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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현석 May 05. 2024

유전

<유전>(2018) 리뷰(스포일러 포함)


문화사학자 피터 게이(Peter Gay)는 저서 <모더니즘>에서 19세기 심령술의 유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한다.


서유럽 문명에는, 원시 신앙에서부터 복잡한 논리적 난도질에 이르기까지, 타로 카드와 탁자 움직이기에 몰두하는 강신술에서부터 설명되지 않은 심리적 현상에 대한 사이비 과학에 이르는 잡다한 심령술들이 넘쳐났다. 신성한 구세주에 관한 기독교 전설과 인간 세상에 그가 잠깐 출현했었다는 이야기, 생각해 보면 실제로 일어날 법하지 않은 그 이야기들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자연과학이라는 냉담하고 무감각한 물질주의를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던 수천 명이, 교육을 받았든 안 받았든 간에, 그 잡다한 심령술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잡기로 한 것이다.

<모더니즘>(피터 게이), p59


19세기는 혼란의 시기이다. 과학이 부흥하며 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퍼지고, 전쟁이 발발하며 역병이 창궐하고 부조리한 죽음들이 이어졌다. 이성과 믿음의 양 극단에 자리한 과학과 종교는, 삶의 불행과 부조리를 막아주기는커녕 그 근원을 우연과 운명으로 돌릴 뿐이다. 삶의 주체성을 상실했다 여긴 수많은 이들은, 비극적인 죽음과 지난한 인생을 스스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망에 들끓었다. 그리고, 이 본능을 심령술과 사이비, 신화가 통렬히 꿰뚫었다.


심령술의 핵심은 이해와 개입에 있다. 알 수 없던 비극의 이유가 유령의 존재였다는 사실은 수수께끼를 밝혀낸 것만 같은 쾌감을 준다. 뒤이어, 의식을 통해 죽음과 유령을 마주하는 행위는 베일에 싸여 있던 삶의 방식에 직접 개입한다는 느낌을 갖게끔 한다. 죽은 이들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지령을 받아 삶을 주체적으로 수호한다는 매혹은, 지식과 재산의 유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을 광기에 휩싸이도록 하는 결과를 낳는다. 심령술을 추동하는 것은, 정신력이나 사회적 조건의 여부가 아니다. 바로, 인간의 본질적인 불완전함과 그로 인한 불안이다. 심령술은 인간의 불안을 철저히 파고든다.


영화 <유전>(2018)은 인간의 이러한 불안과 심령술의 역학관계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부조리한 죽음에 슬픔과 무력함을 느끼는 애니(토니 콜렛)는 심령술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파이몬의 신화와 이웃에게 전수받은 의식은 그녀로 하여금 삶의 거대한 작동 원리를 파헤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미니어처를 조형사인 그녀는, 심령술이라는 도구로 삶이라는 디오라마를 조각하고자 결심한다.


그녀의 이러한 노력은, 물론 비극이라는 결말로 이어진다. 과학과 이성을 대변하던 남편은 불길에 산화되고, 트라우마에 허덕이던 아들은 죽음의 경계에서 정신줄을 놓아버린다. 자기 자신 역시 파이몬의 온전한 강림을 위해 목숨을 끊기에 이른다. 그녀가 스스로 망가뜨린 디오라마처럼, 그녀와 가족의 삶은 파탄에 이르며 상실된 삶을 허위와 관념의 신화가 에워싼다. 결말의 신나는 음악은, 악마의 시점에서 온전한 해피 엔딩인 것이다.


심령술은 개인이 삶의 법칙을 이해하고 통제해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필연적인 비극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심령술의 필멸성은 바로 본질의 외면에 있다. 삶의 작동 방식이 바로 우연과 부조리 자체에 있다는, 인간의 주체성이라는 것이 위태로운 토양 위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심령술은 무시한다. 스스로 제어하고 앞서나간다 여기던 인간은, 그러나 어느 순간에 이르러 통제할 수 없는 극단을 추동하게 된다. 그 기저에는 허상적 존재에 온전한 믿음을 의탁한, 역시 인간의 불완전성과 불안이 자리한다. 대개의 사이비와 심령술이 죽음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주체성에 대한 염원의 끝에는 삶으로부터의 탈출이 있다. 둥지를 날아가는 새처럼, 자유는 예속된 공간과의 작별로써 완성되기 마련이다.


시간이 흘러 21세기에 이른 지금, 더 이상 심령술은 전과 같은 위상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미디어와 SNS, 정보와 시뮬라크르의 파도 속에서 여전히 세상은 혼란하다. 심령술이 떠난 자리에, 대중은 음모론을 가져다 놓는다. 가짜 정보와 루머, 혐오에 믿음이 덧입혀진 음모론은 미디어라는 효과적인 수단을 통해 전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간다. 스마트폰은 성서가 되고 혐오는 메시아로 탈바꿈하여 분노를 조장한다. 어쩌면, 세상은 전과 크게 다름없을 지도 모른다. 심령술을 다룬 이 영화가 21세기에 공포와 반향을 일으킨 데에는, 인간의 내재한 불안이 아직 여기저기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할 것이다. 혼돈과 불안의 세상에서, 인간은 삶의 주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전히 믿음을 의탁할 대상을 찾는다. 그 존재는 루머, 신화, 과학과 종교 등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삶의 주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자문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외적 대상이 존재하는 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삶의 작동 방식 자체를 통찰하려는 노력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러한 사유를 표현하여 나타내는 자들을 우리는 예술가라 부른다.


<유전>(2018), 출처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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