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 앞에서

(9) 두 번의 전화... 남은 거리

by gina

여보세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화기 너머의 숨소리에는 묘한 긴장이 묻어 있었다.

“엄마, 나야.”

단 세 글자였지만, 그 말을 꺼내기까지 수백 번은 삼켰던 것 같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심장은 더 크게, 더 빠르게 뛰었다.

과거의 장면들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싸늘했던 식탁, 닫히던 방문, 외면했던 순간들.

그러나 이번엔 달라야 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을 위해서라도.


“웬일이냐. 전화도 다 하고.”

엄마의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배어 있었다.

“잘 지내시는지 궁금해서요. 잘 지내시죠?”

“그럼. 아빠랑 나는 잘 지낸다. 애들은?”

“아이들도 잘 지내요. 그럼 나중에 다시 전화드릴게요.”

어색함을 이기지 못해 통화를 서둘러 끝냈다.

전화를 끊자 마음은 복잡했다.

목소리가 예전보다 한층 늙으신 듯했는데, 내 기분 탓일지도 몰랐다.


그날 저녁, 아들에게 말했다.

“오늘 할머니께 전화드렸어. 건강하게 잘 계셔. 이틀 뒤에 다시 전화드릴 거야.”

아들은 “알았어” 하며 방으로 들어갔고, 그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진작 연락을 드렸다면, 아들의 마음이 덜 힘들었을까. 너무 나만 생각한 것 같아 미안했다.




이틀 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첫 통화보다 오히려 더 힘들었다.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번호를 눌렀다.

이번엔 벨이 울리기도 전에 엄마가 받으셨다.

“○○야, 밥 먹었니?”

“먹었죠. 엄마는 아침 드셨어요?”

“그럼. 먹고 운동도 다녀왔지. 그나저나 ○○는 잘 지내니? 고3이라 힘들 텐데.”

“그럭저럭 잘 지내요. 스트레스가 많겠죠.”

“고기라도 사주면 좋겠는데, 언제 한번 올래?”

엄마의 제안에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은 좀 중요한 시기라 어렵고, 수능 끝나면 갈게요.”

“그래, 지금은 예민하지. 그럼 끝나고 오너라.”


두 번째 통화는 첫 번째보다 길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은 불편했다.

엄마와 다시 잘 지내려면 언젠가는 과거의 상처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묻고 싶었다.

그 의문이 풀려야 엄마를 편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엄마의 사과를 원했다.

“그때 엄마 사정이 이래서 너에게 상처를 줬구나. 하지만 진심은 그렇지 않았다. 미안하다.”

이 세 마디가 듣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을 직접 전하기보다, 여동생에게 화를 내고 엄마에게 쌀쌀맞게 굴며 표현해 왔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아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면, 누구도 내 속을 알 수 없다.

아들도 내게 표현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그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아들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외면하지 않고 엄마와 마주해야 한다고.

대면하기 힘든 이야기를 꺼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며칠 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솔직히 두 번째 통화보다 세 번째가 더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짐이 있었다.

과거의 무게를 마주하지 않으면, 우리 관계는 결코 달라질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밥 먹었니?”

언제나 그렇듯 평범한 안부 인사였다.

그러나 그날은 대화의 끝자락에서, 엄마가 갑자기 물으셨다.

“○○야, 엄마한테 뭐 서운한 거 있니?”

나는 잠시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엄마가 먼저 묻다니.

그 말속에는 억눌린 세월, 서로의 오해,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담겨 있는 듯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엄마는 그때의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실까.’

‘내가 받은 상처와 엄마의 의도는 얼마나 달랐을까.’

수많은 생각이 얽히고설켜 목구멍에 걸렸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엄마에게 단지 사과만을 바랐던 게 아니었다.

그때 엄마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진심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엄마도, 어쩌면 나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날 통화는 길지 않았지만, 내겐 아주 큰 울림으로 남았다.

엄마의 그 질문은, 오래 묵은 상처를 꺼내야 할 때가 왔음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이전 08화닫힌 문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