이며, 패트릭의 전화번호가 눌리는 타시의 휴대폰은 일류와 삼류의 공통된 욕망이 뒤섞이는 경유지이다. 휴대폰이라는 공은 부지런히 코트를 오가며 일류와 삼류가 펼치는 랠리를 지배한다. 그들은 욕망이라는 라켓을 휘저으며 난폭한 굉음과 함께 서로를 탐하고 멸시한다.



Game 3 : 카메라


영화 속 카메라의 움직임은 정신없다. 코트 아래 신경전을 펼치는 아트와 패트릭을 잡을 때, 카메라는 마치 랠리 중인 공처럼 네트를 넘나드는 듯한 동선을 그린다. 인물 간의 갈등 상황에서 카메라는 쉴 새 없이 각각의 얼굴을 포커싱하며, 다발적인 사건들을 끊임없이 종횡무진하기도 한다.


카메라라는 공을 사이에 둔 플레이어들은 다양하다. 인물과 사건, 갈등과 욕망 등. 그러나, 카메라가 가로지르는 대상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시간이다. 카메라는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빠르게 오고 간다. 과거 애인이었던 패트릭과 타시의 관계와 현재의 애증을 가로지르기도 하며, 아트와 패트릭의 사이가 좋았던 유년과 멀어진 현재를 활주하기도 한다. 그들의 끝없는 과거와 현재를 담아내는 카메라는 시공간의 제약이 소거된 코트 위의 법칙을 대변한다. 모든 건 관계되어 있으며, 그러나 하나 될 수 없다는 것을. 이 불협화음은 카메라라는 공의 움직임과 함께 랠리와 영화를 이끌어나간다.



Match Point : 챌린저스


마지막 스코어, 이 점수 하나면 경기가 매듭지어진다. 패트릭은 라켓을 목뒤로 두 번 넘긴다. 아트는 그들의 오랜 약속을 떠올리며, 패트릭이 타시와 관계했으며 이 경기엔 모종의 거래가 이루어졌음을 깨닫는다. 휘발되었던 관념이 진실이라는 실체로 아트 앞에 자리한다. 비로소 코트를 흐르는 현상이 감각된다. 욕망과 불안, 진실과 허위. 아트는 절망하고 패트릭은 체념한다. 랠리를 지배하는 공은 더 이상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마주한 현실 앞에 그들은 그간의 랠리를 끝마치고자 결심한다.


랠리를 끝마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랠리를 해야 한다. 두 플레이어는 라켓을 잡는다. 공을 허공에 띄우고, 라켓을 휘저으며 공을 날려보낸다. 그 순간, 공으로 존재했던 그 모든 것들이 해방된다. 인물들은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되며, 드러난 욕망은 해소되어 사라져버린다. 카메라는 공을 벗어나 전지적 시점으로 랠리를 비춘다. 공이라는 연료가 소실된 경기는 이제 플레이어들이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목표는, 이 지난한 랠리를 끝내는 것이다. 공이 네트 위를 스치고, 역시 네트 위를 비행한 인물들은 서로 뒤섞인다. 드디어 경기가 끝나고, 관중들은 환호한다. 공이 있던 자리에는, 뜨겁게 껴안은 서로만이 존재한다. 시시포스가 자기 의지로 공을 굴리기 시작하듯, 그들은 스스로 랠리의 중심으로 자리한다. 작렬하는 함성 아래 이 오랜 경기는 비로소 끝을 맞이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팽팽하게 펴진 허벅지 근육과 잔뜩 긴장한 팔뚝. 꽉 쥔 손안의 라켓 속 그물은 빛을 받아 저마다 반짝인다. 일그러진 얼굴에선 원초적 힘의 발현에서 나오는 고통과 쾌락이 공존한다. 거칠고 탄력적이며, 또한 부드러운 그들의 몸짓에는 다른 그 어떤 의미도 틈입하지 못한다. 공이 사라지고 경기가 의미 없어진 코트 위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무용한 춤사위는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들은 도전자들이며 플레이어들이고, 랠리이자 테니스이며 하나의 영화이자 빛나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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