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들과 미서부로 향하다
안녕하세요.
‘같이의 가치’를 추구하는 따뜻한 여행가입니다.
저는 작년 낯선 사람들과 함께 미국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저희는 서로를 직업이나 나이 같은 사회적 배경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며 점차 가족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원래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성격이었던 저는 이 여행을 계기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여행의 의미도 제게는 많이 달라졌어요.
저는 이 따뜻했던 여정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희망이나 용기, 혹은 작은 미소가 되어주기를 소망하며 본격적으로 저의 미국 여행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언제부턴가 연구실에서 이 말을 자주 하고 있었다.
지난 3년간, 나는 쉼 없이 달려왔다. 제대로 된 휴가는 커녕, 잠시라도 마음 편히 쉬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많은 성과들을 냈지만, 나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그래, 나를 위해 잠시 쉬어가자. 그렇게 휴가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가장 먼저 생각한 곳은 파리였다.
마침 올림픽이 한창이기도 했고, 세계적인 축제의 열기를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10여 년 전, 파리에서 겪었던 좋지 못한 경험들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차선책은 미국, 그중에서도 그랜드캐니언이었다.
어릴 적 수많은 다큐멘터리 속에서 접했던 그 광활한 협곡. 수억 년의 세월을 품은 대지를 직접 보고 싶었다.
처음 계획한 여행은 로드트립이었다. 차 한 대를 빌려 국립공원들을 누비고 미 대륙을 횡단하는 여정.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반대하셨다. 혼자 여행은 처음이라 자신이 없기도 했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2030 또래들끼리 함께 떠나는 자유여행 프로그램. 패키지여행은 질색이었지만, 이 여행은 자유롭게 일정을 짜면서도 여러 명이 함께 움직인다는 점에서 안심이 되었다.
일정은 14박 15일, LA에서 시작해 라스베이거스, 그랜드캐니언, 샌디에고까지 미국 서부를 도는 코스였다.
여행 전, 참가자들이 초대된 채팅방에서 나는 3조로 배정되었다. 우리 조는 조장 N, 조원 Y, G, H, J, 그리고 나 총 여섯 명이었고, 모두 20대 초반~중반으로 비슷한 나잇대였다. 어색한 첫인사 후 우리는 함께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때 존재감을 드러낸 사람은 G였다. 그녀는 카리스마 있게 계획을 주도했고, 모든 일정과 여행 시 주의사항까지 꼼꼼하게 정리해 공유했다.
여행 계획을 처음 세워보는 나는 그녀의 말을 따라가기도 벅찼지만, 그녀 덕분에 전체적인 계획의 틀이 잡혔다. 그녀의 수고에 대해 고마움과 동시에 부채의식이 들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여행 출발 당일
오랜만에 찾아온 인천 공항은 어딘가 낯설었다. 출국장 특유의 분주함과 설렘이 흐르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전날, J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비행기 체크인할 때 옆자리에 같이 앉는 게 좋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솔직히 처음엔 썩 내키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과 11시간을 붙어 있어야 한다니. 낯을 많이 가리는 나에게는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마음으로 체크인 카운터에 갔다. 하지만 그녀 옆자리엔 이미 다른 승객이 배정되어 있었다. 대신, 나는 비상구 옆 좌석으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다리를 뻗고 여유롭게 갈 수 있는 좌석, 뜻밖의 행운이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짧고 조심스러운 인사 뒤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
“….”
공항에서 J와의 첫 만남은 예상대로 어색했다.
그녀는 금발에 큰 키, 그리고 어딘가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지닌 사람이었다. 단정한 옷차림, 차분한 말투. 쉽게 말을 걸 수 없는 아우라가 있었다.
그녀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륙 안내 방송이 들려오고,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설렘 70%, 걱정 30%를 안고 나는 태평양 건너 9600km 떨어진 도시를 향해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