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삼천 번의 절, 그리고 용기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라는 두 글자를 편안하게 불러본 기억이 별로 없다.
입술은 분명 ‘엄마’를 만들었지만, 그 속에는 설렘도, 기대도, 안도감도 없었다.
대신 ‘혹시 혼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움과, ‘지금 말을 걸어도 될까’ 하는 눈치가 먼저 앞섰다.
내 곁에는 늘 할머니가 계셨고,
엄마보다 할머니에게 더 많은 걸 의지하며 자랐다.
엄마는 나보다 여동생을 더 예뻐한다고 믿었기에,
더 어렵고, 더 멀게 느껴졌다.
그런데 아들을 위해서라도 이 관계를 그대로 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다치게 한 말과 행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평생 등을 지고 살 수는 없었다.
아들에게 ‘할머니와 엄마가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울고 있는 아들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에게 할머니는 최고의 할머니겠지만,
엄마에게 할머니는 어려운 존재야.
그래도 너를 위해 엄마가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해 볼게.”
아들은 내 말을 듣고 처음으로 경계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며칠 전 할머니댁에 갔을 때,
할머니가 많이 늙으셨다고 느꼈다며,
요즘 엄마도, 이모도, 삼촌도 연락이 뜸한 것 같아
혹시 두 분만 계시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부모님께 너무 무심했던 건 아닌지 돌아보았다.
“지금 당장 잘 지내긴 어렵더라도,
이틀에 한 번은 꼭 안부 전화를 드릴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엄마한테 연락이 올 테니 걱정하지 마.”
그 뒤로, 나는 과거의 상처보다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려 했다.
대만으로 가족여행을 갔던 일,
가족 모임에서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던 시간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키워주신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까지.
그러던 중, 수능 백일기도로 삼천 배를 하는 날이 다가왔다.
새벽 5시 반부터 시작해 점심도 거르고 이어간 끝에
오후 1시 반이 되어야 삼천 배를 마칠 수 있었다.
마지막 “삼천”이라는 숫자를 외칠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들에게 줬던 상처,
할머니와 나 사이에서 혼란스러웠을 마음,
그리고 여전히 힘들어하는 아들의 모습이 한꺼번에 떠올라
나는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기도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7개월 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이 두 번 울린 뒤,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듣는 그 목소리는 낯설고, 또 익숙했다.
입안이 바짝 마르고, 가슴이 조여왔다.
“여보세요?”
단 한마디였지만,
그 속에 담긴 수많은 감정이
나를 순식간에 과거로 끌고 갔다.
나는 숨을 고르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날,
우리 사이에 아주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