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말. 면접 준비를 하던 중 아버지한테 연락이 왔다.
"아들! 2월이면 면접이랑 합격 발표랑 전부 끝나지? 동생도 그때면 방학이고 너도 별일 없으니 가족여행이나 가자."
이때 까지만 해도 면접 준비에 혼이 빠져있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몇 달 뒤 합격 소식을 받고 보니 벌써 여행 출발이 코앞이다. 이제부터 다닐 경상대가 있는 진주로 내려갔다. 진주는 생각보다는 큰 도시였다. 일 년 정도 지낼 집을 구한 뒤 서울로 돌아오니 출발이 며칠 남지 않았다. 부리나케 출발 준비를 하고 비행기에 몸을 맡긴다.
이번 여행의 경로는 네덜란드를 거쳐 포르투갈 리스본, 파티마, 신트라를 거쳐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로 들어간다. 그 후 자동차를 타고 스페인 전국 일주를 한 뒤 바르셀로나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저 대략적인 일정과 비행기 표 그리고 몇몇 파라도르라 불리는 숙소 바우처가 우리가 가진 전부이다.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앞으로의 일정을 가늠해본다.
이륙과 함께 내 마음도 들뜨기 시작한다.
새벽 5시.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이다. 주변은 아직 어둡기만 하다. 갈아탈 비행기가 오후인 만큼 우선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한다.
짐들은 스스로 비행기를 옮겨 타고 있으니 그저 홀가분할 따름이다.
문득 짐의 무게가 마음의 무게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은 역시 가볍게 떠나야 한다.
공항에서 도심까지는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상당히 가깝다.
새벽의 암스테르담은 이른 시간부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커피 한 잔으로 잠든 뇌를 깨워본다. 카페인이 뇌혈관을 타고 돌자 감겨가던 눈이 떠진다.
잔스스칸스로 향할 기차표를 사러 간다.
잔스스칸스는 암스테르담 근교로 풍차와 튤립이 유명한 곳이지만….
겨울인 데다 아직 이른 아침인 그곳은 조용한 어둠으로 가득하다.
어둠 속에서나마 풍차를 보고 아쉬운 발걸음을 떼어본다.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 멀리 붉은빛이 돌기 시작한다.
암스테르담의 아침은 분주하다. 자전거를 타고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고흐 미술관을 향하는 우리는 여유롭기만 하다. 문득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고흐 미술관은 벌써 줄이 길다. 그래도 걱정만큼 오래 기다리지 않아 다행이다.
미술관에는 우리가 흔히 교과서에서 보던 유명한 그림들이 많지는 않았다. 특히 보고 싶었던 “별이 빛나는 밤”의 경우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되어있다고 한다. 하지만 고흐의 작품은 그 자체로도 나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그가 느꼈을 고뇌, 절망, 환희 등이 전해진다.
벌써 리스본으로 갈 시간이 다가왔다. 다시 기차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한다.
기차 창문으로 보이는 운하, 주택가.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아쉬워 열심히 두 눈에 담는다.
몇 시간의 비행 끝에 리스본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있다.
암스테르담은 가벼운 산책을 다녀온 느낌이라면 이제는 진짜 여행을 온 기분이다.
체크인하러 호텔로 향하는 길, 리스본 시내는 조용하게 오랜 건물들이 유럽 특유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중간중간 귀여운 쓰레기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재치 있다!
도시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미관에도 좋은 쓰레기통은 도시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이 느껴진다.
짐을 풀고 나니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려 한다.
일몰을 보기 위해 Miradouro Sophia de Mello Breyner Andresen로 향한다.
전망대로 향하는 길은 건물 모양을 한 절벽 사이로 난 오솔길 같다. 광장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 뒤 골목길을 따라 올라간다.
전망대의 풍경은 오르막길을 올라오느라 흘린 땀방울을 아깝지 않게 한다.
탁 트인 풍경은 좁은 비행기에 마음까지 구기고 있던 나를 해방시켜준다.
노을이 비치는 리스본의 풍경은 참 아름답다. 노란색과 붉은 지붕, 회색 벽이 참 잘 어울린다.
옆의 카페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 난간에서 속삭이는 연인들의 사랑까지 모든 게 한 폭의 그림이다.
곧 어스름이 내리자 리스본의 풍경은 다시 한번 변한다.
어둠은 모든 것을 삼키려하지만 도시의 야경과 사람들의 열정까지는 삼키지 못한다.
낭만은 어둠을 물리치고 그곳에 똬리를 튼다.
유럽의 첫날이 이렇게 지나간다.
포르투갈에 왔으니 와인 한 병 사 들고 호텔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