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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Feb 17. 2022

요즘 내 차 조수석이 시끄럽다

운전면허 시험을 앞둔 동생 덕에 꺼내보는 나의 올챙이 시절



데칼코마니

마치 내 과거를 보는 듯한 동생의 모습...


"언니, 이거 누르면 시동 켜져?"

"언니, 핸들 한 번만 오른쪽으로 돌려봐봐."

"언니, 차선 변경할 때에는 핸들 확 돌리면 안 되는 거지?"


요즘 들어 부쩍 내 차 옆좌석이 시끌벅적해졌다. 난생처음 도전해보는 '운전'이라는 어려운 난제를 두고 잔뜩 긴장한 동생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면허를 따면 동네 드라이브를 시켜준다던 동생은 눈에서 불이 나올 듯이 내 차를 탐구했다. 시동은 어떻게 켜는지, 와이퍼는 어떻게 작동되는지, 악셀은 얼마나 밟아야 되는지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버퍼링이 걸리는 동생을 보다 보니 마치 과거의 나와 너무 똑같아 살짝 무섭기까지 했다. 운전하는 아빠 옆에 앉아 꼬치꼬치 캐묻던 내 모습과 싱크로율 100%였다. 그런 동생을 보며 그 당시 아빠가 얼마나 피곤했을지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여전히 운전하는 아빠 옆에서는 나도 궁금한 게 많아 시끌벅적하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질문 폭탄이 들어오는 탓에 정신이 살짝 어질 했지만, 미래에 나에게 멋진 드라이브를 선사해 줄 동생의 모습을 그리며 차근히 몸소 보여주며 알려주었다.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운전대를 잡고 거리를 누비지만, 그때는 뭐가 그리 무섭고 어려웠을까? 신호를 기다리며 혹시나 차가 제멋대로 굴러갈까 봐 종아리에 온 힘을 주어 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항상 다리에 알이 배기곤 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동생도 그때의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잊히지도 않는 아빠와의 강력 훈련

이것이 바로 스파르타식 운전연수


아직도 아빠 없이 혼자 운전대를 잡고 동생을 전철역에 데려다주고 왔던 그 뿌듯함이 생생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친구들과 함께 운전면허를 취득한 뒤, 거의 4년을 방치해두었었다. 그렇게 서랍 속에서 장롱면허가 되려던 찰나, 재작년 여름 아빠는 깜짝 선물로 중고 마티즈를 선물해주셨다. 드디어 이 차를 몰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맘 속 가득 기대가 차올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머지않아 혼자서 차를 몰고 가고 싶었던 곳들을 누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주 큰 오산이었다.

 

집 앞에 주차해뒀다며 시크하게 말씀하시는 아빠 말을 듣고 부리나케 뛰쳐나가 마주한 나의 첫 붕붕이다.


수요일마다 쉬시는 아빠를 졸라 매주 운전연습을 다녔다. 한적한 공단을 돌며 우회전 좌회전을 배우고, 집 앞 대학교 주차장에서 주차 연습을 하며 아빠와 운전을 배워갔다. 한 달 넘게 아빠를 태우고 곳곳을 누비며 실습을 했지만 무서운 건 여전했다. 아빠가 없이는 혼자 운전대를 영영 못 잡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많은 날들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코스가 있다. 하늘에서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왕창 쏟아지던 날, 아빠와 용인에 있는 삼촌네를 가야 할 일이 있었다.

"딸, 네가 차 몰아봐."

아빠의 말과 동시에 차키가 훅 공중을 날아 내 손으로 착 날아왔다.

"뭐...?? 아빠 지금 밖에 비가 말이 아니게 오는데?"

순간 '뭐지, 아빠가 목숨을 내걸고 초보 운전자와 빗길 운전을 하겠다는 건가...? 심지어 초보 중에 왕초보인 나를 운전석에 태우고...?' 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멍한 표정으로 망부석이 되어 서있었다.

"딸! 뭐해 얼른 타!"

너무나도 비장한 아빠의 말에 나도 모르게 스르륵 차키를 쥐고 운전석으로 타버렸다. 이게 뭐람...? 싶으면서도 담력훈련 같다고 생각하니 이번 훈련을 통해 나의 운전 레벨이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인 용인으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차는 점점 꼬불탕 길로 접어들었고 커브를 돌 때마다 도랑으로 빠질 듯 아슬아슬하게 돌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내가 얼마나 가까이 돌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옆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아빠의 말을 들으며 빗길 운전까지 감행하니 일사불란하게 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와이퍼처럼 내 정신도 복잡해져만 갔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빠의 조언에만 집중하며 달렸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지나고, 좁은 시골길을 지나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40분이면 충분한 거리였지만 1시간 반을 넘게 달려온 탓에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주차를 마치고 차 밖을 나서려 발을 디딘 순간 너무 긴장을 했던 나머지 다리가 후들거리기까지 했다.


"잘했어 우리 딸! 그렇게 못해도 일단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면 다 되는 거야. 이따 갈 때도 잘 부탁한다?!"

아빠의 칭찬을 들으니 그제야 배시시 얼굴에 웃음을 띄울 수 있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절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지만 어느새 나는 용인에 도착해있었다. 출발할 때는 두려움으로 가득했었지만 다시 돌아가는 길에는 왔던 길이니 조금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작은 자신감이 내 마음속에서 쏙 고개를 내밀었다. 험한 길도 뚫고 왔으니, 무서움의 크기도 약간은 줄어드는 듯했다. 해내지 못할 것 같았던 빗길 운전을 통해 배운 것은 나는 당황할 때 어떻게 대처를 하려고 하는지, 부족한 면은 어떤 부분들인지, 방어운전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자신감은 심고, 부족한 면은 채우려는 아빠의 스파르타식 운전 연수는 나름 꽤 효과적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빠와 함께 약 3개월 동안 여러 곳을 누비며 운전을 배웠다. 함께 고속도로도 타보고, 서울에도 올라가 보고, 명절에는 시골도 내려가 보고 굽이진 언덕길도 달리며 계속해서 운전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아빠 없이 혼자 운전을 해야 하는 날. 바로 그날이 온 것이었다.


"언니!  역까지만 태워다 주면  될까?"

약속에 늦어 전철시간이 촉박하자 동생은 대뜸 나에게 전철역까지 태워다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야, 나 아빠 없이 운전 처음 해보는데 지금 이 급한 상황에서 너를 데려다 달라고...?"

나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으로 동생에게 되물었다. 되물으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에이, 더 어려운 코스도 운전했으면서 고작 동네 운전하는데 그것도 못하겠어? 아 근데 뒤에서 빵 거리면 어떡하지? 너무 무서운데···.'

그야말로 갈지 말지에 대한 토론이 머릿속에서 소란스럽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때 문득 못해도 자신감을 갖고 해 보라는 아빠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가보자! 나는 두근거리는 도전을 해보기로 다짐했다.


"야 예린아, 가자."

"우와 진짜 언니가 역까지 데려다주는 거야? 대-박."

지금 내 심장이 얼마나 난리가 났는지 알 리가 없는 동생은 마냥 상기된 표정으로 안전벨트를 맸다.

"후-! 안전벨트 꽉 맸지? 간다?"

"응!"

시선은 오로지 앞만, 몸은 빳빳하게 굳은 채로 천천히 브레이크를 놓고 악셀을 밟았다. 차로 5분 거리이지만 손에 땀이 나서 혼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전철역에 무사히 동생을 내려주고 회차하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그동안 운전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두려움의 무게가 조금은 덜어진 듯 마음이 가벼워졌다. 할 수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무서움으로 가득 찼던 마음 한 구석에서 자신감이 뿅 하고 튀어올랐다. 지난번보다는 조금 더 단단해진 자신감이었다. 운전도 자신감이라며 뭐든 자신감을 갖고 행동해보라던 아빠의 말씀이 떠올랐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해보지 않았기에 무서운 건 당연했지만 나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3개월 동안 조금씩 발을 담그며 혼자 운전한 이 날을 위해 노력해왔던 것이다. 고작 5분 거리를 운전했을 뿐인데 성취감이 이렇게 클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날 처음 느껴볼 수 있었다. 그 짜릿함이 재미있어 나는 여전히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기 위해 다분히 노력 중이다.






설마 나에게도 일어날 줄은 몰랐던 교통사고

안전운전의 중요성을 호되게 배운 날


"꺄-악!!"

쾅쾅, 우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가족 모두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가족들을 돌아보며 괜찮은지 상태를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렸다. 사고 현장 사진을 찍기 위해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나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손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멍해진 얼굴로 일사불란하게 사고처리를 하고 계시는 아빠만 바라봤다. 멍한 눈으로 다시 차 상태를 확인했다. 바닥은 부서진 파편들로 널브러져 있었고, 내 차는 커다란 레카차에 쓸려 오른쪽이 심하게 긁혀있었다. 순간 저 레카차가 핸들을 조수석에 앉아계셨던 아빠 쪽으로 틀었다면...? 생각해보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반대 차선에도 차가 많았던 상황인지라 정말 내 상상이 사실이 되었었다면 아빠의 상태는 차마 글로도 못 옮길 정도로 심각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 여전히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손을 힘없이 툭 떨어뜨렸다.


앞에서 보니 핸들을 아빠 쪽으로 틀었으면 얼마나 큰 사고가 일어났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카센터에서 근무를 하시는 아빠께서는 사고를 처리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셨다. 보험사에게 전화하랴, 상대측과 이야기하랴... 그런 아빠를 보며, 순간 너무나 다행이고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착하게 가족들을 격려하고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는 아빠의 모습이 멋있었다. 아빠야말로 바로 옆에서 차가 박았던지라 충격이 크셨을 텐데 당황한 내색 없이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상황을 해결하시는 아빠의 강인한 모습을 보며, 나도 아빠에게 든든한 딸로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아빠와 함께 진행 상황을 지켜보았다. 사고가 난 상황은 이러했다. 신호를 받고 출발하는 순간, 한 레카차가 무리한 차선 변경을 시도했다. 아직 방어운전이 미숙한 터라 조금 늦게 상황을 판단한 나는 이미 레카차가 대각선으로 차선의 반을 넘어온 시점에 브레이크를 밟았고, 뒤에서 앞 레카차가 빠지면 본인도 앞서 나가려던 다른 레카차가 내 차와 부딪힌 것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무리한 운전을 한 이유를 알아보니, 앞 쪽 사거리에서 또 다른 교통사고가 발생해 그쪽으로 빨리 가려다 사고가 난 것이었다.


황당해하고 있던 찰나, 앞 차선에서 신호를 받고 좌회전을 하려던 한 운전자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괜찮아요? 앞에서 사고 상황 다 봤어요. 학생이 잘못한 거 하나도 없으니까 나중에 블랙박스 영상 필요하면 이 번호로 연락 줘요."

나에게 명함을 건네주시며 걱정해주시는 분을 보니 너무나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큰 사거리었고, 뒤에 차도 많이 대기하고 있어서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었지만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며 손을 내밀어준 운전자분께 너무나 감사했다.

"네! 저희 가족 다 괜찮아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차게 대답을 한 뒤, 건네받은 명함을 아빠에게 전했다.


곧이어 경찰도 출동했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다른 운전자분이 경찰에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갓길로 차를 옮기고 차근히 사고처리를 도왔다. 난생처음 겪은 호된 교통사고에 혼이 쏙 빠졌지만, 그래도 사고처리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그 이후로 신호를 받고 속도를 줄이거나 출발할 때 앞 차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부딪힐까 겁이 나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엄마는 사고 이후로 내가 운전하는 것에 겁을 먹었을까 봐 걱정하셨지만,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혼자 박은 게 아니라 차끼리 박았던 사고인지라 부딪히는 느낌이 뭔지 알게 되자 혹여나 또 부딪힐까 봐 움츠러드는 면은 없지 않아 있었다. 이번 사고를 통해 나는 사고가 났을 때는 침착한 태도로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지, 방어운전이 왜 중요한지 등에 대한 여러 가지를 돌아보고 느낄 수 있었다.






작아진 자신감은 더 큰 자신감으로

여전히 초보운전자인 나는 자신감으로 운전 중!


나는 운전할 때 겁이 많은 편이다. 안 가본 길을 갈 때에는 여전히 불안하고, 미리 차선 변경을 안 해두면 불안감에 성격이 급해지기도 한다. 어딜 가기 전, 주차 공간이 확보되지 않은 곳에는 당황해서 주차도 못하고 빙빙 거리를 돌기만 할 내 모습이 그려져 쳐다도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운전하는 게 즐겁고 좋은 이유는 단연 이 이유일지도 모른다. '성취감'. 출발할 때는 걱정을 한 바가지로 안고 출발하지만,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이제는 제법 아는 길을 다닐 때는 차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는 여유로움과 멋짐도 장착한다. 아! 특히나 후진으로 깔끔하게 주차를 마친 후에는 훗! 하는 뿌듯함의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내가 이렇게 운전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아빠가 틈틈이 꽃 피워준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꼭 운전이 아니더라도 아빠는 항상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당부하셨다. 내가 걱정이 많고 자존감이 높지 않은 아이인 것을 알고 매번 강조해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걸 알지만 아빠의 말은 결국 겁 많은 나를 복잡한 도로 위로 이끌었다. 그런 아빠의 노고에 감사하며, 다음 달 도로주행을 마치게 될 동생에게 나도 내가 배웠던 자신감을 틔워주려 벼르고 있다. 오랜만에 꺼내본 추억들에 글을 쓰는 지금도 잔잔한 미소가 지어진다. 1년 뒤, 동생과 함께 제주도 드라이브 코스를 달리고 있을 멋진 자매의 모습을 그리며! 또, 선글라스를 끼고 멋지게 도로를 점령하는 야심찬 로망을 품은 나와 같은 모든 초보운전자들의 행복한 상상에 후-!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배시시 짓는 미소와 함께 온점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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