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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Mar 03. 2022

텐텐과 아따맘마가 땡기던 날

포도당과도 같은 '추억'이란 약



갑자기 문득 생각난 바로 이 아이

텐텐의 맛을 안다면 모두 모여!


몇 달 전 엄마와 같이 병원에 갈 일이 있어 진료를 본 뒤 약국에 갔다가 카운터 앞에 놓여있는 텐텐이 눈에 들어왔다. 약사님께 처방전을 드리면서도 내 시선은 계속 자석처럼 텐텐에게서 떨어지질 않았다. 텐텐이 마치 나를 보며 '나 좀 가져가 줘~'하고 말을 하는 것 같은 요상한 끌림이 느껴졌다. 그 끌림에 못 이겨 결국, 나는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내민 엄마의 손을 턱 잡았다.

"엄마! 나 텐텐 하나만 사줘."

"다 큰 애가 무슨 텐텐? 애기여? 텐텐 사달라고 하게?"

엄마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나를 쳐다보며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시곤 이내 결제를 완료하셨다. 이런, 나의 결연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역시 엄마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냥 약국을 나왔던 게 한이 되었던 걸까? 그때부터 이상하게 텐텐을 향한 집착이 시작되었다.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며 닭똥 같은 눈물을 한참 흘린 뒤, 약국에 가서 고사리 손으로 들고 있던 처방전을 약사님께 건네드리면 선생님은 웃으시며 작은 텐텐 한 봉지를 손에 쥐어주시곤 했다. 이빨이 뽑힐 것 같이 단단하면서도 입 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면 이내 말캉하게 녹으면서 특유의 맛을 내는 텐텐은 그야말로 모든 어린이들에게 마약과도 같은 사탕일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 텐텐을 마음껏 사 먹을 수 있으면 부자'라는 말이 있을 만큼 싼 가격은 아닌 텐텐을 어릴 적 엄마는 그냥 사탕일 뿐이라며 절대 사주신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텐텐을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는 성인! 먹고 싶을 때 마음껏 텐텐을 사 먹을 수 있는 부자가 되었다.






당당하게 사 먹으라고!

너는 텐텐을 맘껏 살 수 있는 부자야!


"언니, 우리 집에 가는 길에 약국 좀 들르자."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동생이 대뜸 약국에 들르자며 말을 건넸다.

"약국? 야 예린아, 그럼 우리 텐텐 사 먹자."

약국이라는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머릿속을 거치지 않고 반사적으로 나온 나의 말에 나도 흠칫 놀랐었다.

"···? 뭐-어 텐텐? 짱 좋지."

뜬금없는 나의 텐텐 타령에 약간의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던 동생은 한 박자 쉬더니 이내 흔쾌히 동의했다.


텐텐을 먹을 생각에 신난 마음을 숨기고 조심스럽게 약국에 들어섰다. 초등학교 시절에 살던 아파트 근처에 있어 자주 들렀던 약국인데, 16년이 지난 지금도 약국의 구조와 약사 선생님까지 어릴 적 내 기억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대로였다.

'이 약국은 변한 게 하나도 없네'

천천히 약국을 둘러보던 찰나, 나는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동생을 툭툭 치며 이렇게 속삭였다.

"텐텐이 없는데···?"

"뭐? 텐텐이 없다고?"

은밀한 대화와 바쁜 눈. 동생과 나는 고개를 쭉 빼고 진열되어 있는 약들을 두리번거리며 미션이라도 하듯 텐텐을 찾아대고 있었다. 약사 선생님께 물어볼 법도 한데 왜인지 모르게 어린애들이 먹는 사탕을 사 가려고 여쭤보는 게 부끄러워서 끝까지 찾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포기한 채 나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약사 선생님께 텐텐의 행방을 여쭤보았다.

"저기··· 여기 혹시 텐텐 없나요···?"

"아 텐텐요? 여기에 있어요."

선생님은 구석 쪽에 있던 텐텐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동생과 멋쩍은 눈빛을 주고받은 뒤 소중한 텐텐을 들고 약국을 나왔다.


"크-으, 그래 바로 이 맛이지."

동생 하나 나 하나 나눠 들고 봉지를 뜯어 우물우물 씹으며 '이게 뭐라고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유독 어릴 적 먹던 과자와 군것질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가 끝나고 영어 학원에 가서 열심히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에 나와 문방구 앞에서 사 먹던 치킨 바, 태권도 수업이 끝난 뒤 그냥 집에 가기는 심심해서 천오백 원 주고 사 먹던 콜팝, 엄마와 마트에 갈 때면 장을 보느라 정신없는 엄마를 틈타 어린 동생 손을 잡고 몰래 과자 코너에 가서 집어왔던 지금은 볼 수 없는 과자들까지. 아무 생각 없이 엄마가 준 용돈을 아끼고 아껴 사 먹고 놀던 그때가 그리운 건지, 아니면 정말 그 음식들이 너무 맛있었어서 기억에 남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씩 재출시되는 그 시절 과자를 먹거나 텐텐과 같이 고맙게도 아직 판매되고 있는 추억의 음식을 입 속에 넣을 때면 이상하게 마음이 치유되는 듯한 편안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때보다 지갑은 두둑해졌지만 마음의 여유는 그때의 나보다 조금 많이 작아진 요즘, 요 작은 사탕 하나가 잠시나마 작아진 내 여유에 달콤한 숨통을 틔여주는 듯하다. '추억의 음식'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어릴 적 추억을 되감아보며 친구, 동생과 '아, 이맛이지!'라고 공감하는 그 짧은 웃음과 함께 잠시나마 입 속이 즐거웠다면 그걸로 족한 게 바로 추억의 음식일 것이다. 그때보다 맛있는 것들이 차고 넘치는 시대이지만 가끔씩 나를 그때 그 시절로 데려가 주는 텐텐 수혈은 꼭! 필요한 나의 포도당 같은 존재이다.  




 


안녕하세요, 감사해요~ 잘 있어요! 다시 만나요!

다들 추억의 최애 만화 하나쯤은 있잖아요?


어느 날 동생과 밥을 먹으며 유튜브를 배회하던 중, '추억의 애니메이션 OST 메들리' 영상을 보게 된 적이 있다. 영상을 재생하니 휴대폰에서는 이누야사부터 개구리 중사 케로로, 달빛천사 등 수많은 만화 OST들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헐, 진짜 추억 돋는다!"

동생이 갑자기 흘러나오는 노래에 깜짝 놀라더니 이내 함께 뚫어져라 영상을 보며 말했다. 어릴 때 그렇게 시끄럽게 둘이 투닥거리면서 놀다가도 TV에서 만화 소리가 들리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던 우리였다. 시간이 흘러 훌쩍 커버린 우리는, 작은 아날로그 TV가 아닌 작은 휴대폰 화면을 보며 그 추억들을 회상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감사해요~ 잘 있어요! 다시 만나요!"

영상에서 아따맘마 노래가 흘러나오자 우리는 자동 반사처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아따맘마 영상 보면서 먹을까?"

"그래!"

유튜브에 '아따맘마'라고 검색하니 우리와 같은 누군가가 추억을 떠올리며 업로드했을 수많은 아따맘마 영상이 줄을 지었다. 익숙한 그림체와 반가운 캐릭터들, 그중 끌리는 영상 하나를 클릭했다. 밥그릇은 비워진 지 오래이지만 동생과 나는 한참을 아따맘마에 심취해서 보고 있었다. 평소 기억력도 그다지 좋지 않은 나인데, 어찌 그렇게 추억만 마주하면 머릿속 깊숙한 곳에서 그날의 대화와 분위기들이 술술 나오는지 가끔은 '내가 이렇게 기억력이 좋았나..?' 싶을 정도로 디테일했다.


가끔씩 거실에서 커다란 TV로 동생과 '안녕, 자두야!'를 멍 때리고 보고 있으면, 물을 마시러 나온 할머니는 우리를 한 번씩 번갈아 쳐다보며 이렇게 말씀하시곤 한다.

"아이고~ 니들이 애냐, 만화를 보고 앉았게?"

그럼 우리는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왜에~ 재미있기만 하고만."

그러게, 가끔씩 그냥 애이고 싶을 때가 있다. 부엌에서 '밥 먹어라~'라는 소리가 들리면 총알같이 식탁으로 가서 곁눈질로 TV를 보며 허겁지겁 밥을 먹던 그때가, 학교에 다녀오면 밀렸던 학습지를 끝내고 곧장 TV로 가서 동생과 만화를 보며 한 시간을 순삭 할 때가 그리워진다.


다들 누구나 추억 수혈 거리 하나쯤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추억 수혈을 통해 철없이 어릴 적,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꿈꾸던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잠시 돌아가 본다. 타임머신을 타듯 잠시 그때의 나를 만나고 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건강한 피가 새롭게 내 몸을 도는 느낌이다. 어느덧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면 과거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이 최고의 안줏거리가 되었고, 그날들을 그리워하는 날들은 더 많아지겠지만 그런 수혈들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듯하다.


지금의 현실이 무언가에 막힌 듯 답답하고 불투명한 느낌이 들 때면,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봐도 되는 최애 만화 무기를 꺼내보자. 어떤 일이든 당차게 해결해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만화 캐릭터들처럼, 아무 걱정 없이 먹고 웃던 그날의 자신처럼, 그날의 추억 수혈로 그렇게 모두가 건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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