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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현석 Jun 11. 2024

주절주절 #14

#벽



1교시 국어 시간. 메모의 중요성을 알아보는 차시 수업이었다. 아이들에게 제시된 과제는, 화면 속 세 친구 중 누가 가장 메모를 잘 하였는가에 대해 알아보는 것. 한비는 설명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였고, 진호는 설명을 들은 바 그대로 빠짐없이 적다가 결국 다 적지 못한 채 메모를 마무리하였다. 누가 메모를 잘 하였는지는 불 보듯 뻔한 상황. 나는 수업에 잘 집중하지 못하던 맨 뒷자리 학생에게 질문을 건넸다. 아이는 잠시 주저하더니, 이윽고 당당하게 답을 했다. “진호요.”  아이의 입가에 웃음기가 퍼지고, 장난기가 발동한 답임을 알아차린 나는 곧바로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 “그냥요.”

몇몇 아이들이 킥킥대며 웃기 시작했다. 두어 번 더 묻자, 아이는 여전히 “그냥요”라는 대답을 연발했다. 그리고 손을 드는 다른 아이. 나는 그 아이에게 질문했다. 역시나 답은 ‘진호.’ 이유를 묻자, 나름 머리를 굴린, 그러나 여전히 뻔한 답을 피해 가겠다는 장난기가 서린 답이 돌아왔다. “진호는 모범생처럼 설명을 다 적었어요.”

계속 질문을 건네니, 장난이 섞였더라도 어느 정도 이유가 나온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됐다.’ 나는 아이에게 되물었다. “그럼, 좋은 메모는 모범생이어야 하는 거네?” 방금 전, 좋은 메모 방법을 학습했기에, 아이는 이번에는 쉽사리 그렇다고 하지 못했다. “그건.. 아니에요."

“그럼, 좋은 메모는 어떻게 쓰인 것이었지?”

“중심 내용이 잘 드러난 메모예요.”

“그렇다면, 진호의 메모에는 중심 내용이 잘 드러났니?” “아니요.”

“중심 내용이 잘 드러난 메모는 누가 쓴 거지?” “한비예요.”

“그런데, 왜 진호라고 했니?”

“…”

이쯤 되면, 아이의 얼굴에 웃음기가 걷힌다.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아이들도 일순간 긴장하기 시작한다. 이제 방법은 둘 중 하나다. 장난스런 태도를 혼내거나, 아니면..

“틀렸어도 이유를 말한 건 잘했어. 생각을 가지고 말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야.”

아이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 예상과 다른 반응이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전, ‘그냥’이라고 했던 아이를 돌아봤다.

“좋은 메모를 쓴 것은 한비였고, 그 이유는 좋은 메모는 중심 내용 위주로 정리했기 때문이야. 너희가 무슨 답을 말해도 그건 자유야. 하지만, 그 답에 설득력 있는 이유가 없으면 아무도 너희 말을 들어주지 않아. 너희가 정말 답이라고 생각하는 게 있으면 당당하게 말해. 하지만, 논리적인 이유를 함께 가져와. 그렇지 않으면, 그 누구도 너희의 말에 집중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확실한 이유를 가지고 말해. 설령 그 답이 틀렸더라도, 남들이 절대 비웃지 못하게끔.”

어느덧 차시 과제는 안중에도 없게 된 채, 나는 17명의 10살 아이들 앞에서 주체적 삶의 자세를 설파했다. 와중에, ‘그냥’이라는 대답을 날린 아이는, 생각 없이 말했다는 죄목으로 진호의 메모가 좋은 이유를 논리적으로 적어오라는 숙제를 전해 받고 울상이 되었다. 결국 돌고 돌아, 수업은 ‘좋은 메모를 작성한 사람은 한비다.’로 끝이 났고, 2교시가 되어 아이들이 음악실로 떠나자 교실에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간만에 생긴 여유 시간, 나는 잠시 방금 전 상황을 천천히 복기했다.

‘확실한 이유를 가지고 말해. 설령 그게 틀렸더라도.’ 방금 전 쏟아낸 이 문장은, 나도 언젠가 스승에게 들어본 적 있는 말일 것이다. 대개 개인의 사유는 외부의 영향을 통해 발현되기 마련이니까. 나는 저 가르침을 받는 20대 초반의 나를 상상했다. 세상 모든 것에 비판적이고, 염세적이려 몸부림치면서 기성세대에 분노하던 당시의 나는 저 말을 일소에 부쳤을 것이다. “지랄하네. 이유 같은 게 어딨어.” 아마, 잘 뱉지도 못하는 욕설을 머릿속으로 뇌까리면서 혼자 씩씩대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러한 반항에는 일말의 불안감 또한 섞여있다. 혹시, 저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는. 정말 이유라는 게 존재하고, 기성세대가 틀리지 않았음을. 나의 치기 어린 젊음은 아직 미성숙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위성과 보편성의 교육을 받으며 그 모든 것들을 비판했던 나는, 시간이 흘러 그러한 당위성을 전달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내가 목청껏 부르짖는 말들은 그들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고, 그 기시감 속에서 나는 뜻 모를 불편함을 느낀다. 어쩌면, 아이들 또한 과거의 나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저 자식.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이런 반항심을 가지지 않을까.

소설가 조지 손더스는 저서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에서 예술의 멘토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한다.

‘일단 스승을 믿고 받아들이고(나에게 맞는지 스승의 미학적 원칙들을 입어보고, 그의 접근 방법에 굴복한다) 그 안에 뭔가 있기는 한지 확인한다. 스승의 가르침이 끝나는 시점에(지금) 제자는 그 가르침에서 뛰쳐나와 어차피 잘 맞지도 않는 옷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 스승의 견해를 부정하고 자신의 사고방식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어쩌면 그 과정에서 몇 가지는 습득했을 수도 있다. 어차피 이것들은 제자가 그동안 쭉 알고 있었던 것일 가능성이 크며, 스승은 그저 그것을 일깨워주었을 뿐이다.’

그에 따르면, 스승의 역할은 외부에 존재하는 가르침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내부에 숨어있던 가르침을 찾아주는 것이다. 내가 쏟아낸 말들은 어떤 아이들에게는 가르침으로 머무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아이들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자 탈출해야 할 대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탈출의 과정 속에도 어떠한 깨달음이 존재할지 모른다. 나는 나의 불편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역할은 아이들에게 생각을 전달하는 것까지였다. 그 이후의 결과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인 것이다.

2017년 2월, 교대 입시 면접에서 나는 교사의 역할에 대해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라고 답했다. 그러나, 7년이 흐른 지금, 교단에 선 채 나는 교사의 역할이 안내자가 아닌 벽이 아닐까 자문한다. 굳세고 견고한 벽은 길에서 엇나가지 않도록 아이들을 막아 세운다. 누군가는 그 벽을 피해 길을 찾아가기도 하며, 누군가는 그 벽 너머 길을 만들고자 부단히 몸을 부딪히기도 한다. 정지한 채 그저 서 있는 벽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염없이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뿐이다. 그러나, 무력해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싶다. 열심히 부딪히는 동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도, 발길을 틀어 유유히 길을 떠나는 아이의 시간도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을 테니 말이다. 나의 할 일은, 길을 걷던 아이가 자신의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너무 늦게 깨닫지 않도록 세심하게 벽을 세우는 것과, 벽에 몸을 부딪히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덜 아프도록 제 몸을 부드럽게 하는 데 있다.




#음악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을 처음 들었던 건, 중학교 2학년 때 축제에서였다. 당시 3학년이던 한 선배는 홀로 피아노에 앉더니, 약 400여 명의 혈기 넘치던 중학생들 앞에서 건반을 두드리며 소리를 조합했다. 축제에 별 관심이 없어 옆 친구와 잡담하며 무료하게 앉아 있던 나는, 그러나 귀로 들리는 아름다움에 순간 넋을 놓고 무대를 바라봤다. 무대에 덩그러니 놓인 피아노에서 나오던 음악은 약 5분 동안 그렇게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갔고, 연주가 끝난 후 부랴부랴 휴대폰으로 곡 제목을 검색했다. 이윽고 화면에는 백발의 피아니스트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 아래 적힌 단어들. <Merry Christmas Mr. Lawrence - Ryuichi Sakamoto>

그날 이후, 한동안 나의 휴대폰 음악 어플에는 그 파이노 곡이 자리하게 되었다. <전장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의 오리지널 스코어여서 그런지,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몇 년 동안 나의 겨울을 책임지게 되었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친구와 눈 속을 걸어가며 영화와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서 집에 돌아올 때도, 수능에 매달리며 한겨울 도서관과 집을 부지런히 오갈 때도. 그 곡은 어떨 때는 지난한 하루를 위로해 주기도, 어떨 때는 계절의 설렘을 증폭시켜주기도 하였다. 강박적으로 매달리던 수험 생활이 끝나고 대학에 입학한 20살의 봄. 음악 실기 수업 과제였던 피아노 연주 평가에서 나는 어김없이 그 곡을 골랐다. 악보도 읽을 줄 몰랐던 나는, 계이름 하나하나 수기로 표시해가며 외웠고, 뉴에이지 곡은 점수가 짜다는 조언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무사히 연주를 선보일 수 있었다.(마지막 부분은 연습하기가 너무 어려워, 결국 내 마음대로 코드를 바꿔 연주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나는 20대 중반을 넘기게 되었고 음악계의 거장이 된 사카모토 류이치는 2023년의 봄, 끝내 작고하였다. 그 후, 나는 제대를 하였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2023)을 보러 향한 극장에서 그의 연주를 다시 듣게 되었다. 별이 된 그의 음악은, 그러나 영화라는 세계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었으며 이는 나를 2012년의 축제로 다시금 데려갔다. 피아노에 홀로 앉아 건반을 누르던 중학생은 스크린 속 아이들로 바뀌었고, 친구들 틈에서 혼자 감동하던 중학생은 어느새 27살의 교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 사이를 흐르는 사카모토의 연주는, 그리고 그가 전하는 감정의 파동은 그대로였다. 숱한 시간과 계절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 존재의 감각은, 자못 서글프고 반가웠다.

이후 다시 해가 바뀌었고, 집에 턴테이블을 들인 나는 결국 <괴물>(2023) 사운드트랙 LP를 구매했다. 바늘이 판을 미세하게 긁으며 해독한 소리들은 어느덧 음악가의 손에서 탄생한 연주로 발현한다. <Aqua>가 방안에 울려 퍼지고, 나는 가만히 앉아 잠시 기억 속을 여행한다. 12년이라는 흐름과 그 속의 나의 삶들. 약 4분간 허락된 그 여행에서 나는 숱한 계절과 사람들,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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