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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orge Chung Jan 31. 2021

Extra. 고요한 열정의 섬. 제주도

용암을 닮은 하늘을 담은 섬. 제주도

2016년의 마지막의 시작은 향긋한 커피 향과 눈부시게 푸르른 하늘과 함께이다. 살짝은 차가운 공기가 상쾌하게 머리를 헝클어뜨린다.


첫 목적지는 동백동산이다. 이름답게 동백나무가 많은 곳이다. 동백 외에도 난대성 수림이 잘 가꾸어진 숲이기도 하다. 만장굴로 가는 길목에 있어 무심코 지나치기 쉽다. 

주차장에 들어가니 약간의 차만 주차되어있다. 숲의 입구에는 돌하르방이 우릴 맞이한다. 숲이라 많이 올라가야 할 것 같지만 이곳은 완만한 평지로 산책하기 딱이다. 입구로 들어간 순간 거대한 나무들이 태양을 가린다.

겨울임에도 도토리가 있는 모양이다. 몇몇 사람이 줍고 있다. 작은 동물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도토리였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씁쓸하게 바라보고 다시 길을 나선다.

넝쿨식물로 한 가득이다. 살아 숨 쉬는 자연이란 건 이렇게 다양한 식생이 서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겠지.

수초로 가득한 연못을 지나니 숲이 끝날 기미가 보인다. 저 멀리 빛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잠시 동안의 산책으로 더워진 건지, 날씨가 더운 건지 땀이 나기 시작한다. 제주도의 낮은 겨울 같지 않아 좋다. 

차로 돌아와 가볍게 끼니를 때운다.


두 번째 목적지는 만장굴이다. 사실 오늘의 주 목적지였다. 

만장굴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첫날 갔던 거문오름까지 이어진다. 만장굴은 8928m나 되는 굴의 크기답게 제주도 방언 중 아주 깊다는 뜻의 만쟁이거머리굴로 불렸다고 한다. 이 굴은 김녕사굴, 용천동굴, 제주당처물동굴로 이어져 해변까지 닿으며 남쪽으로는 거문오름까지 이어지는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중 하나이다. 내부의 높이와 너비도 만만치 않다. 용암 동굴답게 용암 종유, 용암석순 등과 함께 매끈한 벽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만장굴의 입구는 총 3개로 그중 제2입구인 남산거머리굴만 대중에게 공개되어있다. 내부를 보기 위해서는 대략 1시간이 소요된다. 그 끝에는 용암이 떨어져 굳은 돌기둥이 있다.

만장굴은 초등학교 이후로는 처음이다. 정말 오랜만에 찾은 곳답게 곳곳에 추억이 묻어있다. 멀리서 보이는 매표소와 개표구는 그때 기억 그대로이다. 빛바랜 간판과 녹슨 철봉을 통해 시간이 상당이 흘렀음을 알 수 있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한 뒤 꽤나 깊은 계단을 내려간다. 점점 따뜻하고 축축한 바람이 올라온다. 내부는 연중 12도를 유지한다고 하니 그 덕분인 듯하다.

약간 들어가면 6m는 되어 보이는 높은 천장이 나온다. 한때 제주관박쥐와 긴가락박쥐가 수많이 살았을법하다.

한참을 걸었을까. 동굴의 분위기가 바뀐다. 용암선반, 용암 표석 등 다양한 용암동굴생성물이 나온다.

조금 더 걸어가니 거대한 용암 기둥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공개된 길의 끝에 다다랐다. 천장 위에 난 조그마한 구멍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하니 놀랍다.

다시 돌아가는 길. 익숙해져서인가 디테일에 눈길이 간다. 특히 벽면의 질감이 눈에 들어온다. 매끈하게만 느껴졌지만 자세히 보니 온통 울퉁불퉁하다. 내가 용암이 된 것 마냥 벽면을 훑어본다. 차가운 기운이 손끝으로 전해진다.

눈 앞으로 나무가 보이는 것을 보니 드디어 동굴의 마지막에 도착했나 보다. 

동굴을 나오니 상당히 배가 고프다. 아직 노을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 서쪽으로 향하며 식사를 하기로 한다.


겨울이라 확실히 해가 빨리 진다. 오후 5시인데 벌써 하늘이 불그스름해지기 시작한다. 서쪽 해안을 따라 마냥 내려가고만 있다가 한림읍 근처 해안도로에서 처음 보는 비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비양도를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벌써 꽤나 많은 사람들이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나도 서둘러 삼각대를 설치한다.

2016년의 마지막 해가 지고 있다. 별일 없이 무사히 지나간 한 해에 감사할 따름이다.

참 많은 일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항상 날 바라봐준 태양에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내년도 잘 부탁해! 내일 아침에 다시 인사하자!

태양도 마지막이 아쉬운 지 바다 위에 그 흔적을 남긴다.

마지막 해를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정난주 마리아의 묘에서 기도를 드리고 근처 성당으로 향한다. 올해 마지막 미사와 함께 2016년을 배웅한다.


새벽 5시. 어두컴컴한 하늘이 지금의 시간을 보여준다. 2017년의 첫 해를 보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선다. 성산일출봉에는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매표소로 향하는데 직원들이 막아선다.


“안전 문제 상 부득이하게 인원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더 이상의 등반은 힘들듯합니다.”


낭패다. 하긴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 테고 일출봉은 생각보다 좁으니 미리 이 사태를 예상했어야 했다. 터벅터벅 차로 돌아간다. 이대로는 포기할 수 없다. 문득 과거 다른 곳에서 본 일출이 떠올랐다.

섭지코지로 향한다. 성산에서도 멀지 않아 금방 도착했다. 다행히 사람이 적다. 해변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는다.


불안함이 밀려온다. 하가 뜰 시간이 다가왔음에도 어둡기만 하다. 자세히 보니 구름이 한가득이다.

2017년 첫 태양은 수줍음이 많은 모양이다.

1시간이 지나자 저 멀리 구름을 뚫고 해가 온 세상에 빛을 뿌린다. 한 해의 시작이 기대된다. 중요한 일이 많은 한해인 만큼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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