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모르고 지나간 날들
엄마에게는 쉽게 고치지 못한 습관이 있었다.
바로 ‘비밀을 만드는 일’이었다.
삼 형제 사이의 갈등을 피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 같았지만,
그 방식은 오히려 더 큰 오해와 서운함을 만들었다.
집안 대소사가 있으면, 엄마는 여동생에게만 연락했다.
“친척 여동생이 이번에 결혼한다더라.”
“이번 주말에 삼촌네서 가족 모임이 있다더라.”
“이모네 딸이 취업했다더라.”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늘 행사나 모임이 끝난 뒤
여동생을 통해 알게 됐다.
“언니, 왜 그날 안 왔어?”
“무슨 날?”
“OO 결혼했잖아. 언니 안 왔길래 이상했지.”
“나, OO 결혼한 줄도 몰랐어.”
서운한 마음에 엄마에게 물었다.
“아무리 친하지 않은 친척이라도, 경조사는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엄마의 대답은 늘 같았다.
“괜히 너한테 부담 줄까 봐.”
내가 결혼하고, 여동생이 결혼한 뒤에도 이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남편 앞에서 얼굴을 들기 힘들었고,
서운함은 조금씩 쌓여만 갔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남동생이 대학 졸업 후 일본으로 단기 유학을 갔을 때였다.
엄마와 여동생이 자주 연락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엄마 집에 놀러 갔다가 냉장고에 붙은 한 장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동생네 가족과 엄마, 아빠, 남동생이 함께 찍은 일본 여행 사진이었다.
“이 사진 뭐예요?”
“며칠 전에 다녀왔어. 넌 직장 다니고 시간 없을 것 같아서 안 물어봤지.”
나도 서운했지만, 특히 아들이 많이 속상해했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자라며 삼촌을 유난히 따랐던 아들이었기에
서운했던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의 이런 행동은 형제들 사이를 더 멀게 만들었고,
때로는 남보다 못한 사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여동생의 ‘비밀 만들기’는 여전했고,
그로 인해 내가 큰 상처를 받는 일이 생겼다.
분노한 나는 여동생에게 심한 말을 쏟아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사정도 묻지 않은 채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마침 아들이 집에 있었지만,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냥 가세요”라고 했다.
아들은 상황을 전혀 모른 채,
그 장면만 보고 나와 며칠간 말을 하지 않았다.
며칠 뒤, 엄마의 그런 행동이 너무 충격이었다고 말하며, 다시는 할머니에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들의 말에 서운함을 느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엄마는 상처를 주는 사람이지만,
내 아이에게 외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들이 열이 펄펄 날 때 응급실에 함께 있었던 사람도,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던 사람도,
“너는 최고야”라고 말해주던 사람도,
분리불안으로 울며 유치원에 가던 날 하루 종일 유치원 정문 앞을 지켜준 사람도,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일찍 하교하는 날마다 학교 앞에 서 있던 사람도
모두 할머니였다.
아들이 사랑하는 할머니와,
그 할머니와 갈등하는 엄마를 동시에 보는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아들에게 엄마와의 관계를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은 내가 할머니에게 쌀쌀맞게 구는 이유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 어떤 감정을 품었을지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아들은 할머니를 사랑했고, 나 또한 아들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놓인 갈등과 감정의 골은,
마치 얇은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로웠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아들이 할머니를 만나고 온 날에는 아들의 눈동자 속에 설명하기 어려운 그늘이 번져 있었다.
그 그늘이 나를 향한 건지,
아니면 나와 할머니의 관계를 향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알았다.
이건 단순히 ‘엄마와 딸’의 싸움이 아니라,
‘나와 아들’의 관계에도 스며드는 이야기라는 것을.
엄마와의 갈등은 평생 품고 가야 하는 내 몫이라 여겼지만,
아들에게까지 그 상처의 그림자가 번지는 건 막고 싶었다.
그렇기에 언젠가 한 번은 용기를 내야 했다.
아들이 독서실에서 울며 돌아온 날.
닫혀 있는 문 앞에서, 나는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