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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Jan 27. 2022

02. 그토록 원했던 나의 프라하

잊히지 않아 더욱 그리운 그날의 공기



여행 둘째 날

오늘의 새로움은 뭘까?


두 번째 날이 밝았다. 낯선 잠자리 때문도 있지만, 오늘은 특히나 더 기대가 되었던 일정이라 눈이 번쩍 뜨였다. 동생도 그랬는지 웬일로 몸을 번쩍 일으켰다. 두 번째 날의 첫 행선지는 난쟁이들의 도시라 불리는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였다. 처음에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세워졌지만 난쟁이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난쟁이들의 도시라 불리게 되었다는 귀여운 소리를 듣고 동생과 거리를 거닐며 난쟁이를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브로츠와프의 중심가인 르넥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폴란드의 도시 풍경을 눈에 담았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과 귀여운 신호등까지, 제대로 본 유럽의 거리는 신기한 것들 투성이었다. 뾰족한 문양과 대체로 붉은색의 지붕, 연한 빛들의 건물 색과 정갈하게 나있는 창문들이 유럽식 건물이 주는 특유의 느낌을 한층 더 살려주는 것 같았다.


거리를 거닐며 좋았던 또 다른 포인트는 테라스였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미군부대가 있어 부대 주변 거리의 상가들에는 항상 테라스가 나와있곤 했다.


거리의 시끌벅적함을 느끼는 외국인들로 가득했던 풍경을 신기해하곤 했는데, 유럽에서 직접 테라스 문화를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들을 보니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에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보았던 트램도 눈으로 직접 보니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었다. 화면 너머 상상으로만 그려왔던 나만의 유럽이 실현된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광장 중앙으로 걷다 보니 딱 보기에도 화려한 구시청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13세기에 지어져 오늘날까지 그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더 값졌다. 고딕 양식의 건축 구조 모양은 웅장함을 자아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에도 손상된 곳 없이 잘 보존되어 왔다고 하니 더욱 의미가 깊었다. 항상 역사의 현장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지만 과거의 역사를 눈앞에서 실제로 보고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 프라하

빛나는 카를교 속 우리


르넥 광장 관광을 마친 뒤, 우리는 서둘러 다음 목적지 프라하로 향했다. 사실 나에게 프라하는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프라하가 궁금했고, 그중 카를교의 풍경만은 꼭 눈에 담고 싶었다. 내가 이토록 프라하를 궁금해하게 된 계기는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된 2017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자 친구와 연애를 시작하고 서로의 애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오빠, 우리 애...칭 어떻게 할래?"

나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음~ 내가 좋아하는 프라하 말이 있는데 그걸로 할까?"

"프라하 말? 어떤 거?"

애칭이라고 하기엔 접근이 특이했던 프라하 말이라는 소리에 절로 관심이 갔다. 프라하 말이라면 정말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 둘만의 애칭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Miluji tě(밀루유 떼)'

프라하 말로 '사랑해'라는 뜻을 가진 단어였다. 남자 친구는 '프라하의 연인'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프라하를 알게 되었고, 카를교가 나왔던 장면이 인상 깊어 죽기 전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말했다. 죽기 전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하니 얼마나 예쁜 곳인지 궁금했었는데 내가 그곳에 직접 가본다니, 믿을 수 없었다. 얼른 프라하의 모든 것을 사진에 담아 그에게 보내주고 싶었다.



프라하에 도착한 뒤 카를교까지는 올드 트램을 타고 이동했다. 경쾌한 아코디언 소리에 묵음처리되어 창 밖을 스치는 프라하의 풍경은 신나는 음악소리처럼 거리의 활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트램에서 내리니 비로소 그 활기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만큼 그 명성을 증명하는 듯했다. 많은 인파를 뚫고 저 멀리 보이는 카를교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에 넘치는 많은 사람들만큼이나 기분이 벅차올랐다. 다리 위에는 나만큼이나 벅차올랐을 많은 사람들을 반기는 듯 여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과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행복한 웃음을 띈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 강 위로 유유히 흐르는 작은 배들, 아기자기한 창문들이 가득 난 귀여운 건물들까지 혹여나 기억 속에서 사라질까 아주 천천히 시선을 옮기며 분위기를 느꼈다. 사진으로는 잘 담기지 않아 눈에 담으려 한참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카를교 위를 걷다 보니 우뚝 서 있는 '성 요한 네포무크' 조각상이 보였다. 조각상 아래에 있는 두 개의 그림 중 왼쪽에 있는 그림의 강아지를 만지면 배우자가 자신에게 충성하기 바란다는 의미를, 오른쪽 그림의 왕비를 만지면 다시 프라하로 돌아오게 된다는 의미를, 그 위쪽으로 작게 보이는 다리 밑으로 떨어지는 네포무크를 만지면 어떤 소원이든 이루어진다고 한다.


많은 관광객들의 소원을 담은 손길이 닿고 닿아 그 소원들을 밝게 비추듯 닳아버린 그림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순서를 기다리다 차례가 되어 짧은 손을 왕비를 향해 쭈욱 뻗었다. 잊을 수 없이 아름다웠던 프라하를 다시 오게 되는 날의 그 감정을 미리 예측해보자면, 아마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정신없이 다리 위를 거닐다 보니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어둑해진 푸르스름한 하늘 아래로 작은 불빛들이 강가를 아른거리며 밝혔다. 광장 아래로 내려와 저무는 카를교를 한 번 더 눈에 담았다. 쉽게 잊혀버릴까 봐 더욱 소중히 담았던 덕에 그날을 그리워하는 지금도 행복하게 회상할 수 있는 듯하다.


이 날을 기점으로 나에게 프라하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곳이 되었다. 프라하라는 곳을 알려준 남자 친구와, 카를교의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눈에 담을 수 있어 행복했던 동생과의 시간들, 이런 나의 감정들을 공유하고 싶은 나의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까지.


내가 빌었던 소원이 언젠가 다시 이뤄지게 된다면, 그 곁을 함께할 나의 소중한 사람과 환하게 웃을 수 있길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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