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HOLA SPAIN

성모가 내린 땅. 파티마

by George Chung

시원한 새벽 공기 덕분에 내 마음까지 상쾌해진다.
이른 새벽, 오늘은 파티마로 떠나본다.
파티마는 바티칸에서 정식 인정한 성모 발현 장소다.
가는 방법은 항공편, 버스, 기차가 있지만 우리는 버스로 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아직 해가 뜨지도 않은 아침인 만큼 버스에 앉자마자 잠이 밀려온다.
도착했다는 알림과 함께 눈에 들어온 건 매우 작은 시골의 버스정류장이다. 포근함마저 느껴진다.
버스정류장에서 성당이 있는 광장까지는 걸어서 15~20분가량 걸린다. 산책하기 딱 좋은 거리다.
걸어가는 길은 길쭉한 상록수가 가득하다.
푸르름을 넘어 성스럽다. 하나하나가 종탑인 양 우리를 내려다본다.
한참을 걸었을까? 저 멀리 광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광장에 들어서니 예수와 십자가가 우리를 환영한다. 우리는 몇 시간만이라도 각자의 여행을 하기로 한 뒤 파티마 구석구석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파티마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기분 좋은 공간이었다. 탁 트인 광장과 우리를 굽어보는듯한 예수와 성인들, 생각과는 다르게 소박한 성당은 겸손함을 가르치는 듯하다.
그저 있는 것만으로도 안정이 되고 차분해지는 공간이다.
성지라는 편견과는 다르게 부담감이 없는 참 편안한 공간이다.
한참을 걸으며 그동안 고생했던 일들을 털어내고 앞으로의 삶을 고민해보기 충분한 공간이었다.
다시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이 아쉬우면서도 앞으로의 여행에 축복이 함께 할 듯하여 기분이 좋다.

아직 점심 전. 우리는 리스본으로 다시 이동하여 점심을 가볍게 먹기로 한다.

어제는 저녁에 도착해서 리스본을 제대로 못 봤으니 본격적으로 리스본 여행을 시작한다. 우리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이동한다. 시내버스를 타면 금방이다.

파티마에는 구름이 가득했는데 리스본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다. 화려한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소박한 파티마와 대조를 이룬다. 세심한 파사드는 우리를 유혹한다. 거대한 마누엘의 건축물은 우리를 압도한다. 무언가 홀린 듯 수도원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내부도 아름다운 세공들로 가득하다. 당시 포르투갈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인도에서 귀환한 바스코 다 가마가 얼마나 감격했을지 조금이나마 감이 잡힌다.

수도원의 내부 정원은 아름다운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이다.
과거 제로니무스는 항해 길에 나서는 선원들이 배에 타기 전에 기도를 올리기 위해 많이 들렀다고 한다. 얼마나 그들의 마음에 위안이 됐을지.
나도 앞으로의 인생이라는 항해에 평안함이 가득하길 속으로 빌어본다.

이후 발견 기념비(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포르투갈의 용감한 선원들과 그들의 후원자를 기리기 위한 기념비, 바스코 다 가마가 항해를 떠난 자리 위에 지었다), 벨렝 탑(바스코 다 가마의 원정을 기리는 기념탑) 등 벨렝 지구를 둘러본 뒤 해가 지기 전 신트라로 빠르게 이동한다.
신트라는 유럽의 끝이라 불리는 호카곶이 있는 곳이다.
신트라 역에서 내리면 투어를 모집하는 택시기사들로 한가득이다. 우린 그중 한 명과 이야기를 하면서 일정을 잡아본다. 다행히 베테랑을 만났다.

먼저 신트라의 유명한 페나성으로 향한다. 노랑과 빨강의 조화가 강렬하다. 아직 산 밑에 있는데도 저 멀리 성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장난감 같은 성이다.

차를 타고 조금 올라가니 벌써 성 앞이다.

내부의 회랑을 지나가다 보면 귀족들이 쓰던 집기가 전시되어있어 그 당시 귀족의 생활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페나성에 관해 설명하자면, 고딕, 이슬람,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된 이 성은 19세기 낭만주의를 대표한다고 한다. 게다가 현재는 국가 소유의 박물관으로 쓰고 있어 포르투갈 왕실의 생활상을 살펴보기 좋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성이 작았다. 보통 성이라 하면 웅장함을 떠올리지만, 이곳은 귀족의 저택과 요새를 합쳐 둔 느낌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아기자기함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기는 하다.

성 외부를 따라 걷다 보면 아찔한 절벽을 만날 수 있다. 조심 또 조심.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구름이 한가득이다. 일몰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문득 애써 무시한다.
이제 호카곶으로 이동할 시간이다.
호카곶은 유럽 대륙의 가장 서쪽 끝으로 대서양을 내려다볼 수 있다. 곶에는 증명서도 발급해 준다.
호카곶 주차장에 도착하자 어둑어둑 해지는 게 금방 해가 지려나 보다.
빠르게 탑으로 이동한다.

아! 다행히 구름 사이로 해가 보인다. 유명한 호카곶의 일몰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겠다.
십자가 탑으로 조금 더 다가간다.

“여기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Onde a terra acaba e o mar começa)”

포르투갈 시인 루이스 바스 드 카몽이스의 우스 루지아다스의 시 한 구절이 적혀있다.
절묘하다.
극동의 한국이라는 동방의 해 뜨는 나라에서 날아와 유라시아 대륙의 극서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한참을 지는 해를 바라보다 보니 땅거미가 내려앉는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안내소로 들어가니 기념품과 함께 증명서 발급도 해준다.
기왕 왔으니 증명서 한 장쯤은 괜찮잖아?
오늘은 야간열차를 타고 마드리드로 넘어가야 하는 날이라 늦지 않게 리스본으로 이동한다. 저녁 대용으로 광장에 있는 빵집에 들어가 빵을 하나 산다. 빵이라는 단어의 어원인 나라에 와서 하나쯤은 먹고 가야지. 엄청 크고 알록달록한 빵이었다. 달콤하다. 맥주를 사 오길 잘했다.
기차에서 기분 좋게 잠들게 해 주는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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