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현석 Nov 19. 2023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한때 10cm의 음악을 많이 들었다. 기존에 발매된 음반을 비롯하여, 정식 음반으로 공개되지 않은 데모 곡들도 열심히 찾아듣곤 하였다. 최근에는 팬송으로 공개된 <9+1>을 좋게 들었다. 노을이 거의 자취를 감춘 저녁에 한 번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9+1>, 10cm


많은 좋은 음악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특히 재작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에 발매된 EP가 인상깊었다. 출근길에 듣곤 했던 이 앨범은 추워지는 날씨와 더불어 당시의 풍경과 일들, 많은 기억들을 떠오르게 한다. 각 수록곡들은 10cm 특유의 애절한 정서와 더불어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여운 또한 담겨있다. 참 오래 들었던 곡들이었다.




<가진다는 말은 좀 그렇지?>, 10cm


이 앨범의 타이틀곡 제목은 <가진다는 말은 좀 그렇지?> 이다. 처음에는 특이한 제목이다 싶었는데, 몇 번 들으며 제목을 다시 보니 ‘그렇구나’ 하고 납득이 되었다.

10cm 곡에서 대개 그렇듯 사랑에 빠진 찌질한 성격의 화자는, 상대방을 좋아하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는 데 주저한다. 물론 이러한 주저함은 상대방의 거절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용기 없는 주인공은 그녀를 좋아한다는,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내고 싶지만(가진다),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에는 두려워 말의 흐름을 꺾음으로써 다소 완곡하게 의미를 담는다.(..는 말은 좀 그렇지). 하지만, 우리의 사랑꾼 주인공은 이렇게 끝내기에는 조금 아쉽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물음표(?)를 추가함으로써 상대방의 답변을 유도하는 것이다. ‘가진다는 말은 좀 그렇지?’ 직접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은근하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함과 동시에 이제 상대방에게 답변의 기회를 넘긴다. 저 질문 아닌 질문에 상대방이 ‘어, 좀 그래.’ 라고 당차게 말할 가능성은 다소 희박하다. 즉, 아주 영리하고 신중하며 더없이 찌질하고 오그라드는 고백인 것이다! 역시 어디 가지 않는 10cm이다.


이렇듯 어떤 작품의 제목은 절대 허투루 짓지 않는다. 제목은 대개 주제를 집약하고 있으며 작가의 의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내곤 한다. 그렇기에 제목을 읽는 것에는 보다 신중한 노력이 필요하다.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단초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역시 흥미로운 제목을 지닌 소설이다. 유명한 문장인 이 소설의 제목은, 국내 드라마의 제목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드라마와 소설의 제목은 묘하게 다르다. 드라마의 제목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인데 반해, 소설의 제목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이다. 물음표와 점 세 개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척 보았을 때엔 드라마의 제목이 훨씬 자연스럽게 읽힌다. 실제로 대부분 드라마의 제목을 소설의 제목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강은 생전에 소설의 제목에 대해 분명하게 밝혔다. 저 소설의 제목 말미에는 <…>이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저 제목이 소설의 내용에 관하여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 점 세 개가 대체 뭐길래 작가가 저리도 집착하는 것인가.


소설은 실내 장식 작가인 서른아홉 살의 ‘폴’이 겪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는 ‘로제’라는 남자와 오랫동안 사귀고 있지만, 그밖에 모르는 폴과 달리 로제는 그녀 외에도 수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같이하며 쾌락과 자유를 추구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폴 앞에 나타난 ‘시몽’이라는 남자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이 젊고 잘생긴 사내는 폴에게 무한한 사랑을 표한다. 폴은 처음에는 많은 나이 차와 더불어 로제의 존재로 인해 그를 밀어내지만, 점차 그녀에게 무심해하며 정부와 밤을 보내곤 하는 로제를 보며, 그리고 그와 달리 끊임없이 헌신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시몽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이 소설의 제목은 시몽이 폴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연주회에 같이 가자는 제안을 하며 질문을 건넨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의 질문은 물음표로 끝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하였다.

그런데 그녀는 과연 브람스를 좋아하던가?


요즈음 그녀는 책 한 권을 읽는 데 엿새가 걸렸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해당 페이지를 잊곤 했으며, 음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다.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가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할까?


시몽의 질문은 그녀를 끝없는 혼란으로 인도한다. 이 질문은 그녀의 취향에 대해 논한다. 취향이란 개인의 기호이며 이는 개인이 어떠한 것에 대해 능동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좋은 감정을 근거로 증명된다. 즉, 취향은 개인의 내적 감정에 대한 주체성을 담보로 하며, 폴이 이 단순한 질문 앞에 무너지는 것은 그녀 자신이 그녀의 감정에 대한 주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는 로제를 좋아하며 동시에 경멸하는 자신의 감정과 시몽을 향한 설렘 중 그 어느 것도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호오를 가릴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그녀는 시몽을 찾아가 말한다.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녀는 고백한다. 자신의 마음을, 이 타는 듯한 감정의 파동을 알 수 없다고. 그러므로 그녀는 이 감정의 카오스에 뛰어든다. 그래야만 알 수 있으므로. 그녀는 시몽과 사귀며 이를 로제에게 밝히게 되고, 한동안 로제는 폴을 만나지 않게 된다. 시몽과 같이 지내는 동안, 폴은 여러 감정들을 느끼며 기쁨과 혼란에 동시에 빠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폴과 시몽, 로제와 메지(그의 정부)는 우연히 클럽에서 마주치게 되고, 폴은 깨닫는다. 그녀의 알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이 이끄는 곳은 결국 로제였다는 걸. 그녀는 시몽에게 이를 밝히며 이별하게 되고, 로제와 다시 만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행복한 마무리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다시 폴을 만나게 된 로제는 저녁이 다 된 시간에 폴에게 전화를 건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물론 폴은 그거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바람기가 다분한 애인을 둔 여자가 낯선 남자에게 설렘을 느끼고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원래 애인에게 들어간다는 이 이야기는 다소 진부한 감이 없지 않아 존재한다. 그러나, 이 소설이 예술적 지위를 획득하는 지점은 폴이 겪는 내적 갈등에서 기인한다. 당연시 여겼던 사랑에 틈입한 낯선 설렘. 무의식적으로 여겼떤 감정이 흔들리기 시작할 때, 그녀가 견고하다고 굳게 믿어왔던 세계는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그 무너진 잔해 속에서 비로소 발견한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감정이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녀는 마침내 깨닫게 된 것이다. 그녀 자신의 감정을. 그녀 자신의 삶과 취향을. 그렇기에 그녀는 로제에게 되돌아간다. 같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소설의 제목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시몽의 제안에 대해 폴이 작게 되뇌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시몽의 이 단순하지만 날카로운 질문에 마음 속 심지에서 불이 붙은 것이다. 그녀가 중얼거리며 되뇌는 이 질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녀의 취향, 감정, 그리고 삶에 대해 그녀가 비로소 주체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지점을 나타낸다. 그녀의 이 말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가, 소설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강은 소설의 제목에 <…>이 들어가야 함을 강력히 주장한다. 물음표는 시몽의 질문이다. 그리고 말끝을 흐리는 저 세 개의 점은 폴의 언어이다. 이는 폴의 내적 갈등과 자아를 향한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횃불이다. 이 소설은 폴의 이야기인 것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1995년 코카인 투약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게 된다. 그녀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통제된 금기에 대해 자신의 자유를 갈망하며 외쳤다. 마약, 도박, 범법 등 숱한 제한을 넘나들며 ‘매혹적인 작은 악마’로 불리던 그녀는, 사회가 선험적으로 부여한 제약에 대해 격렬히 저항했다. 그녀에게 있어 자아의 주체성은 그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완전한 자유이다. 그녀는 기꺼이 스스로 파괴되고자 한다. 그것이 그녀의 신체에 대한, 자아에 대한 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러한 행보는 소설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폴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그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언뜻 견고하게 직조된 것처럼 보이는 세계에서 태어나 던져진 우리는 자연스레 그 속에 적응하며 세상 안에서 스스로를 만들어나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신이 자기라고 믿던 그것이 흔들리게 될 때,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그 세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발견할 때 개인은 격렬한 진통을 겪게 된다. 이 소설은 그러한 인물을 보여줌으로써, 그리고 그러한 인물이 그 고통 속에서 무엇을 피워내는가를 전함으로써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은 누구인지. 그리고 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당신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을 이해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