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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독서리 Aug 14. 2020

혼자 있었구나

"어제 집에 왔는데 불도 다 꺼졌는데 문 여니까 애가 서 있더라."

"뭐? 혼자? 안 자고?"


하아...,... 엄마라는 사람은 기절하고 자는데 아이는 깜깜한 집에서 혼자 눈을 뜨고 있었나 보다. 아빠가 들어오면서 켜지는 현관 센서등에 반가움 마음과 무서움과 심심함도 안고 뛰쳐나갔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했다. 신랑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쿨쿨 잤다. 심지어 모기장은 갑갑해서 싫다는 아이와 투닥거리다가 짜증을 내버리고 아이 이불에서 잠들었다. 처량하게 내 등을 쓸쓸하게 바라보기만 했을 아이를 생각하니 더더욱 마음이 뜨끔했다.


하루 종일 놀고 저녁 7시에 스르륵 잠이 들어 꿀잠을 잤던 아이다. 초저녁에 자버리면 이따 저녁에는 어쩌려고 저러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딱히 깨우지는 않았다. 왜냐고? 나도 쉬고 싶어서...,... 회사에서 돌아오니 9시다. 매번 늦진 않지만, 한 달 초과근로는 20시간이다. 경우에 따라 늘 수도 있으니 아이와의 생활도, 내 인생도 균형을 잡기가 만만치 않다. 저녁에는 책도 읽어주고 한글 공부는 잘 되고 있는지 같이 봐주고도 싶다.  한 달 중 보름은 지치고 늦는다. 그래 봐야 손에 쥐는 돈은 최저임금 더하기 수당이니 과연 이게 뭐하는 짓(?)인가 라는 회의감도 불현듯 들었다.


엄마 역할에 대한 정확한 정의라는 건 없겠지만, 그래도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주기는 해야 할 텐데 아이가 혼자 잠도 안 자고 있었다는 말에 출근하면서도 기분이 엉망진창이다. 깜깜한 방에 모두가 잠들어도 누구 하나 깨우려 들지 않는 착한 아이. 웬만해서는 잠투정도 없고 마트에 가서도 과자는 딱 1개만 살 수 있다고 때 부리지 않는 아이(물론 할머니와 마트를 가면 카트 가득 원 없이 담지만;) 나보다도 편식을 하지 않는 아이, 학교는 곧 죽어도 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성실한 아이, 어른이 되면 엄마 읽고 싶어 하는 책도 많이 사주겠다고 하는 아이(그러면서 나더러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이상한 셈법이긴 하지만;; 생각은 갸륵함), 커서 의사가 되면 할머니 늙은 것(나이가 드셔서 생기는 검버섯을 자꾸 늙으면 이런 게 생긴다고 했더니 계속 '늙은 것'이라 함)도 없애주겠다고 하는 아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라 가끔 이렇게 마음을 짠하게 만들 때면 더욱 착잡한 마음이 든다.


주말이라도 열심히 열과 성을 다해 온몸으로 놀아주겠노라 늘 다짐은 하지만, 하루 종일 비가 쏟아지는 요즘에는 그마저도 쉽지는 않다. 너무 지치면 TV 만화를 같이 보고, 밀가루 반죽 놀이도 해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종이컵도 쌓고, 레고도 조립해본다. 그러다가도 또 심심하다는 아이. 끊임없이 놀아도 뭔가 후련하게 재미있어하지 않는 아이. 잠시 햇빛이 비치는 팀을 타서 놀이터에 가서 술래잡기도 하고 그네도 수천 번을 탄다. 동네 친구가 나와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그런 타이밍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나마 술래잡기는 서로 뛸 수도 있고 뛰다가 지치다는 핑계로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 좋긴 하지만, 문제는 매번 내가 먼저 지친다는 것이다. 지쳐서 쉬고 있으면 혼자 놀이터를 왔다 갔다 여기저기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아이를 보면 또 미안해져서 다시 한번 힘을 내서 놀아본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또 이런 생각을 한다. 


'집에 가면 지쳐서 좀 자려나?'


못된 엄마다. 일찍 재워놓고 책 보려고 하는 엄마. 혼자 놀고 있으면 그때만이라도 잠시 핸드폰을 보려는 엄마. 아이가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하면 몸에 좋지도 않은 라면인데 옳다쿠나~쾌재를 부르며 한 끼 정도 라면은 괜찮다고 냉큼 끓여주는 엄마. 초등학교 가서야 한글을 알았으면서 애한테는 까막눈이라고 놀려대는 엄마. 애한테는 손톱 뜯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나는 37년 동안 손톱 뜯는 버릇을 못 고치고 있는 엄마.


이런 나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엄마라고 졸졸졸 따라오고 늘 좋아해 주는 아이한테  유난히 미안한 아침이다. 내일은 늦잠 자도 되는 토요일이니까 오늘의 미안함을 싹 잊을 만큼 놀아줘야지. 아니지 아이랑 함께 하는 거지. 놀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더 힘드니까. 아이의 눈높이에서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신나게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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