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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storyteller Nov 29. 2020

이적이 던진 돌멩이

이적은 1995년 2인조 그룹 <패닉>으로 데뷔했다. 그때 나는 중학생이었고, 라디오에서 이적이 <패닉>이라는 이름의 뜻을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겠다.


확실히 <아무도>라는 그들의 데뷔곡은 뽕짝기를 벗을 수 없었던 그 당시의 K-pop, 우리가 "대중가요"라고 부르던 시절의 한국 노래들 사이에서 단연코 새로워서 나는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굉장히 놀랐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정도까지 놀라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쉽게도 <아무도>는 그다지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나처럼 남들이 좋아하는 것에 별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나 <패닉>의 이름을 알렸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저조한 결과에 노선을 바꾼 것일까. 록음악에 기반을 둔 데뷔곡 <아무도>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발라드 곡 <달팽이>를 후속곡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빵 터졌다. 그 사이 이적의 서울대 학벌은 더 널리 알려졌고, 이적과 여러모로 반대되는 불량한 캐릭터인 김진표는 팀의 색채를 더 다채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룹 <패닉>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패닉>은 1995년에서 2005년까지 4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음악적인 실험과 사회비판적인 가사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남을 성공적인 활동을 했고 그 후로는 멤버 각자 개인 활동에 주력하며 점차 추억의 그룹으로 가끔 회자되었다.


서른이 넘고 결혼을 하고 아이의 아버지가 된 이적은 개인 활동을 하면서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더 이상 <패닉>을 지향할 필요가 없었다. 즉 세상을 더 이상 음악으로 패닉하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의 솔로 히트곡들 <다행이다> <하늘을 달리다>와 같은 곡들은 물론 패닉에 그 음악적 뿌리가 있지만 발라드 곡 <달팽이>를 부르면서도 젤 반통을 써가며 뾰족 머리를 했던 패닉 때의 날카로운 감성의 끝이 뭉뚝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변화였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그가 남긴 훌륭한 그의 솔로 작품들이 이를 증명해주며 그에겐 달라질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11일 이적이 7년 만에 정규 앨범 'Trace'를 발매하고 타이틀곡 '돌팔매 (feat. 김진표)'의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을 때 나는 <패닉>의 귀환을 기대했다. 그들의 뾰족한 감각을, 거침없음의 젊은 에너지를. 그렇게 내 젊음도 다시 돌아와 주기를.


이적이 <무한 도전>이나 <놀면 뭐하니>를 비롯한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눈 처진 달팽이로 소비될 때, 그 모습도 좋아하긴 했지만 그의 그 쳐진 눈 뒤에 감추고 있는 날카로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를 <패닉>하게 만들 수 있는 이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나선 것이다.


<돌팔매>라는 제목과 그 노래가 지닌 의미에 대해 이미 기사를 통해 접한 뒤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를 검색했다. 뮤직비디오 썸네일은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리고 클릭.


...



이번에도 그들의 음악은 요즘 K-pop들과는 달랐다.

그런데 25년 전 음악을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1995년 <패닉>의 음악이 새로웠다면, 오랜만에 두 멤버가 뭉쳐서 만든 <돌팔매>는 올드했다.

음악도, 뮤비도, 창법도, 가사도 모든 게.


나는 당황해서 음악을 정지시키고 과연 이적이 이것을 몰랐을까 생각해보았다.






2주 정도 지나고, 오랜만에 내가 아주 좋아하는 선배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 흐르듯 나눴다. 영화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음악 이야기로 넘어갔고 나는 이적의 <돌팔매>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엔 그저 그 곡을 잔뜩 기대하고 들었는데 25년 전 노래를 듣는 줄 알았다는 이야기만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말을 이어가면서 나는 나조차도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적이 그걸 모를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도 그 곡을 발표한 게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자신이 구식의 음악을 하고 있다는 걸 그 영리하고 현명한 아티스트가 모를 리가 없다. 시대에 한참 뒤처진 듯한 올드한 음악을 발표했다가 오히려 <패닉>이 가진 그 특유의 날 것 같은 새로움에 먹칠을 할 수도 있는데 이적은 왜 <돌팔매>를 발표한 것일까.


우리는 유희열 이야기도 했다. 그가 매주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통해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거나 앞으로 잘 나갈 아티스트들을 만나면서 스스로의 재능에 대해 자신감을 잃거나 질투를 느끼는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가 겪지 않을 수도 있다면 굳이 겪지 않을 그럴 상황을 10년 넘게 매주 지속해나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이들의 감성과 스타일에 최적화된 음악의 트렌드는 정말 2000년대에 끝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기에 음악을 한 덕분에 이들은 아주 큰 성공을 거두었고 사실 더 이상 욕심을 낼 필요가 없을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들은 시대가 바뀌고 찬란했던 그들의 재능이 예전만큼 시대의 부름을 받을 수 없을지라도 상관없이 음악을 계속하고 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계속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들의 모습에 당당하다.


너무도 대단하지 아니한가.


나는 누군가 내 글을 알아봐 주기를 늘 고대해왔다. 초등학생 때 처음으로 하이틴 로맨스 같은 소설을 썼을 때부터 누군가 내 글이 재미있다고 해주면 좋았다. 대학생이 되어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댓글이 달리고 조회수가 올라가면 글 쓰는 게 더 신났다. 하지만 어느새 나이 서른 중반이 넘고 나도 모르게 늙은 감성으로 과연 얼마나 신선하고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브런치가 꽤 오랜 시간 중단된 것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더 신선하고 더 젊고 세련된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괜히 글을 써서 비교당하고 내 처지를 알게 되면 비참하지 않은가. 하지 않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하지 않으면 거기서 멈출 뿐이다. 내가 누군지 여전히 모른 채 그냥 멈추어 있을 뿐이다.

질투 날 정도로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내가 아끼는 과거의 나와 연결되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려면 그냥 계속해야만 한다. 내 글이 별로인 줄 알면서도 써야 한다. 내가 초라해도 그냥 한다. 그게 정말 대단한 거다.


내 글이 대단할 필요는 없다.

내 글이 대단해야 내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대단함은 오히려 초라함에서, 뒤쳐짐에서, 별로인 것에서도 나올 수 있다.

그걸 이제서야 알 것 같다.


다시 한번 이적의 비범함에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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