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이제 내가 열어야 할 문
“○○야, 엄마한테 뭐 서운한 거 있니?”
엄마의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서운한 거라뇨. 없어요.”
허겁지겁 대답을 내뱉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도 말하지 못하면, 우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 같았다.
그러기엔 부모님의 나이가 예전처럼 젊지 않았다.
나는 아들을 생각하며 용기를 냈다.
목소리를 들으면 감정이 흔들릴 것 같아, 문자로 대신하기로 했다.
내가 느낀 서운함, 그때의 감정들을 담아 몇 번을 쓰고 지우며 완성했다.
문자를 보내고 나니, 몇 달 전 아들이 내게 보냈던 장문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들도 이런 마음으로 문자메시지를 썼을까.
엄마가 내 글을 읽고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그 마음.
나는 과연 아들의 바람대로 행동했을까.
전송 버튼을 누른 뒤, 후련함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엄마는 읽었지만 답은 없었다.
예전부터 문자를 잘 안 쓰시던 분이니 그러려니 하면서도, 서운함은 감출 수 없었다.
며칠 뒤, 주말 오후.
“딩동—”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싶어 문을 열자, 현관 앞에 김치통과 보자기, 쇼핑백이 놓여 있었다.
곧 문자가 왔다.
“○○야, 반찬 가져다 놨다. 애들 잘 챙겨라.”
김치통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배추김치, 나를 위한 열무김치와 깍두기,
보자기엔 멸치볶음, 진미채, 피클, 얼려둔 미역국까지.
쇼핑백에는 냉장고 바지와, 엄마가 직접 만든 개떡과 돈가스가 들어 있었다.
그 가운데 작은 편지봉투가 있었다.
편지에는 아이들 용돈과 함께 메모가 들어 있었다.
“○○야, 엄마가 서울로 시집와 힘든 시절을 겪으면서
큰딸에게 나도 모르게 그 힘듦을 쏟았던 것 같구나.
애교 많고 싹싹한 동생과 달리,
네가 가끔 직설적으로 말할 때 엄마도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큰딸이 좀 어렵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직장 다니며 아등바등 사는 너에게
가족의 경조사까지 알리면 네가 더 신경 쓸게 많아지고 힘들까 봐서 말하지 않은 건데,
그게 잘못이었다는 걸 이제 알았다.
언제 한번 밥 먹으러 오너라.”
편지를 읽는 순간 깨달았다.
엄마도 그동안, 내가 닫아버린 문 앞에서 서 계셨구나.
아들의 닫힌 문 앞에서 서 있던 내 모습처럼.
엄마는 반찬을 만들고, 편지를 쓰고, 딸의 집 앞까지 와서 놓고 가신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전화를 걸었다.
“엄마, 들어오시지 왜 반찬만 두고 가셨어요?”
“너 없는 줄 알았지. 언제 한번 밥 먹으러 와라.”
“네. 갈게요. 반찬 잘 먹을게요. 감사해요..”
그날 저녁, 엄마 반찬으로 아들과 밥을 먹었다.
아들은 용돈을 받자마자 할머니께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드렸다.
“엄마, 이번 주에 할머니네 집에 밥 먹으러 가도 돼?”
예전 같으면 “다녀와” 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래, 같이 다녀오자”
아들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이번 주말에 엄마랑 같이 갈게요!”
전화를 끊고 내게 묻는다.
“엄마, 할머니네 집에 갈 때 뭐 사갈까?”
나는 곰곰 생각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게 뭐였더라.
그리고 다짐했다.
이제는 내가 문을 열 차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