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이런 기분일까?
얼마 되지 않는 30년 인생이지만 승용차부터 버스, 불도저, 펌프카, 포크레인 등 바퀴 달린 것과 함께 평생을 살아오신 아버지 덕분에 내 인생 역시 바퀴 달린 것들과 함께였다. 그렇게 남들이 다 수능 공부할 때 '서스펜션'이라는 것을 혼자 검색해서 공부하고, 스무 살이 되어 친구들이 다 OT, MT, 클럽을 놀러 다닐 때 열심히 설계를 배워 자격증을 따고 현업으로 바로 뛰어들었다. 22살 주입식 교육의 산물이었던 나는 회화 한마디 못하는 대학생인 채로 글로벌 비즈니스 전쟁에 참전해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 비즈니스 전쟁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열정과 노력만 가상했고, 넘치는 패기에 엄청난 운이 따라준 것 같다. 계약을 먼저 성사시키고 그들과 현업에서 부딪히며 말하는 법을 완전히 새고 익혔다. 그렇게 나는 야생에서 비즈니스를 배웠고 그 당시에는 스스로 하고 있는 일들이 2019년이 되어 얼마나 가치 있고 대단한 일인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8년이 흘렀고 한 영화를 마주했다
3,000명의 차쟁이로 가득 찬 나의 SNS 계정에 한 영화의 소식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포드V페라리>였다.
"포드랑 페라리랑 뭐 어쨌는데?"라고 생각하는 찰나 "잠깐, 포드?? 포드랑 페라리??"라는 생각과 함께 포스터로 눈이 향했다. 그 포스터에는 굉장히 낯익은 차 한 대가 보였다. 바로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을 이끈 'FORD'사의 'GT40 MK2'과 스포츠카의 레전드 'Ferrari'사의 '330 P3' 모델이었다. 그 순간은 단순히 차를 좋아하는 '차쟁이'라서가 아니라 반드시 이 영화를 봐야만 하는 이유가 된 순간이었다.
위에서 얘기한 실력도 없이 열정만 가득한 시절, 영화에 나온 MK2와 동일 모델은 아니지만 GT40 차량을 실제로 보았다. 그냥 지나가는 길에 차량을 본 것이 아니라 이 차량을 '만드는' 곳을 직접 방문했다. 사실 그때 이 차량이 굉장한 역사를 갖고 있고 미국인들이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듣긴 했는데 '포드'의 레이스카라... 그다지 끌리지 않아 그러려니 했었다.(실력도 없었던 게 건방지기까지 했나 보다.)
GT40의 부품을 수출하다
내가 방문했던 곳은 미국의 Ford사가 아니다. 호주에 있는 'Roaring Forties'라는 회사였다. 이 회사에서는 포드에서 인증을 받아 GT40을 다시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냥 차를 만들어서 파는 것뿐만 아니라 고객이 '직접' 차를 조립해볼 수 있도록 거대한 키트도 판매하고 있다. (지금까지 구매하지 않고 잘 참고 있는 나 자신을 칭찬해본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엔 정말 진심으로 구매를 마음먹을 뻔했다.) 우리는 Roaring Forties에서 새롭게 생산되고 있는 GT40에 사용될 서스펜션(자동차의 승차감, 핸들링을 담당하는 부품. 사람으로 치면 관절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브레이크 (자동차를 멈추게 하는 장치. 영화에서도 실제 이 브레이크 때문에 많이 고생을 했다.)를 수출하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
갑자기 왠 소크라테스, 플라톤이 생각나는 말이냐고?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GT40이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 차라는 것을 부끄럽게도 알지 못했다. 특히, 영화에 나오는 Shelby의 경우에 자동차를 좋아하는, Ford의 머스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그 Shelby가 맞다. 머스탱의 경우 현재 우리 회사가 수출하는 품목 중 단일 품목으로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 시장은 'Shelby'와 'Roush'라는 두 회사사의 제품들이 거의 독점하다 시키 하고 있는 시장이다. 이런 시장에서 아직 미국 본토는 아니지만 호주에서는 그들의 판매량을 넘어서는 영광을 맛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2020년에는 반드시 미국 시장에서 Shelby 제품을 제치고 머스탱 튜닝 부품의 No1이 되리라 다짐했던 적도 있다. 단, 어디까지나 이 영화를 보기 전 까지만. 그렇다고 지금 "영원히 'Shelby'를 이길 수 없어"라는 제한적 믿음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Shelby 팬들은 단순히 그 부품이 좋아서만 사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Shelby American'은 미국에서 엄청난 '브랜딩'이 되어 있다는 것을 지금은 명확히 알고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도 모른 채 타국에서 조금 잘 팔린다 해서 "미국 시장을 점령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은 필패의 지름길로 가는 지옥행 열차를 타는 것이다.
이렇게 포드V페라리 라는 영화는 지금도 여전히 열정 넘치는 청년 사업가에게 '너 자신을 알라'라는 근본적인 깨닫음을 다시금 되새기도록 해주었다.
Shelby는 없지만 나는 존재한다
이제 Shelby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우상화'되어 브랜드로 남아버린 그의 이름은 나에게 높은 절벽이지만 350km/h를 달리던 시절이 그들의 황금기였다면, 지금 2019년은 1200km/h를 목표로 하는 '초음속 열차'가 개발되고 있는 시대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시대에 존재하고 있다. 언젠가는 나도 우리만의 '브랜딩'으로써 역사 속에 남아있을 가치가 있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아, 혹시 이 영화를 봤건 보지 않았던 꼭 추천하고 싶은 영상이 있다. 바로 '조승연'작가님의 <포드V페라리>에 대한 역사적 배경 해설이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영화를 보고싶게 만들고 영화를 봤다면 영화의 의미를 더 재미있게 기억에 남게해주는 그런 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gAqxHDiXn4&t=6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