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수리독서리 Aug 27. 2020

제 나이는 500살입니다.

 

무료한 하루입니다. 땅 속에 처박혀 있다가 누군가의 손에 끌어 올려지더니 심해 깊은 곳에 다녀왔습니다. 운이 좋아 살랑이는 물결을 따라 빛이 드는 위쪽으로 올라가니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지요. 그중에서도 '퉁사리'는 귀염둥이 댕댕이를 보는 것 같은 외모 덕에 마치 제가 땅 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했으니 더욱 마음이 갔던 친구였습니다. 문제는 그 친구가 절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도통 깨끗한 것만 찾는 결벽증이 있었거든요. 제가 가면 금방 피해버리기 일쑤였고, 언제부턴가 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때가 제 나이 137살 때였으니 꽤 오래전이었네요.


어쨌든 영문도 모른 채 친구들은 절 가까이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늘 쓸쓸히 깊은 바닷속에서 유유자적 떠도는 인생이 계속됐어요. 그런데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눈을 떴는데 껌껌하고 물컹물컹한 좁은 방 같은 곳에 들어가 있더군요. 수시로 방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는데 본의 아니게 이곳저곳을 찌르고 쓸고 박혀있기도 했습니다.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미안했지만 빠알간 피가 나는 걸 보면서도 다시 생채기를 내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방안의 물이 더 이상 요동치지 않았습니다. 싸한 느낌이 드는 순간 날카로운 칼끝이 방을 후비고 들어왔습니다.


갑자기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절 내쳤던 이들 중 하나입니다. 분명해요!  말없이 저를 가져다 썼고, 또 버렸고, 다시 쓰더니 또 내쳐졌던 지금의 삶을 만든 이들. 바로 인간입니다. 어쨌든 빛을 보니 잠시나마 반가웠지만 딱히 저를 반기는 모습은 아니네요.


'사람?! 얼마만의 사람이야! 밖으로 나온 건가?'


이상하게 인간의 눈빛이 잠시 측은해 보입니다. 옆을 보니 축 들어진 생명체가 보입니다. 물컹한 내장은 이미 검게 변해 악취와 함께 부패되고 있었어요. 아마도 전 거북이의 뱃속을 헤집고 다니며 아프게 했던 모양입니다. 물론 미안했어요. 그렇지만 저도 억울해요. 당신들이 날 버렸으니까요!


더럽혀진 나를 집게로 집어 들고 봉지에 담아 넣습니다.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아요. 아무리 절 버리고 다시 쓰려고 하지 않더라도 상하거나 썩지 않거든요. 벌써 500살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전 짙은 회색을 머금고 탄탄한 체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인간처럼 나이 들어 자글자글 주름이 생기지도 않고, 허리가 굽거나 손발의 힘이 약해지지도 않아요. 굳건히 원래의 모양을 간직한 채 남아있는 거죠. 아마 지금 절 바라보는 인간들은 제가 500살이 된 줄도 모를 거예요. 다들 그 정도면 저의 형체가 바스러져서 가루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저 누가 이걸 버렸고, 왜 거북이의 배속에서 나왔는지에 대해 서로를 탓할 뿐이거든요. 


그러고 보니 인간도 변하지 않는 건 똑같아요.  여전히 저의 존재에 대해  더럽다는 생각 외에는 하지 않고 있더군요. 무슨 일이 앞으로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어요. 흐르는 데로, 버리는 데로, 보내는 데로 전 굳건히 삶을 유지할 것이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다 해도 멈출 수 없어요.


"저에게서 뭘 바라는 거죠? 우린 앞으로도 같이 살아갈 거예요."


이 곳에서 제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무궁무진하게 많은 것도 사실이잖아요. 지금 저의 몸상태로 보니 아마도 500년은 더 살아있을 것 같아요. 저에 대해 잘 아시나요? 500년이 넘게 저와 함께 살아본 적 있는 인간이 있긴 해요? 가루로 만들어버린다 해도 어딘가에 먼지처럼 쌓여있을 것이고, 늘 함께 할 거예요. 오해는 말아요. 스토커는 아니니까요. 고의적으로 쫓아다니면서 인간을 위협하지는 않잖아요. 그저 바라볼 뿐이고, 인간이 나와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에 대해 지켜보는 게 전부예요. 기대할게요. 당신들을 만나고 태어나 지금까지 벌써 500년이나 흘렀는데, 그 정도 대책쯤은 갖고 있겠죠? 그나저나 지금은 다시 저를 언덕 모레 위로 던져버렸군요. 이렇게 또 100여 년 있다 보면 바다에 갈 수도 있고, 인간이 사는 어느 골목 한편에 굴러다닐 수도 있겠네요. 어딜 가나 인간들을 보고 있다는 걸 기억해줘요. 안녕.


헤르만 해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어떤 중학생이 주인공의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이입이 된 글을 봤습니다. 굉장히 재미있고 신선했어요. 덕분에 저도 '쓰레기 책'을 읽고 플라스틱이 되어서 이야기를 풀어봤습니다. 상상하면서 쓰니 재미있네요. 회사일이 안풀려 심란했는데 역시 스트레스에는 글인가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혼자 있었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