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한글을 배웠다. 유치원 졸업식 날에도 이름 석자가 적힌 사물함을 찾아 헤맸던 나다. 아직도 이름을 모른다며 날 놀렸던 친구도 기억이 난다. 서러움과 부끄러움에 엉엉 울었던 것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한글을 깨치지 못하고 초등학교에 가는 날 걱정했던 엄마의 잔소리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8살이 되어서야 한글을 읽게 됐고, 까막눈에서 벗어났다.
그에 비해 나의 오빠는 5살에 구구단을 외웠고, 동화책 한 권을 통으로 외워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초등학교에 가서야 한글을 느릿느릿 깨우치는 날 바라보셨던 부모님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싶다.
코로나는 끝날줄을 모르고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놀기가 어려워졌다. 아이의 집중력으로는 책을 오래 읽기도 쉽지 않고, 종이 접기나 색칠놀이도 오랜 시간 함께 하기 힘들었다. 뭔가 새로운 걸 찾다가 학습지를 생각해냈다. 학습지를 신청하면 매주 다양한 교구와 스티커들이 온다. 배울 생각이 아니라 스티커 책이 한 권에 3천 원 정도 하는데 서점에서 사 오는 날 모두 없어진다. 없어지는 시간도 순식간이다. 한 시간을 채 놀지 못하고 사라지는 스티커 값이 아까워서 차라리 학습지를 받기로 결심했다.
"아이가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나요?"
당황스럽다. 요즘 애들은 벌써 한글을 읽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가 보다. 마치 내 아이는 뒤쳐지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안 것 마냥 당혹스럽고 왠지 모를 부끄러움도 느꼈다. 어차피 초등학교에 가면 한글을 배울 테니 월화수목금금금 그저 놀이터에서 놀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더욱 일부러 알려줄 생각을 안 했다. 나와 함께 책을 읽다 보면 알겠거니 했고, 또 모르면 어떤가. 설마 하니 한글을 못 읽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렇게 전화 상담을 한 후 무료 체험 수업이 시작됐다. 소리 나는 펜과 패드도 있다. 이렇게 세상이 달라졌구나 싶었다. 어쨌든 책을 펼쳐서 선생님의 화려한 수업이 시작됐다. 중간중간 아이를 향해 질문을 한다. 가뜩이나 낯가림이 심한 아이는 몸이 딱딱하게 굳어서 내 무릎 속으로 파고들다 못해 안겨있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다소 나아졌지만, 묻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양을 염소라고 했고, 오리를 새라고 했다.
'양이야. 양. 아...,... 지금 이걸 모르는 거야?!.'
마음속에선 천불이 났다. 아이를 다그칠 수는 없었다. 선생님은 어떻게든 아이에게 정답을 유도하고자 애썼고, 아이는 그 와중에도 본인의 답을 말했다. 이 정도 눈치를 줬으면 정답을 말할 법도 한데 끝까지 본인 눈에 보이는 대로 말했다.
"어머니. 지금 교재로 바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 네."
"누리과정이라고 아세요?"
아이 앞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를 보여주었다. 아이는 도대체 이게 무슨일인가 하는 벙지고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아직도 드는 생각이지만 가르친다고 나아질지. 혹은 나아져야 할지 고민이다. 염소든 양이든 살다 보면 알게 될 것을 노는 것이 제일 좋다는 이 아이에게 1부터 100까지 숫자를 외우게 하고 기역과 니은을 가르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이를 키우는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봤다. 사교육을 하냐고. 어서 한글을 시작해야 한단다. 놀이학습으로 아이의 흥미를 끌어내면 된다고 말한다. 놀이면 놀이지 학습이 왜 붙는지 모르겠다. 퇴근하고 자기 전에라도 책을 읽어주고는 있으나 매일 그럴수는 없다. 그리고 일단 아이는 책보다 나랑 노는걸 더 좋아한다. 나도 그냥 아이랑 수다떨고 노는게 좋다. 물론 책이 좋은 나는 아이가 어서 혼자 책을 읽을 수 있기를 바라기는 한다. 그럼 도서관도 서점도 놀이터가 될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를 보여줘가며 한글을 배워야 하고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