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4편
WNM(FOCUS) <시지프 신화> 시리즈의 마지막 탐구는 카뮈의 삶 그 자체를 향합니다. 그는 "진정한 철학자란 자신의 사유를 삶으로 증명하는 사람"이라고 믿었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실제 사랑과 생애는 자신의 철학을 지켜내기 위해 분투하다 실패한 미완의 기록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부조리에 맞서는 반항은 오롯이 개인의 강인한 의지만으로 가능한 영역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부조리라는 비극적 운명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은, 나만큼이나 나약한 타인의 손을 잡고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운이 되어주는 일이 아닐까요?
Q. 카뮈는 어떻게 살았는가?
카뮈는 "진정한 철학자란 자신의 사유를 삶으로 증명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의 생애를 들여다보는 것은 그의 사유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 된다.
카뮈는 절대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부조리를 직시하고, 매 순간 죽음이라는 끝을 의식하며 현존의 밀도를 극대화하는 삶에 가치를 두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만 매몰되지 않고, 모든 인간을 부조리한 운명을 공유하는 동지로서 대하며 인류애적 연대를 실천하려 했다. 결국 그에게 연대란, 부조리라는 허무 속에서 생의 밀도를 가장 높게 끌어올릴 수 있는 양적 경험이었던 셈이다.
Q. 카뮈의 실제 사랑은 어땠는가?
동지적 연대라는 가치를 중시하면서도 절대적 가치를 부정하는 그의 논리적 모순은 그의 가장 사적인 영역인 사랑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카뮈는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동시에 한 사람에게 귀속되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자신을 명확히 자각하고 있었다. 그는 결혼한 상태에서도 평생 수많은 여성과 불꽃 같은 관계를 맺으며 사랑의 양을 극대화하려 했다.
이는 한 대상에 안주하는 대신 매 순간 사랑이라는 감정을 남김없이 연소시키는 '부조리한 인간'의 권리를 실천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역설이 발생한다. 그의 이러한 행위는 그가 그토록 혐오했던 추상적 이념을 위해 구체적인 인간을 희생시키는 행위와 구조적으로 닮아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반항이라는 실존적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곁에 있는 아내라는 구체적인 인간의 고통을 방치한 것이다.
Q. 그의 삶의 방식은 정말 그의 철학의 산물인가?
카뮈는 자신의 외도로 고통받는 아내를 보며 깊은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자신의 선택이 초래한 정신적 고뇌를 회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냈다는 점에서는 그가 반항의 자세를 견지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본다면 그의 행동은 자신의 철학적 귀결이라기보다, 그 철학을 실천하는 데 실패한 기록에 가깝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부조리를 인지하고, 타인의 현존 밀도를 존중해야 한다는 양의 윤리에 진실로 충실했다면, 그는 애초에 결혼이라는 배타적 약속을 하지 않았거나, 혹은 타인의 세계를 파괴하는 외도라는 선택을 저지르지 않았어야 한다.
결국 카뮈의 사랑은 부조리에 대한 고결한 반항이라기보다, 부조리라는 방패 뒤에 숨은 인간적 한계에 가까워 보인다. 누구보다 명징한 의식과 깨어 있는 삶을 강조했던 그조차, 사랑과 욕망이라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앞에서는 자신의 사유와 삶을 일치시키지 못한 채 방황했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의 삶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논리조차 완벽히 지켜내기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증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이 혼란스러운 생의 한복판에서 교통사고라는 가장 부조리한 방식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부조리의 완성일지 모르나, 그의 삶은 그 부조리를 끝내 이겨내지 못한 미완의 반항으로 남았다.
Q. 반항의 실천, 정말 선택인가 그조차 운인가?
사유를 자신의 인생으로 증명하려 했지만 내적 모순에 고뇌하는 카뮈의 삶을 보며, 반항이 과연 순수한 '의지'의 영역인지 의문이 생긴다. 카뮈는 부조리에 맞서는 인간의 의지를 강조했지만, 사실 이 의지조차 기질적 '운'에 좌우되는 것은 아닐까?
실제 삶에서 부조리의 인지는 양면적으로 작용한다. 누군가에게 권태는 생을 갉아먹는 형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정지된 시간조차 관계의 서사를 심화시키는 촉매가 된다. 똑같은 부조리를 마주해도 이를 서사로 승화시킬 수 있는 힘은 개인의 정서적 근육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즉, 어떤 이에게 반항은 뼈를 깎는 노력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타고난 기질에 의해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도약대일 수 있다.
Q. 진정한 사랑은 선택인가 운인가?
반항에도 체력이 필요하다는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진정한 사랑 역시 타고난 신체적 구조나 자라난 환경이라는 '운'의 영역일지 모른다.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 수치나 타고난 기질이 "견딜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를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일 수 있으며, 어린 시절 경험한 애정의 형태가 반항의 방식을 결정짓기도 한다.
결국 반항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 아니라 '누구를 만났는가'라는 관계의 역동성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강력한 의지를 지닌 개인이라도 파트너와 함께 권태를 서사로 써 내려갈 수 있다면, "내일 죽더라도 이 권태를 견디겠다"는 선택은 홀로 싸울 때보다 훨씬 수월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부조리라는 비극적 운명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은, 어쩌면 나만큼이나 나약한 타인과 손을 잡고 서로의 운이 되어주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시지프 신화> 시리즈는 총 4편에 걸쳐 매주 목요일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기다리지 않고 바로 확인하려면 : https://wnm.kr/wnmfocus-life
︎▷1편: 어차피 죽는 삶, 무슨 의미인가?
▷2편: 의미 없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3편: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가?
▶4편: 진정한 사랑과 반항의 실천, 그것은 선택인가 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