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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Jan 19. 2022

01. 떠나고 싶어질 때 꺼내먹어요

더 넓은 자유를 맛보고 싶어 질 때쯤, 꺼내먹습니다.



나이는 먹어가고 취준과 앞으로의 날들을 고민하며 요즘 들어 더욱 자주 그리워지는 시절이 있다. 몇 해 전, 휴학을 하고 좀 더 넓은 세상과 자유를 느껴보고자 동생과 훌쩍 유럽으로 떠났던 그날 말이다. 인생 처음으로 동생과 단 둘이 대한민국을 벗어나 보았고, 영화와 TV에서만 보았던 그림 같은 유럽의 풍경들을 눈에 담았다.


내가 이토록 유럽 여행에 대한 기억이 좋았던 건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단연 이 이유라고 생각이 든다. 분명 우리처럼 비슷한 일상들을 보낼 그들인데, 어딘지모를 여유로움과 웃음들이 느껴졌다. 인생 2회 차 정도 살면 저런 여유로움이 나올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두가 편안하게 지인들과 어울려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늘어지도록 따스한 햇살 아래, 향긋한 음식 냄새와 여유롭게 흘러가는 바람을 맞으며 하루를 느끼는 사람들. 언제쯤 나는 느껴보지 못했던 그들만의 여유를 또다시 보게 될까?


이렇게 생각이 많고 여행이 그리워질 때마다 습관처럼 갤러리에 들어가 그날의 추억들과 분위기를 되감곤 한다. 항상 눈으로만 되새겼던 나의 추억들을 여기에 천천히 풀어내 보려 한다.


 




여행 첫째 날

엄마, 아빠, 할머니! 우리 다녀올게!


정확히 일주일 전부터 들뜬 마음에 시간이 너무나도 느리게 흘렀던 것 같다. 좀 오버하자면 한 달 전에 비행기를 예매하고 나서부터랄까...? 그만큼 동생과 함께 할 유럽여행이 기다려졌다. 휴학을 하면 꼭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말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이 성사되는 날이었다. 자유여행만의 느낌을 만끽해보고도 싶었지만, 첫 여행이기도 하고 영어도 할 줄 몰라 겁이 나서 패키지로 예약했다. 그래도 뭐, 어때...! 비행기를 탈 생각하니 그저 좋았다. 새벽에 공항으로 출발해야 되는터라 일찍 잠에 들었어야 했지만 밤늦게까지 동생과 설레발을 치느라 제대로 잠을 설친 채, 아빠와 함께 인천으로 출발했다.


"동생 잘 챙기고, 인솔자 분 말 잘 듣고! 연락 꾸준히 하고!"

2시간이 다 되도록 차에서 듣고 들었던 말이지만 아빠는 우리가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말씀하셨다. 처음으로 단 둘이 떠나는 해외로 떠나는 여행이라 온 가족의 걱정을 한 몸에 받았다. 음... 정확히는 동생까지 두 몸에 받은 것 같다. 인솔자의 안내를 받은 후, 면세점에서 미리 주문해놓았던 물건들을 찾고 비행기 탑승을 기다렸다. 파란 하늘 아래 줄지어 서 있는 비행기들을 보니 한층 더 실감 나기 시작했다. 걱정 반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동생과 수다를 떨며 비행기 탑승 시간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곧이어 탑승 안내 게이트가 열리고 사람들이 줄지어 서기 시작했다.

"야, 우리 들어가나 봐!"

후다닥 짐을 챙긴  서둘러 비행기에 올라탔다. 자리를 찾아 앉으니 흥분 게이지가 85%까지 차올랐다. 비행기의 작은 창문 너머로 펼쳐진 공항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웅웅대는 비행기 엔진 소리마저  순간의 내게는 재미있는 음악처럼 느껴졌다.



우리의 도착지는 폴란드의 바르샤바 공항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 비행기 이륙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흐르고 비행기는 하늘을 향해 활주로를 힘차게 굴러나갔다. 우궁 쿵쿵쿵 쿵쿵 슝! 순식간에 붕~ 하늘로 떠올랐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붕 뜬 나의 마음만큼이나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뜨거운 여름 햇살에 청량함을 끼얹은 듯 파란 하늘과, 수많은 배들이 항해하고 있는 드넓고 푸른 바다까지. 동생과 한참 동안 아이처럼 넋을 놓고 바라보았던 것 같다. 우리의 진정한 여행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그저 까만 하늘일 거라 생각했지만, 밤에도 하얀 구름을 아래로 두니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드디어 유럽 땅에 발을!

유럽 공기는 뭔가 다른 것 같단 말이죠


한국을 출발한 지 장장 10시간 후, 착륙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드디어...! 내가 유럽 땅을 밟는다니! 짐을 챙기는 손놀림이 빨라졌다. 얼른 내려서 내 눈에 새로운 풍경들을 담고 싶었다.



공항을 나오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낯선 글자들과 광고판들 그리고 주변의 수많은 각국의 사람들. 내가 10시간을 날아 지구의 반대편으로 날아와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할 뿐이었다. 오랜 비행에 많이 지쳐있었어도 내 눈에 담기고 있는 이 귀한 광경은 꼭 기억하려고 잠에서 덜 깬 눈을 부릅떴다. 공항에서 인솔자를 만나 버스를 타고 바르샤바 숙소로 이동했다. 첫날에는 별다른 일정이 없었기 때문에 여유롭게 창 밖의 지나는 풍경들을 즐겼다. 동생과 나눠 낀 이어폰 너머 들리는 영화 비긴 어게인의 OST, 그렇지 이게 바로 힐링이지!


익숙한 듯 다른 유럽의 고속도로
모든 게 신기했었던 나머지 중간에 들른 휴게소의 맥도널드까지 신기했다. 앞에서 사진도 찍은 건 비밀이다.


"엄마! 우리 지금 막 숙소에 도착했어! 여기 모든 게 그냥 다 신기해! 우리가 먼저 다 돌아보고 나중에 가족들 데려와서 가이드 싸-악 해줄게!"

오랜 시간을 달려 무사히 숙소에 도착한 동생과 나는 가족들에게 얼른 지구 반대편의 새로운 모습들을 전해주고 싶어 오랫동안 핸드폰을 놓지 않았다. 한국은 늦은 새벽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잔뜩 상기되어 있는 딸들의 시끄러운 수다에 졸려오던 잠까지 미루고 들어주시느라 정신이 없었다. 역시 좋은 곳에 오니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전화를 끊고 창밖의 조용하고 아늑한 풍경을 눈에 담으며 동생과 두런두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나같이 쫄보 같은 성격에 혼자였다면 외롭고 무서웠을 수도 있는 해외이지만, 서로여서 든든했다. 이 여행의 설렘과 새로움을 동생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고, 어린 시절을 지나 어느덧 성인이 되어 이렇게 함께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며, 그렇게 낯설고 새로운 폴란드에서의 첫날밤은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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