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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캐니 Nov 13. 2020

오늘의 엄마 이야기(20.11.12.)

11월은 김장 걱정하는 달

아가씨였던 엄마는 앞집에 살던 종식이 엄마와 밥 먹던 이야기로 흘러간다.

점심때 되면 아가씨야 밥 먹자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시어머니랑 둘이서 밥 먹는 게 싫었는지, 시어머니는 둥근 밥상에 밥 차려 주고 꼭 나를 불러서 나하고 종식이 엄마하고 작은방에 가서 밥을 먹었어. 시어머니가 이가 없어서 합죽이처럼 텁텁 거리면서 밥을 먹으니 같이 안 먹고 싶은 모양이더라. 허허허"

엄마의 집엔 수도가 없어 종식이네 물을 먹었다. 그래서 왕래가 잦았고 서로 끼니도 같이 먹는 사이였다.

종식이 아저씨는 큰 가방을 메고 일주일에 한 번씩 어딜 다녀왔다.

돈 벌러 다녀오는 모양인데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도둑질만 아니면 되지 뭐. 녹음테이프 팔아서 얼마나 남는다고. " 

종식이네는 레코드 가게를 했다.

결혼 전이었던 엄마의 눈에도 시집살이하던 그 아주머니가 보였나 보다.


김장을 해야 한다고 걱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하루 종일 티브이를 보시는 엄마가 채널을 돌리는 곳마다 김장재료를 팔거나 김장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아프기 전엔 21가구가 있는 작은 빌라에 살았다.

빌라 가운데 수도꼭지가 3개 달린 수돗가가 있었고 그 바로 앞 1층이 우리 집이었기 때문에 네댓 집의 아주머니들이 모여 우리 집과 수돗가를 왔다 갔다 하며 김장을 했다.

김장하기로 결정한 날은 마치 수능날처럼 왜 그렇게 추운지.

하긴 춥지 않아도 날씨가 푹하면 김치가 빨리 쉬어버린다고 걱정이었다.

팔뚝까지 올라오는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대야마다 아이들 이름이 적힌 자기 대야에 노랗고 하얀 절인 배추가 가득가득 쌓여있었다.

김칫소를 넣을 때면 빨간 고춧고루양념 산을 중심으로 둥글게 앉아 부지런히 양념을 발라 차곡차곡 김치통에 넣었다.

사람 한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만한 빨간 대야를 아주머니 두 분이 낑낑대며 끌고 나가고 들어갔다.

정리하는 일 정도만 도울 수가 있었는데, 방바닥에 묻은 고춧가루 정도를 닦아내며 반짝거리면서 가지런히 쌓여있는 김치통 여덟 개를 올려다보면 그렇게 아주머니들이 위대해 보였다.

대단한 노동력의 산물이자 한겨울의 든든한 먹을거리의 완성이었다.

갓 만든 김장김치에 둘둘 말아서 먹으면 한없이 입에 들어가는 뜨끈한 돼지고기 수육

반찬이 없어도 늘 든든한 친구가 되어 김장김치에 돼지고기나 참치를 넣어 끓여내는 김치찌개. 

김장김치가 거의 끝나갈 무렵 잘게 썰어 김칫소를 만들어 먹는 만두.

집에서 밥을 만들어내는 주방일을 맡다 보니 김장김치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알게 되었다.

시골에서는 배추를 심는 것부터 김장의 시작이니 겨울의 시작은 '김장'이 설날이나 추석처럼 하나의 명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맘 카페엔 10월부터 시댁의 김장 걱정을 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마치 추석과 설날의 전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나는 올해는 정말 김장을 하지 않는다.

시어머니가 그동안 해주셨는데, 작년 항암치료를 하시고부터 김장을 안 하신다고 선언하셨다.

올해는 각자 집마다 김장김치를 사 먹기로 했다.

시원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올해는 김장 안 하나?"

엄마가 또 물으신다.

11월이 좀 지나야 김장 걱정을 덜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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