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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독서리 Aug 06. 2020

지친 하루

징크스일까.

지하철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는 날 이상하게 하루가 힘들다. 사람이 많이 타지도 않은 지하철임에도 괜히 어깨를 툭 스치면서 주춤하게 되면 기분 좋지 않거니와, 징크스처럼 그 날의 하루는 이미 심적으로 망한 상태가 된다. 그리고 왜 날 치고 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단 한 명도 미안하다는 그 어떤 제스처와 말이 없는지...,... 천불이 난다. 출근길에서 시달리면 그저 지쳐서 나 역시도 그 어떤 액션을 할 힘도 없다. 


특히나 요즘처럼 폭우가 쏟아지는 장마철은  각자 든 우산에서 떨어지는 빗물에 서로가 조심하고 조심하지만 옷이 젖는 걸 피할 수는 없다. 게다가 오늘은 신호빨(?)이 좋지 않아 눈앞에서 횡단보도 등이 빨갛게 바뀌었고, 지하철도 눈 앞에서 놓쳤다.  심지어 다음 열차는 '전역'이 아니라 '전전전역'이었으니 아침부터 울화가 치밀었다.


그런 날은 빈자리 촉도 좋지 않다. 금방 내릴 것 같은 사람 앞에 서야 하는데 내가 내릴 때 같이 내리거나 심지어 내리지도 않는다.


지하철에 내려서도 10분간 걸어서 는 회사길도 만만치는 않다. 유난히 신호가 긴 사거리를 건너보고자 전력질주를 해보지만 야속하게도 빨간불로 바뀌고 만다. 내 귀에만 들리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회사에 터덜터덜 간다.


이런 날은 늘 올리던 결재도 이상하게 한방에 패스되지 않고 오타가 나거나, 아니면 괜한 걸로 트집이 잡혀 진행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점심이라도  맛나게 먹으면 좋으련만 가는 곳마다 쉬는 날이거나 내가 먹으려는 메뉴는 재료가 없단다. 오후는 더 난관이다. 지칠 대로 지쳐서 의욕도 없거니와 뭔가 해본들 제대로 집중이 되지도 않으며, 마음을 다잡고 굳은 의지로 일을 해보려고 하면 곧 퇴근이라 하던 일을 제대로 마무리도 하지 못하고 나오게 된다. 이래저래 어쨌든 안 풀리는 날이다.


어렵사리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에너자이저 6세 딸과의 놀이가 이어진다. 이미 난 방전되었으나 그래도 어쨌든 뭐라도 하면서 놀고 밥도 먹이고 아이와의 시간을 보낸다. (견뎌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 아이는 지치지 않는다.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엄마와 놀 시간은 지금 밖에 없으니  졸졸졸졸 뒤를 쫓아다니면서 쫑알쫑알 이야기를 한다. 얼마 전 구입한 영어 공부용 패드에 부쩍 관심이 많은데 그걸 들고 다니면서 새로운 기능이라며 목청껏 설명을 시작한다. '우와'라는 감탄사를 연신 발사해가며 마지막 남은 1% 까지 다 쓰고 나야 잠을 잘 수 있다.


멍 때릴 여유도 없이 하루가 갔다. 매일이 지치고 힘든 건 아니지만 연차를 써도 방학중인 아이와 하루 종일 부대껴야 하니 제대로 휴식을 취하기가 어렵다.


24시간 중에 날 찾아 끄집어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새벽이다. 요즘에는 밤낮으로 비가 쏟아 내리는 통에 의도치 않게 빗소리 ASMR을 들으며 책도 보고 글도 써본다. 유난히도 새벽 시간은 빨리도 가서 아쉬움이  크지만, 꾸역꾸역 오늘도 잠시 홀로 타임을 가졌다. 잡스러운걸 전부 적어놓는 수첩을 오랜만에 꺼내읽었다. 7월에도 쓰려고 했던 글들이 많았는데, 모두 잊고 있었고 기한이 지나버렀다. 다시 8월의 계획을 세우고 흐거리는 멘탈을 잡았다.  참으로 다행인건 오롯이 '' 일수 있는 새벽만큼은 내일도 모레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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