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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현석 Jun 01. 2024

편지

주절주절 #13

#좋은 수업


수업이 끝났다. 하루의 작별 인사를 마치고 나서, 가방을 어깨에 걸쳐 맨 아이들이 웅성이며 교실 밖을 나선다. 부산히 움직이는 학생들 사이, 몇몇 아이들의 눈가가 붉어지더니 이윽고 눈물이 쏟아진다. 첫아이가 울음을 터트리자, 곁에서 토닥이던 아이들도 하나둘 눈물을 쏟기 시작한다. 주변으로 몰려드는 아이들과 열심히 손으로 눈을 훔치는 아이. 곳곳에서 훌쩍이는 얼굴들을 빤히 바라보며, 나는 왠지 묘한 기분이 든다. 이윽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의문.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4교시 국어 시간. 슬랙스와 셔츠 차림의 나는 얼굴에 긴장이 역력한 채, 편지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아이에게 예시 문장을 소개하고 있다. 린넨 셔츠 사이로 땀이 흐르는 게 느껴지며 나는 조급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킨다. 질문이 있다며 손을 흔드는 아이들은, 몇십 초를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오더니 등을 두드려댄다. 편지 작성을 끝낸 아이들은 앞뒤 친구들과 떠들기에 여념이 없고, 이미 흥미를 잃어버린 아이들은 의자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점심시간을 묻는다. 그리고, 이 소극을 차가운 금속성의 카메라가 가만히 응시한다.

‘좋은수업실천연구’라 불리는 연 2회 시행의 공개수업일을 오늘 4교시로 잡은 건 실수였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다행히, 연구학교로 인해 다들 정신없이 바쁜 터라 애써 수업을 참관하러 오신 분은 없다시피 했지만, 그래도 나름 공개수업이므로 수업안을 짜고 교과 재구성을 통해 힘을 준 나의 수업 계획은 이미 방향성을 상실한 지 오래다. 그간 공개수업에서 성공한 적이 없기에 이번에는 꼭 만회하리라 절치부심하였지만, 복병은 뜻밖에도 수업의 양질이 아닌 학급 구성원의 학습 자세에 있었다. 여기저기 공사가 진행되고, 끝없는 외부 강의로 인해 최근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던 아이들의 집중력은 이미 휘발한 지 오래인 것이었다. 학생회와 방송 업무로 역시 정신이 없던 나는, 한눈을 판 사이 학급이 무너지고 있었구나 하는 낭패감을 뼈저리게 느꼈다. 돌아가는 카메라는 이미 초점에서 벗어난 지 오래였다. 어느새 나는 명령조로 아이들의 학습 자세를 교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흐르던 수업은 시간의 법칙 아래 어쨌든 마무리가 되었고, 나의 절망적인 마음과는 상관없이 해맑은 아이들은 점심점심 노래를 부르며 손을 씻으러 떠났다.

무력감과 죄책감, 그리고 분노와 동시에 맞서 싸우던 나의 인내심은, 그러나 급식실 이동을 위해 줄을 서는 것조차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 사태를 맞이하자 결국 항복을 선언하고 말았다. 17명이 한 줄로 서면, 맨 뒤에 있는 아이들은 교사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 비교적 앞쪽에 있는 아이들이 먼저 담임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분노의 표적은 결국 맨 뒤에서 해맑게 장난치던 아이들이 되는 것이다. 나는 알코올램프로 중탕을 하듯 천천히 감정을 끓였다. 이제 문제는, 이 감정을 증발시킨 후 차갑게 혼을 낼 것이냐, 아니면 달구어진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냐였다.

합리적인 교사라면 혼을 낼 때 감정을 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혼을 내야 할 상황이 되자 문득 나의 머릿속에 의문이 스쳤다. 잠깐, 혼이 난 아이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될 것인가. 공개수업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평소와 같은 행동들에 대해 이성적으로 혼이 난다면, 아이들은 뜻 모를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뭐야, 평소에는 아무 말 안 하더니, 공개수업이라고 이러는 거야?’ 따지고 보면, 이 지경까지 이끈 나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의 잘못이 포함된 이 사태에 대해, 감정적으로 파고들자는 판단을 내렸다. 나는 아이들과 나를 링 위에 함께 세웠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아이들은 자세를 고쳐 잡았고, 약 20여 분간 담임의 일장연설이 시작되었다. 힘든 건 알지만, 이건 아니지 않냐. 너희들을 이렇게 가르친 선생님의 잘못도 있다.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 그동안 우리가 이 지경으로 지내 왔구나. 실망이라는 유치한 감정을 끝으로, 나는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아이들을 급식실로 보냈다. 학생회 행사 관련 업무로 인해, 점심을 건너뛴 채 부랴부랴 업무일지를 챙겨 강당으로 향하는 나에게 아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점심 내내 업무를 본 후, 괜히 혼을 냈나 하는 불편한 마음과 함께 나는 교실 앞문을 열고 반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눈앞에는, 3달간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자리에 정자세로 앉은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말 잘 들을게요!’ 아마도, 담임이 잔뜩 감정을 쏟아내고 밥을 거른 채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에 마음이 쓰였나 보다. 임원을 필두로 미리 청소까지 마친 아이들은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결연한 얼굴로 앉아 있었고, 그 모습이 귀여웠던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침착하게 수업을 이어갔다.

5교시 국어 시간은, 이전에 작성한 편지를 서로 교환하는 활동으로 진행되었다. 저마다 편지와 선물을 주고받는 아이들은, 언제 혼이 났느냐는 듯 다시금 쾌활하게 수업하면서도 혹시나 자세가 풀어지지 않을까 일말의 긴장 또한 하고 있었다. 건네받은 편지를 읽고 난 후, 친구들 앞에서 읽고 싶다는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발표 시간을 가지고 나자 시간이 약 5분 정도 남게 되었다. 수업을 마칠까 고민하다, 문득 이 활동은 교사가 매듭지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시간에 머릿속에 떠오른 상념들을 주워 모아 편지의 얼개를 조직한 후, 나는 아이들에게 마지막 편지가 남았다고 알렸다. 호기심 어린 표정의 아이들 앞에서, 나는 아이패드로 간단히 작성한 편지를 읽었다. 편지의 형식은 받을 사람으로 시작한다. 3학년 2반 아이들에게..

급조한 편지를 읽고 난 후, 감정의 격렬한 높낮이를 겪어 낸 우리는 끝엔 안전하게 착륙한 채 수업을 마무리했다. 오늘 청소는 없으니 주말 푹 쉬고 오라는 나의 말에 아이들은 함성으로 회답했다. 하루의 작별 인사를 마치고 나서, 가방을 어깨에 걸쳐 맨 아이들이 웅성이며 교실 밖을 나섰다. 부산히 움직이는 학생들 사이, 편지를 읽던 내내 복잡한 표정을 짓던 몇몇 아이들의 눈가가 붉어지더니 이윽고 눈물이 쏟아졌다. 첫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곁에서 토닥이던 아이들도 하나둘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주변으로 몰려드는 아이들과 열심히 손으로 눈을 훔치는 아이. 곳곳에서 훌쩍이는 얼굴들을 빤히 바라보며, 나는 왠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좋은 수업’은 명백히 실패로 끝났다. 계획대로 이루어진 수업은,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했고 교사는 한껏 당황한 채 이리저리 움직이기에 바빴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건들과 더불어 학급 회의 대신 급하게 이루어진 5교시의 수업은 결국 ‘편지로 내 마음을 전달해요’라는 수업 주제로 귀결된 듯하다. 그동안 못되게 굴어서 미안하다는 한 아이의 내밀한 속마음과, 앞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어느 아이의 수줍은 고백. 각각의 따뜻한 마음들이 오간 자리에는 에어컨 바람의 냉기에도 불구하고 얼마간의 온기가 머물러 있었다. 별안간 눈물을 훔치며 한동안 교실을 떠나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나는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선생님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야. 너희와 마찬가지로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해.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부대끼고 투닥이다 보면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게 될 거야. 아이들이 떠난 빈 교실에서, 나는 가만히 앉아 모니터 화면에 있는 PPT 속 질문을 바라보았다. ‘편지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 아이들과의 하루는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느끼게끔 할 수 있었다.





#편지


3학년 2반 아이들에게

3학년 2반 여러분, 안녕하세요? 담임 선생님입니다.

어느덧 여러분과 함께 한 봄이 거의 끝나가네요. 해는 점점 뜨거워지고, 공사 중이라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놀고 공부하는 여러분을 보며 참 고맙고 또 자랑스러워요.

여러분을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학기도 절반 가까이 지나가고, 만날 날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조금 슬퍼지기도 해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과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한 거겠죠?

화도, 혼도 잘 내고 회의 다녀오느라 가끔 수업에 지각도 하는 많이 부족한 선생님이지만, 그럼에도 믿고 따라와 주는 여러분들을 보면서 선생님도 매일 힘을 얻어요. 공부도, 노는 것도 참 열심인 우리 반이 선생님은 참 좋답니다.

같이 생활하다 보면, 서로 아쉬운 점도, 힘들거나 슬픈 점도 생길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럴 때면, 주저하지 말고 선생님께 와서 말해 주세요. 학교에 있는 한, 선생님의 시간은 여러분들의 것이니까요. 선생님은 늘 여러분 곁에 서서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하고 있을게요.

해야 할 수업도, 지켜야 할 규칙도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한없이 착하기만, 친절하기만 하기로 약속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하지만, 하나는 약속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학교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첫 번째 보호자로 곁에 있을게요. 힘들 때면, 침대에서 쓰러지듯 선생님께 다가와 지친 마음을 기대어 주세요. 여러분이 포근하게 누울 수 있도록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요.

오늘도 정말 고생했고, 많이 수고했어요. 주말 잘 보내고, 월요일에도 멋진 웃음으로 같이 만나요! 항상 고마워요.

2024년 5월 24일 금요일

담임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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