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은 원래 조금 치사한 것
'할인'이라고 하면 주로 어떤 장소를 떠올리는가? 시장? 개인 사업장? 사실 아웃렛만 가도 '정가'의 힘에 굴복하여 우리 뇌는 '협상'을 떠올리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 머릿속에서만 당연한) 백화점에서는 할인을 하지 않는다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관행의 힘'을 이용해서 소비자들의 뇌에서 '할인'이라는 단어를 없앤다. 이것이 바로 사업가들의 '협상의 법칙'중 하나이다. 사업가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펼쳐지는 삶의 모든 것이 협상의 대상이며, 인생은 협상의 연속이다.
백화점은 할인이 불가능 한 곳?
백화점에서 할인을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백화점은 할인이 불가능 한 곳'으로 백화점이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할인을 요구하면 보통 상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할인을 받아들일 경우 '에이, 그래 총각이 잘생겼으니까 천 원만 빼줄게', '마지막 손님이니까 남은 것까지 다 줄게'. 할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우리도 남는 게 없어', '이게 진짜 최저가라서 도저히 깎아줄 게 없어'와 같은 식이다. 그러면 백화점의 경우는 어떨까? 백화점에서 할인을 요구하면 점원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손님, 여기 백화점이에요.', '어머님, 백화점은 원래 할인 안되는 거 아시잖아요.'. 그렇다. 그 '원래'를 반복적으로 듣게 되면 할인을 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백화점은 손님들의 '협상'을 차단해 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백화점이 할인에 대한 고객의 '협상'을 '방어'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합법성의 힘'이다. 우리는 인쇄물, 서류 그리고 포스터와 같은 것을 모두의 동의를 얻은 '합법적인 것'이라고 여긴다. 제품 앞에 '정가'가 적혀있으면 반드시 그 값을 지불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쇄물에 대해 합법적인 것이라 여기지만 그 인쇄물의 내용에는 사실 '상호 간의 동의'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정가'를 보고 나면 '저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가?'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만큼 '정가'는 백화점의 강력한 무기인 것이다.
이렇게 인생의 8할은 협상의 연속이라며 현명한 협상과 협상의 노하우를 체화하여 원하는 삶을 누리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책이 있다. 바로 '허브 코헨'의 <협상의 법칙>이다. 협상의 법칙은 2001년 처음 출간되어 2011년에 협상의 법칙 1,2 두 권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거의 9년이 지난 책이지만 전혀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물론 중간중간 상황의 예시가 현재 또는 우리나라와 맞지 않는 경우는 있다. 그렇지만 협상의 기본 원리에 대해서는 전혀 부족함이 없으며, 흔히 얻을 수 없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세계적인 '협상의 신'이라 불리는 허브 코헨은 백화점에서 물건 협상을 하거나, 기업 간의 제품 가격을 협상하는 정도를 넘어 적대적 쿠데타에서 인질 협상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이슈가 되는 사건들에 밀접하게 개입되어 있다. FBI, CIA, 법무부, 기업, 예능계 등 그가 서지 않는 협상의 무대는 없다. 특히 이 <협상의 법칙>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9달 동안이나 올라있었던 협상에 관련된 실용 명저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단점(?)을 얘기하자면 저자는 '참고문헌 따위는 개나 줘' 하는 느낌으로 실전 위주로 얘기하고 인용 문헌은 찾아보기 힘들다. 개인적으로 인용문헌이 없는 도서를 싫어하지만, 책에 서술되는 그의 실력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자, 그렇다면 허브 코헨이 얘기하는 백화점에서도 할인받게 되는 '협상의 법칙'은 무엇일까?
그는 협상의 3요소로 정보, 시간, 힘을 제시한다. 그리고 각 요소의 관점에서 '협상의 테크닉'들을 제시한다.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치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도 그 부분은 인정하는지 '치사할 수 있다 생각하지만'같은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얘기를 듣고 있자면 정말 얻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하다면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어떤 상황에서든 협상이라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협상의 법칙>에는 수많은 협상의 기술이 서술되어 있지만 물건을 구매하는 데에 있어서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바로 '시간'과 '정보'를 이용하는 것이다. 당신에 대한 '정보'를 뺏기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시간'을 소비하도록 하여 그에게 '반드시 이놈에게 팔아야만 하는 당위성'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우리 와이프는 결혼할 때 모든 혼수를 백화점에서 구매했다. '하이마트'나 '인터넷 최저가' 보다 싸게.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우리 와이프는 허브 코헨에게 전수받은 적은 없지만 그 전술을 의도치 않게 쓰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최대한 적게 하고, 최소한의 정보만 던진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하는데 혼수를 장만하러 왔어요'와 같은 아주 기본적인 정보이다. 그러면서 이 정보가 좋은 이유는 점원으로 하여금 '이 사람은 반드시 살 사람이다'라는 신뢰와 '이 사람에게는 반드시 팔아야겠다'라는 기대를 동시에 심어줄 수 있는 정보이다.
그러고 나서 '시간'을 활용하는 작전을 펼쳤다. 우리 와이프는 같은 시간에 그곳을 총 3번 방문했다. 물론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와이프는 여전히 협상의 법칙 같은 건 모른다. 그냥 고민이 돼서 여러 번 간 것뿐이었으나 좋은 협상 전략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직원은 3번의 방문 동안 적어도 3,4시간은 따라다니고, 설명하는데 시간을 썼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시간은 우리의 편이 된 것이다. 이 손님에게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면 투자할수록 손해라는 생각이 들고, 최악의 상황은 이 손님이 사지 않고 떠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와이프는 '인터넷 최저가'보다 더 '최저가'로 혼수를 장만할 수 있었다. 이것이 코헨이 설명하는 '시간'을 내편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물론 책에는 더욱더 치졸(?)하고 치사(?)한 방법으로 서술이 되어있다. 약간 반감이 들 수는 있지만, 세계적인 협상 전문가가 괜히 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 동시에 내가 왜 늘 협상에 실패했는지도 돌아보게 된다.
저자가 말하듯이 인생의 8할은 협상의 연속이다. 아,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3개월 내에 '임금 협상'이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뭐 하고 있나? 얼른 '협상의 법칙'을 공부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