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보다 소중한 인생의 무게를 배우다
Some of folks are born silver sppon in hand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Fortunate Son> 중에서 (1969)-
'수저 계급론'은 2010년대에 들어서 갑자기 부상한 단어가 아니다. 물론 위와 같이 기준을 세우고 나누는 것은 최근에 형성된 문화이지만 물고 태어나는 수저(?)가 다른 것에 대한 개념은 1960년대 영미권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수저 계급론이 급부상한 데에는 실제 사회과학적 연구, 조사 결과도 한몫을 했다.
'부모의 경제 수준과 자녀의 수능성적 과의 상관관계', '서울대학교 학생부 종합전형 합격 여부와 부모 소득과의 관계', '성공한 사업가들과 가족의 재산 간의 관계'. '가난과 사회 신뢰의 관계' 이렇게 부와 인생을 연결 짓는 조사들이 이뤄졌고 실제 많은 연구 논문들에서 '상관관계가 있음'으로 밝혀졌다. (이런 연구 결과가 대단한 것이라기보다는 돈이 많으면 모든 분야에서 더 양질의 교육과 더 실력 있는 멘토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한 상관관계인 것 같다.)
나는 금수저입니다.
SNS상의 계급론으로 볼 때 나는 금수저에 속한다. 물론 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진 않았다. IMF 직전 태어나 학창 시절 금융위기까지 겪은 90년대 생인 내 주변 많은 친구들의 집이 잘 살지 못했고 우리 집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되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였다. 2009년 대학에 입학한 나는 입학과 동시에 틈날 때마다 아버지의 사업을 도왔고, 아르바이트 대신 아버지 일을 돕는 나를 보고 주변에서는 '금수저'라고 불렀다.
많은 제조업체가 그렇겠지만 우리 회사 역시 많은 부채가 있다. 요즘엔 '빚도 능력이다'라는 말이 있어 '자산이 많지만 다 빚이야'라는 말은 그냥 핑계일 뿐이다. 처음엔 그런 단어가 싫었다. 수저 계급론이 긍정적 맥락에서 나온 예기도 아니고 사회에서 바라보는 시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사업을 하는 사람의 아들로서 어떤 얘기를 해도 '있는 놈들이 더하다'라는 얘기가 돌아올 뿐이었기 때문에 사업의 불안정성, 리스크에 대한 걱정,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은 혼자만 짊어져야 했다.
금수저로 살아남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주변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었다. 회사의 규모를 키워나가는데 최선을 다해 살았기 때문이다. 내 대학 생활은 딱 두 단어면 설명이 끝난다. '일'과 '운동'. 이 두 개를 빼면 학교 생활에 대해 딱히 할 말이 없다. 그 어떤 단체생활도 낄 시간이 없었고, 친구들과 여행을 갈 여유도 없었다. MT 대신 출장을, 해외여행 대신 해외 출장을 다녔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업을 물려받기로 마음먹은 나는 조금이라도 집안에 도움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일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현업에 뛰어드니 지금까지 일할 때와는 또 달랐다. 나는 이제 엄연한 사회인이었고, 나이는 아직 어렸다. 실력보다 욕심이 많았고, 늘 가진 능력 수준을 넘는 일을 맡았다. 실제 사업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불안했고, 현금의 흐름은 너무나도 막막했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그렇겠지만 늘 위기의 연속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지 않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Golden Mindset
2017년 12월, 2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 사실 그때 대표가 된다는 것은 금전적으로 엄청난 손해였다. 세금을 아끼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부친께서 오래 대표직에 계시고 돌아가실 때가 되어 가업승계로 기업을 이어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물론, 가업승계에도 여러 조건이 있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친께서는 시대가 너무 빨리 바뀌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계셨고, 새로운 세대에 회사를 맡기지 않으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으셨다고 한다. 회사가 더 크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승계를 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판단이라고 하셨다.
나는 그때부터 마음먹었다.
이 회사는 날 위해 물려준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일군 이 회사가 오래도록 튼튼하기를, 강소기업이 돼서 더 많은 직원들에게 더 즐거운, 안정적인 일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회사는 내 회사가 아니라 나와 우리 직원들의 것이다
말보다는 실행
이렇게 생각만 한다고 해서 욕심이 다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나와 부친은 진심으로 우리 회사가 잘되길 바란다. 부친과 나는 올해 초 평소에 믿고 신뢰했던 분을 사내 이사로 모시기로 결정했다. 그분은 대표인 나보다 회사의 지분도 많다. 그리고 우리 회사의 국내 영업 총괄 과장님의 인센티브 조건으로 보면 우리가 올해 세운 목표를 달성하게 될 경우 과장님의 연봉은 대표인 내 연봉을 뛰어넘는다. 그래서 믿을 수 없게 들리겠지만 우리 과장님은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면 자신의 급여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계신다. 또, 창업주이신 부친은 새로운 이사님의 영입과 함께 자신의 연봉을 회사의 부장급 수준으로 낮추셨다. 이제 회사를 튼튼하게 하는데 일조하고 물러나야 한다며, 자신의 삶에 필요 이상의 급여는 필요 없다고 하신다. 우리 아버지지만 참으로 존경스럽다.
이와 함께 나는 스톡 옵션에 대해 공부할 예정이다. 회사를 위해 노력하는, 그리고 자신의 비전과 회사의 비전을 일치시켜가며 미래를 그리는 직원들을 위해 주식을 나눠줄 방법을 고안해 내려한다. 지금의 세상은 한 사람의 원맨쇼로 회사를 키울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옛날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 판단을 믿고 우리 부친께서 나에게 회사를 일찍 물려준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금수저의 꼰대스러운 설교
세상에 나보다 훨씬 부유한 금수저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돈으로 어떻게 살든 본인들의 선택이다. 그러나, 만약 그 부의 축적 과정에서, 그 수저를 물어 들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함께 했다면 한 번쯤은 생각을 바꿔보라 얘기하고 싶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도 발전된 세상에 살고 있다. 굶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많은 금수저들이 그런 얘기를 한다. "직원들 잘해줘 봐야 다 소용없다.", "회사가 망해가면 다 도망간다.", "회사가 망할 때는 돈 한 푼 내놓는 인간 없다." 맞다. 다 맞는 말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을 좀 바꿔보라는 것이다. 직원들 잘해줘 봐야 소용없으니 잘해줄 생각을 하지 말고 그 사람이 회사에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고 또 더 많은 돈을 벌어가는 사람으로 성장시킬 방법을 찾아봐라. 회사가 망해가면 다 도망갈 테니까 회사가 망하길 바라지 않는 사람들로 만들어 봐라. 주식을 한번 줘봐라. 회사가 망하면 어렵게 얻은 주식이 종이조각이 되는데 망하길 바라겠는가? 회사가 망할 때는 돈 한 푼 내놓지 않을 테니 회사가 망할 일이 없도록 전략과 계획을 갖춘 사람이 되어봐라. 혼자서 모자라면 함께 그 고민을 할 직원을 키워봐라.
그리고 만약에 회사가 정말 뜻대로 되지 않아 망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가? 큰 빚더미에 앉게 되겠지. 그래도 우리가 진짜 괜찮은 실력자라면 비록 회사의 끝은 안 좋더라도 나에게는 손을 내밀어 줄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럴 사람 한 사람이 주변에 없을 것 같아 두렵다면 사장이든 회장이든 지금 당장 자기 계발을 시작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