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1편
매일 같은 시간 출근하고, 똑같은 업무를 반복하는 우리. 때로는 이 삶이 굴러떨어질 바위를 다시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의 형벌'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WNM(FOCUS)는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통해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보았습니다. 삶에 객관적인 의미는 없지만, 그 무의미함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뜨겁게 살아내는 '반항(Revolt)'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고귀한 승리라고 카뮈는 말합니다.
어차피 죽는 삶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일할 멋' 나게 살 수 있을까요? 운명이 던져준 비극적 재료들로 나만의 행복을 조립해내는 창조적인 삶의 태도를 함께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지금 당신이 밀어 올리고 있는 바위는 어떤 형태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Q. 삶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세상과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 하지만, 세계는 그 부름에 침묵할 뿐이다. 세상에는 필연도, 목적도 없다. 카뮈는 이처럼 의미를 갈망하는 인간과 침묵하는 세계 사이의 간극을 부조리(Absurd)라고 정의한다. 즉, 삶 자체에는 객관적인 선험적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카뮈 철학의 출발점이다.
Q. 의미가 없다면 죽어야 하는가?
사람들은 대개 이 부조리한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두 가지 방식으로 도피한다. 하나는 삶 자체를 포기하는 물리적 자살이고, 다른 하나는 이성적 판단을 중단하고 신앙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초월적 내세에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적 자살이다. 카뮈는 이 두 가지 모두 부조리라는 진실로부터 도망치는 비겁한 태도라고 비판한다.
진정으로 용기 있는 태도는 삶의 무의미함이라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부조리라는 형벌과 결코 화해하지 않은 채 끝까지 견뎌내는 반항(Revolt)만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이 지녀야할 세 가지 삶의 태도를 제시한다.
1. 의식: 부조리를 회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명료하게 인식함.
2. 자유: 정해진 정답이 없기에, 미래의 보상이나 외부의 체제로부터 완전히 해방됨.
3. 열정: 내일의 희망에 오늘을 저당 잡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현존을 가장 뜨겁게 감각하며 살아감.
Q. 왜 반항해야 하는가?
정상에 올리면 다시 굴러떨어질 바위를 영원히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의 형벌은, 희망 없는 우리 삶의 거울이다. 그러나 시지프가 산 아래로 굴러떨어진 바위를 향해 내려가며 자신의 운명을 직시할 때, 그는 이미 운명보다 거대한 존재가 된다.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는 순간의 떨리는 근육과 흐르는 땀을 단순한 고통이 아닌 살아있음의 감각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신의 노예가 아니다. 진정한 반항이란 부조리한 운명을 마지못해 견디는 것을 넘어, 운명이 던져준 비극적 재료들로 나만의 행복을 조립해내는 창조적 행위여야 한다.
만약 시지프가 형벌 자체를 즐기며 승리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신들에게 더 이상 '형벌'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고통이 유희가 되는 순간, 반항해야 할 고통의 실체는 소멸한다. 카뮈의 입장에서 이 역설이야말로 반항의 완성이다. 신(운명)이 인간을 무너뜨리기 위해 설계한 고통의 판 위에서, 인간이 기어코 행복을 발견하고 창조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신의 의도를 가장 완벽하게 무력화하는 최고의 반항이자 실존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Q. 부조리함조차 초월적 존재가 만든 설정이라면?
시지프가 영원히 바위를 굴려야 한다는 운명을 신이 설계한 것처럼, 우리의 부조리함 자체가 초월적 존재(신)가 설계한 정교한 체계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카뮈는 이를 증명할 수 없는 추상적인 비약이라며 거부하겠지만 말이다.
<시지프 신화> 시리즈는 총 4편에 걸쳐 매주 목요일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기다리지 않고 바로 확인하려면 : https://wnm.kr/wnmfocus-life
▶︎1편: 어차피 죽는 삶, 무슨 의미인가?
▷2편: 의미 없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3편: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가?
▷4편: 진정한 사랑과 반항의 실천, 그것은 선택인가 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