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수리독서리 Sep 23. 2020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누군가를 볼 때

책을 읽어요.

책을 읽을 때의 눈동자 움직임을 본 적이 있나요? 눈 깜빡임이 책장의 글자를 따라가느라 한 템포씩 늦어집니다. 멍하니 바라보는 느낌보다는 한 곳, 혹은 책의 전부를 빨리 훑고 싶다는 뇌의 의지가 반영된 것 마냥 아주 짧게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입니다. 진지하지만 심각하지 않고,  바쁜 눈동자지만 서두르지 않습니다. 참 보기 좋고 그저 흐뭇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어디서나 책을 보고 있는 이의 모습은 상대방에게도 편안함을 주나 봅니다.


아침에 지하철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책을 읽고 있는 사십 대 정도의 남자분이 있었습니다. 책을 무릎에 올려놓지 않고 두 손으로 들어 눈앞에 최대한 가까이 두고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요즘 대부분은 지하철에서 핸드폰 봅니다. 그래서 가뭄에 콩 나듯 책을 읽는 분이 계시면 무슨 책을 읽나 괜히 궁금합니다.  어떤 책이기에 핸드폰을 버리고 활자를 읽는지 말입니다.  제목이 궁금해서 힐끗힐끗 쳐다보지만 앞표지를 뒤로 접어 놓고 읽기에 쉽지 않습니다. 어느새 내릴 역에 도착했는지 허겁지겁 내리는 모습까지 보고 나니 그제야 가방 속에 책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아무데서나, 어떤 책이나 상관없이 잘 읽는 잡식 독서가입니다. 그래서 집안 책장뿐만 아니라, 식탁, 안방, 소파, 차 안 등등 어디에나 책을 둡니다. 한 번에 여러 권을 읽어도 잘 읽습니다. 그런데 유독 지하철에서는 저도 핸드폰의 유혹을 떨쳐내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요즘 유튜브에 빠져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처럼 책을 몰두해서 보고 있는 누군가를 보게 되니  불현듯 마음을 다잡고 책을  읽어야겠다는 의지가 생깁니다.


얼마 전 '어른의 어휘력'(유선경/앤의서재)이라는 책을 읽고  좋은 문장 혹은 단어를 정리할 노트를 만들었습니다. 노트 여백에 차근차근  심금을 흔드는 문장, 혹은 언제가 글 속에 넣고 싶은 주옥같은 단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은 책이라는 존재를 잊다가도 어떤 동기가 생겨서 다시 책에 손이 가게 되는데요. 아마도 이런 사소한 일감을 혼자 만들거나, 아침에 불현듯 독서를 하는 누군가를 보며 질투 아닌 질투를 하게 되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책을 왜 힘들게 읽냐고 하는 분들도 있고, 읽고 나서 어떤 것이든 결과물이 나와야 하고,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그건 죽은 독서라고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잠이 안 와서 책을 읽기도 하고, 마음이 아려서 위로를 받고자 책을 읽는 분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미용실에서 머리 하는 시간이 무료해서 사진만 가득한 잡지를 슥슥 넘겨보기도 하고 급할 때는 냄비 받침이나 피곤할 땐 책상 위 쪽잠용 베개로도 사용합니다. 꼭 어떤 열매를 맺고 찬란한 성과물을 위한 독서라기보다, 그저 그 상황에 맞게 독서를, 책을 이용하는 겁니다.


가끔 내가 이렇게 책을  읽어대는데도, 똑똑해지는 것 같지도 않고 아무런 발전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메모도 해보고 독후감도 써보지만, 딱히 변화는 없습니다. 요 근래 글쓰기 공모전에 줄줄이 낙방하면서 그 탓을 애꿎은 책에게 한 듯합니다. 아무리 읽어도 도통 나아지는 게 없다고 말입니다.


꾸준히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베풀면서도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는 겁니다. 앞으로는 책을 읽으면서 무엇이 되었든 바라지 않아야겠습니다. 그냥 좋아서 읽고, 또 쓰는 일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의 이전글 뭐가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