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fe storyteller Nov 28. 2020

밥 따로 물 따로 1 (시작 편)

필요한 만큼만 먹는 법에 대하여

어렸을 적부터 몸이 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건강해질 수 있는 법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편이었고, 20대 초반이던 2000년대 초부터 8체질 식단을 시작하였다. 금음 체질이었던 덕분에 어쩔 수 없이 굉장히 하드코어 한 식단을 지켜야만 했는데, 어느 정도로 엄격했는가 하면, 우선 모든 육류를 금지된다. 뿐만 아니라 한식에 빠질 수 없는 양파와 마늘도 안되고 감자, 고구마와 같은 근채류도 제외시킨다. 결국 남는 것은 풀 쪼가리와 해산물 그리고 약간의 과일이다. (과일 역시 사과, 수박, 론 같은 것은 안된다.)


8체질 식단이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지만 확실히 나는 효과를 보았다. 특히 어쩌다가 몸에 안 맞는 음식을 먹었을 때 몸에 이상한 게 난다든지, 배가 아프다든지, 변이 안 좋다든지 눈에 보이는 부작용이 있었기 때문에 내 몸에 맞는 것만 먹는 수련(?)을 지속할 수 있었다. 거기다 6년 전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나 자신의 건강만 생각하던 이기적인 목적에서 벗어나 지구에 존재하는 한 생명체로서 다른 생명체의 살점을 먹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 덕분에 육류에 대한 욕구가 거의 줄어들면서 요즘은 큰 무리 없이 물 흐르는 이 식단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가끔 아주 아주 닭고기가 땡길 때는 먹기도 한다.)


이렇게 식단의 제한을 통해 건강은 물론 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본 역사가 있는 나로서는 최근 한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밥따로 물따로" 식단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다. "음양식"이라고도 불리는 이 밥따로 물따로 식단은 기존에 내가 하던 8체질 식단과는 다르게 무엇을 먹는가 보다는 음식물을 섭취하는 시간을 강력히 제한하는 것이어서 기존의 내 식단과 겹치지 않았다. 손 안의 스마트폰에서 끊임없이 나에게 무언가를 사라는 메시지를 푸시하는 요즘, 그 무차별 공격으로부터 내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비록 이미 잘 유지하고 있는 8 체질 식단이 있지만 거기서 한 발짝 더 내 삶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밥따로 물따로 식단을 시작해보았다.  


그렇다면 밥따로 물따로는 정확히 어떤 식이요법인가?


밥따로 물따로 식사법의 창시자로 알려진 이상문 씨의 저서에 따르면 다음의 내용이 가장 기본이다.


1. 공복에 물을 마시면 안 된다.

2. 식탁에서 국과 찌개를 추방해야 한다.

3. 식후 2시간이 지난 후에 물을 마셔야 한다.

4. 물을 마신 후 2시간 이내에는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한다.

5. 일체의 간식을 금한다.

6. 밤 10시 이후에는 일체의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


여러 미디어로부터, 그리고 가족이나 친구로부터도 물을 자주 마시는 것이 좋다는 학습을 받아온 나로서는 왜 이러한 제한을 하는 것이며 그 효과로는 어떤 것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해 밥따로 물따로 식단은 8 체질만큼이나 독창적인 논리를 펼치고 있었다.



음식은 열(熱:陽) 에너지이고, 물은 음(陰) 에너지라 할 수 있다. 음식을 먹고 2시간을 참게 되면 몸에서는 물을 그리워하는 강력한 힘이 생긴다. 즉 양(陽)의 기운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때 물을 마시면 물은 체내에 들어가자마자 위장(胃腸)에 정체할 시간도 없이, 필요로 하는 각 장기에 적절히 흡수되어 기혈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면서 노폐물을 걸러내게 된다.


된 음식을 먹고 수분을 섭취하지 않은데 따른 직접적인 효과는 침샘의 작용과 위액(胃液)의 분비를 촉진시켜 살균력을 강화함으로써 음식의 각종 세균들이 깨끗이 박멸되며 감기 바이러스나 기타 나쁜 균이 몸 안에 침입했다 해도 그대로 물리쳐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가축 중에도 염소나 토끼는 물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그들은 별다른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대표적인 동물들이다.


음식물을 먹으면 위산이 분비되어 위에 들어온 음식물을 녹여서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든다. 즉 산(熱)을 이용하여 소화하는 것이다. 이때 한참 불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물을 부으면, 피시식~~~ 소화가 중지되고 불이 꺼지게 된다. 또한 물과 음식물이 섞여 있으면 위는 모든 것을 음식물로 인지하고 그 양에 맞는 위산을 분비하게 된다. 물 때문에 위산이 나온다면, 위산을 만드는데 에너지 낭비가 되고, 또한 위산과다 등으로 인한 2차 피해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물을 마실 때는 물만 마셔야 한다


어디까지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밥따로 물따로 식단을 통해 다음과 같은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고 한다.


1. 강한 침샘의 작용으로 소화력이 향상되고, 위액 분비가 촉진되어 음식의 영양분이 완전히 흡수된다.

2. 물이 위장에서 정체되지 않고 빨리 흡수된다.

3. 된 음식을 꼭꼭 씹어 먹게 되어 자연히 과식이 어려워진다.

4. 자연치유력이 강해져서 기존의 질병이 호전되며 외부 병균의 침입에도 잘 견딘다.


사실 8 체질로 효과를 보았다고 말했지만, 드라마틱하게 내 삶이 극적으로 변할 만큼의 효과를 본 것은 아니다. 8 체질은 15년 가까이 해오고 있지만, 나는 비염을 앓고 있어서 매일 약을 먹고, 여전히 금방 지치고 현기증이 날 때도 있다. 다만 8 체질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화장실을 잘 가고, 피부 상태가 좋으며 잠을 잘잔다. 그래서 밥따로 물따로에 대해서도 저 효과들이 다 나타날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을 정해둠으로써 무언가를 적게 먹는다는 것, 즉 적게 소비한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오는 카톡 알림과 할인 안내 이메일로 인해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에 대한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처리하는데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되는데, 음식이라고 무엇이 다를까? 지금 내가 먹는 방법과 먹는 양과 먹는 대상들은 정말 내게 적절한 것인가? 필요하지 않은데 습관적으로 혹은 어떤 정보나 환경에 내가 노출되어서 생각 없이 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20년 11월 28일 현재 내가 처음으로 밥따로 물따로 식단에 대해 접한 한 커뮤니티의 원글 조회수가 34500이 넘고 댓글은 무려 1071개나 달렸다.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원글 이후에 후기들도 이어졌는데, 처음엔 밥따로 물따로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내가 나도 한 번 해볼까? 하고 다짐한 순간은, 바로 간식을 안 먹게 되고 먹는 양이 줄어든다는 여러 명의 경험담을 읽고 나서였다. 이미 8 체질 식단에 만족하고 있었던 내게 반소비적 생활에 도움이 되는 식단이라는 점은 밥따로 물따로 식단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오늘까지 5일째 밥따로 물따로를 하고 있으며

밥따로 물따로에 따른 내 식사 스케줄은 이렇다.


1. 아침 기상. 공복 상태에 물을 절대 마시기 않고, 양치후 바로 구운 콩과 야채샐러드, 쌀로 만든 토스트 빵을 살짝 데워 먹는다. 확실히 물을 마시지 않고 바로 음식물을 먹으면 평소 먹던 양보다 적게 먹는다.

2. 2시간 후 물시간. 기본적으로 물은 식후 2시간부터 다음 식사 2시간 전까지 원하는 만큼 마신다.

3. 만약 식후 2시간 후에 물이 먹고 싶지 않다면 억지로 마실 필요는 없다. (쏘쿨!) 그래서 나는 목이 마르면 물 한 잔 마시는 정도로 끝낸다. (그래야 점심 식사를 빨리 할 수 있다!)

4. 점심이 가장 중요하다. 그나마 많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을 마신 시간으로부터 2시간 후 먹고 싶은 만큼 먹는다. 과일, 초콜릿까지 챙겨 먹는데, 신기하게도 후식 먹을 때 끊임없이 중독된 것처럼 손이 가는 현상이 줄었다. 오늘 점심때도 샤인 머스캣 5알, 초콜릿 쿠키 하나 먹고 끝났다. 점심을 벼르고 별렀는데 막상 충분히 먹었다 싶어 손이 안 가는 거다. 과일과 초콜릿에 환장하는 나로서는 정말 신기한 체험이다.

5. 2시간 동안 다시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6. 여기서부터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다른데, 정말 신기하게도 배가 별로 안고프다. 한번 배가 별로 안 고픈데 무리해서 먹었다가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랄까, 필요 없는 음식물이 몸에 차있는 느낌이 들어 놀랐다. 그래서 그날그날 내 몸에 귀 기울여 뭔가 좀 더 먹고 싶을 때는 간단히 바나나와 구운 콩을 먹는 정도로 식사를 끝내는 편이며, 배가 안 고프면 그대로 물 시간으로 넘어가 복용해야 하는 약을 물과 함께 섭취하고 그날의 음식물 섭취를 종료한다. 물론 더 먹고 싶은 날은 밥을 차려 제대로 먹는 날도 있다.


밥따로 물따로의 좋은 점은 의외로 심플하다는 것이다.

어디를 외출할 때 밥 먹을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을 잘 맞춰 나가면, 공복 2시간 + 물 2시간 + 공복 2시간 총 6시간 동안 밥을 먹으면 안 되기 때문에 물만 텀블러에 챙겨 들고나가면 된다. 특히 동네 도서관에 책 읽으러 갈 때 너무 좋다. 중간에 밥 먹기 위해 돌아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밖에서 점심시간 되었다고 배도 안 고프면서 뭔가를 먹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때와 비교하면 훨씬 외출할 때 몸이며 마음이며 가볍다.

이것저것 다양한 먹거리에 정신 팔려 무엇을 살까 고민하는 시간도 줄었다. 그렇게 많은 먹거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많이 못 먹는다. 지금까지 어떻게 그렇게 많이 먹어왔는지 신기하다. 배달도 줄고 온라인으로 먹거리 장 보는 양도 줄었다. 단적인 예로 매일 150g 정도의 서리태를 구워서 간식으로 틈만 나면 먹곤 했는데, 밥따로 물따로를 시작하고 난 뒤부터는 150g의 서리태를 4일째 먹고 있다.

물 마시는 양도 줄었는데, 확실히 침샘이 활발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뭐든 안 쓰면 그 기능이 녹슬기 마련이거늘, 침 대신 늘 넘치도록 물을 마셨으니 그동안 침샘이 제대로 작동할 수가 있었을까. 억지로 써야 하는 상황이 되니 이제서야 실력 발휘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화장실은 8 체질 덕분에 원래 좋았는데, 더 금방, 저 매끄럽게 잘 보고 있다.

몸무게도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는데 1kg 정도 빠졌다.

약 2년 전 몸무게가 3kg 가까이 늘기 전까지 평생 유지하던 몸무게에 가까워지고 있다.


여러 가지로 아주 만족한다. 삶이 좀 더 심플해지고 그 덕분에 소비를 덜 하고 있으며 비싼 식재료나 영양제를 살 필요도 없어서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기까지 한다. 평생의 몸무게를 되찾아가고 있고 어디 밖에 나갈 일이 있어도 카페나 레스토랑을 찾고 메뉴를 고르고 먹고 나오기 위해 시간과 돈을 소비할 필요가 없어 마음이 더 편하다.


내 몸 안을 일부러 비워둠으로써, 들어온 재료들이 충분히 그리고 완전히 다 소모되기를 기다림으로써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기쁨이다.


그렇게 얻은 마음과 몸의 여유를 무엇을 얼마만큼 먹을까에 소비하지 않고 나에게 집중할 에너지와 시간에 소비한다.


나는 내가 먹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행동으로도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외로운 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