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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독서리 Aug 06. 2020

구두  궁상

돈을 쓰는 자세

오~싸다. 와... 9,800원? 11,900원. 이건 또  이쁘다고 비싸네. 오만 원 이상 무료배송. 오호...


온라인  쇼핑은 언제나 신난다. 특히 꼭 사야 되는, 살 수밖에 없는 아이템의 경우, 이를 테면 당장 여름이 왔는데 작년에 신던 샌들은 도무지 때가 타고 더러워져서 신을 수 없을 때라던가, 주머니 사정 여의치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정말 안 사면 올해 여름을 맨발로 다녀야 하는 그런 상황 말이다.


단 한 번도 여름 샌들을 백화점에서 사본적없다. 고작해야 브랜드 운동화를 사는 정도인데, 솔직히 얼마 신다가 버릴 신발에 몇 십만 원이나 하는 걸 사야 하나 싶기도 해서 절대 내 돈을 주고는 안 산다. 보다 못한 남편이 손을 질질 끌고 가서 사라고 발에 신겨주면 마뜩잖지만 그냥 신는 게 전부다. 더군다나 여름 한 철 신는 샌들인데 그 큰돈을 주고 산다? 안 될 말이다. 뭔지 모를 아까움 때문에  선뜻 살 수가 없다.


물론 가끔은 나한테 쓰는 건데 아낌없이 마음에 드는 구두를 사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왠지 그냥 아껴야 될 것 같았다. 이건 결혼 전이나 후나 똑같다. 조금이라도 큰돈이라는 생각이 들면 늘 안 샀고, 안 썼다. 그렇게 자잘 자잘하게 아끼고 참고 살았으 부자라도 됐을까? 그렇지도 않다. 그래서 가끔은 허탈하지만 이런 소비 습관 한순간에 바뀔 리도 없다.


어쨌든 여름 샌 굽도 빨리 닳고, 금방 지기도 해서 유난히 신는 기간이 짧은 잡화다. 나에게 비싼 신발, 더군다나 여름 샌들은 절대 비싸게 주고 살 물건의 범주에 속할 수 없는 것이다. 가끔은 비싼 구두 한 번쯤은 플스를 외치며 사서 신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전에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언니가 신혼여행을 다녀오면서 페*가모에서 구두를 샀다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면서 잔뜩 어깨뽕이 들어가 있었는데, 내심 부럽기는 했었다.


어쨌든 올해 여름 샌들도 온라인에서 저렴이를 찾아 한 개를 득템 했다. 매일 고다니기에도 좋고 발이 편한 슬링백 스타일에 여름에 맞춰  핑크색이 감도는 녀석으로 골랐다. 사이즈 선택도 배송도 완벽했다. 올여름은 이 녀석과 함께 하기로 했고, 한동안 유용하게 신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툭.

'어? 안돼~~~ 안돼~~~.'


샌들 끈이 힘없이 끊어졌다. 슬링백 구두라 끈이 끊어지더라도 슬리퍼처럼 신고 수는 있기에 걷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가장 큰 문제는 나를 둘러싼 회사 직원들이다.


"어머! 끊어졌어요!"

"아우 어떡해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어들어가고 싶었다. 길 가다 혼자 넘어져도 이렇게 창피스럽진 않을 것이다. 모두가 내 발을, 끊어진 신발끈과 샌들을 쳐다봤다. 부끄러웠다.


세상에 멀쩡히 길을 가다가 신발끈이 끊어지다니!


심지어 내 발은 끈이 끊어짐과 동시에 신발에서 나와 맨발이 아스팔트에 나와버렸고 샌들이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박음질이라고는 하다만 것 같은 샌들 끈이 흉물스럽기 짝이없이 나와있었다. 똑! 하고 끊어져서 깔끔하기라도 하면 으련만 누군가한테 머리채를 잡혀서 뜯긴 것 마냥 너덜너덜 진 상태였다.


"오늘 집에 신고 갈 신발은 있어?"

"사무실에 신발 하나 있어. 하나 줄까?"


'다들 날 놔두고 그냥 가주세요. 제발...,...'


모두가 가던 길을 멈추고 불쌍하고 초라한 내 샌들과 꼬물꼬물 움직이는 발을 보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괜찮지 않은 이 상황을 어서 빨리 벗어나고자 괜찮다는 얘기를 수십 번 건넨 뒤에야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있었다. 밥을 먹는 내내 부끄럽고 참담하고, 끊어진 저 신발을 끌고 다시 사무실로 가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끔찍했다.


신발끈 끊어졌어.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내가 뭐랬어. 좋은 거 사랬잖아. 싼 것만 찾는 게 능사가 아니야.

몰라! 비싼 거 그럼 사주던가!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괜히 남편한테 있는 성질 없는 성질을 다 부렸다. 그러고 나니 서러움이 밀려왔다. 얼마나 더 잘 살아보겠다고 남도 아니고 내가 신는 신발인데 저렇게 싼 것만 찾나 싶고, 돈을 안 버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벌면서도 나한테 쓰는 그 몇 십만 원을 왜 아까워했을까 싶어서다.


퇴근길에 바로 집 앞 가게에 들러 무려 2개의 샌들을 샀다. 그리고 주말에는 백화점을 찾아 평생 처음으로 샌들을 샀다. 결제하는 그 순간까지도 괜히 사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과 고민이 수만번들었다. 고민하는 날 보면서 역시나 남편이 결제를 했다.


여름 샌들은 비 오는 날 척척하게 젖어도 고민 없이 신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그런데 폭우가 내리는 요즘에도 늘 집 앞에서 산 저렴이 샌들만 신고 있다. 비싼 구두가 닳을까 걱정이고, 혹시라도 자주 신어서 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앞서서다.


지금껏 이렇게 살았으니 결국 이게 딱 내 모습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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