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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orge Chung Jan 31. 2021

Extra. 고요한 열정의 섬. 제주도

용암을 머금은 섬. 제주도

아마 국내에서 가장 자주, 가장 많이 가본 곳을 말해보라 했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 바로 제주도일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첫 제주도는 아직은 밀레니엄이 오지 않은 세기말의 혼란한 시기였다. 어리기만 한 나로서는 제주도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소철부터 민속촌의 똥돼지까지. 어느 것 하나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때부터 제주도에는 참 많은 추억이 있다. 비를 맞으며 모래펄에서 조개 잡던 일, 도깨비 도로에서 미끄러지는 차를 보며 놀랐던 일, 눈 덮인 한라산에서 감탄 말고는 할 말을 잊어버렸던 일 등. 떠올릴수록 가족과 친구들과의 행복한 기억이 줄줄이 이어진다.


최근에는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더욱 살린 관광지부터 재밌고 신기한 박물관까지. 놀거리, 볼거리, 먹거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약대에 다니던 4년간 제주도에 찾은 횟수만 4번이 넘는다. 이제 그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2016년 겨울. 새해맞이를 준비하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 새해는 제주도에서 맞이하는 게 어때?”


제주도라면 언제든 찬성이지.

이번 여행의 주제는 제주도의 자연풍경이다. 가장 기대되는 것은 역시 눈 덮인 한라산이다.

그렇게 12월 28일이 다가왔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대구공항으로 향한다.

대구공항에서 제주도는 40분 정도의 비행 끝에 도착할 수 있다.

그리도 춥던 대구의 칼바람이 무색하게 제주도는 따스함마저 느껴진다. 역시 바다를 낀 섬답게 온화하다. 그래도 바람이 불면 춥기는 하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렌터카를 인도받으러 간다. 주차장에 있는 업체 전용 주차장에 가면 그들의 사무소로 안내해줄 픽업 버스가 우리를 기다린다. 그들을 따라가 꼼꼼하게 차를 확인하고 열쇠를 건네받는다. 이제부터 제주도 여행의 시작이다.

몇 주 전 어머니가 거문오름이란 곳을 예약해두셨단다. 최근에 개장한 곳으로 오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목적지를 거문오름으로 정한다.

거문오름에 대해 가볍게 설명하자면 그 이름은 돌과 흙이 검은색이 많다 하여 정해졌다고 한다.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이곳은 용암협곡 또는 붕괴 도랑이라 불리는 지형이 발달되어있다. 특히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라 부르는 동굴계로도 유명하다. 거문오름에서 시작된 용암의 흐름이 북북동 방향으로 흘러 선흘 수직동굴, 뱅뒤굴, 웃산전굴, 북오름굴, 대림동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등을 통해 해안선까지 이어진다. 이곳에는 곶자왈이라는 특징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곶자왈이란 돌무더기로 인해 농사를 짓기는 힘들어 방목지로 이용하거나 숯을 만들고 약용식물 등을 채취하던 곳이었다. 이곳은 특이하게 용암이 만들어낸 지형 덕분에 다량의 지하수를 머금고 있어 북방한계,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숲을 만들어준다. 특히 이곳의 숨골이라는 곳을 통해 여름에는 시원한,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와 식생을 더욱 다양하게 해 준다.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매표소로 향한다.

거문오름은 자연보호를 위해 관광객 수를 철저하게 통제한다.

예약증을 보여주니 목걸이 형태의 입장권을 준다. 이제 가이드만 기다리면 출발이다.


우중충한 날씨가 살짝 걱정이 되던 즈음 가이드가 우리를 부른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거문오름에 대해 간단한 설명이 끝나고 산길로 들어간다. 출발점에서 1~2분을 걸어갔을까. 나무가 우거진 숲길이 시작된다.

거문오름의 식생은 참으로 다양하다. 삼나무와 편백의 보호를 받으며 30여분을 올라가니 관목림이 나타난다.

때마침 구름이 우리를 감싸며 지나간다. 능선 한편에 만들어진 전망대에서 제주도를 내려 본다.

길 끝 너머로 능선 한쪽이 크게 내려앉아있다. 저곳이 바로 용암이 쓸려 내려간 방향이라고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오름의 속을 보기 위해 길을 따라 분지 안으로 내려간다.

그리도 흐리던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한다.

오름으로 내려가면 수직 동굴 등 용암이 흘러갔던 길을 직접 볼 수 있다. 여기서 유래된 용암이 만장굴을 지나 바다에 이르다니. 자연의 위대함에 놀라울 따름이다.

숨골 주변으로는 후덥지근한 습한 공기가 뿜어진다. 그 덕분인지 이끼가 가득하다. 한 겨울에 양치식물과 이끼, 버섯이라니. 마냥 신기하다.

이곳은 과거 나무꾼들이 나무를 잘라 숯을 만들던 터도 많다. 딱히 농업용으로 쓰기 힘든 곶자왈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월을 떠안고 흔적만 남아 이곳이 집과 가마터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거문오름에 들어온 지 한 시간이 지났을까. 인위적으로 만든 조그마한 굴이 보인다. 성인 남성이 고개를 숙여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이다. 가이드 말로는 일본군이 만든 갱도 진지란다. 이런 천혜의 풍경조차 그들에게는 수탈의 대상이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일제의 야만성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은 아직도 우리를 슬픔에 빠뜨린다.

특히 제주도에는 이런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수많은 오름과 해안절벽에 굴을 파고 진지를 구축해 두었단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자연이 희생되었을지...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가다 보면 특이한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구가 아닌듯한 신기한 풍경이다.


과거 전국은 녹지화 산업으로 외래종인 삼나무와 편백 등으로 인공조림을 시작했다. 빨리 자라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나라의 산들은 금방 푸르름을 찾았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제주도의 자생 수종들이 성장에 밀려 살아남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최근 거문오름에는 식생 정비 사업을 통해 중심부부터 차근차근 외래수종을 벌채할 예정이라고 한다. 실제로 거문오름의 출구 쪽에는 켜켜이 쌓인 나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거문오름의 끝. 녹지화 사업의 영향인지 나무의 간격이 일정하다.

거문오름의 구경이 끝날 즈음 구름 사이로 해가 나오기 시작한다.

저녁시간이 다가오는지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우리는 서귀포로 이동해 흑돼지를 먹고 숙소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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