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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Feb 24. 2022

나의 1호 구독자를 위한 글

18년째 함께하는 하나뿐인 나의 글 선생님에게 바칩니다.



나의 시선으로 '엄마' 담다.

엄마와의 시간을 모으니 글이 되었다.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엄마와의 시간을 모으니 이렇게 글이 되었다. 나에게 '글'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엄마에게 나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나의 모든 감정들을 몇 마디의 문장들로 풀어가며 단순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마음에 휴식을 줄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팍팍한 세상 속에서 가장 소중한 위로일지도 모른다. 브런치를 하며 매주 글을 적을 때, 글의 주제가 될 에피소드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다 문득 엄마와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엄마와 나는 수많은 둘만의 시간을 보내왔다. 학교에서 고민거리가 생길 때나, 가끔씩 어린 나로서는 정의할 수 없는 생소한 감정들이 들곤 하면 늘 쪼르르 엄마에게 달려가 질문폭탄을 날리곤 했다. 여전히 지금도 나의 별것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모두 들어주는 엄마는 한마디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엄마이자, 친구다.


내가 풀어낼 이 매거진의 이야기들은 평범한 한 가정의 장녀로서, 그리고 같은 여자로서 바라본 '엄마'라는 한 여자에게 느낀 감정들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해맑게 웃고, 눈물 콧물 짜며 엄마에게 찡찡대던 코찔찔이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내가 바라보고 느꼈던 '엄마'라는 존재는 뭔지 곱씹어본다. 이 글은 기억과 추억을 곱씹으며 풀어낼 나의 소중한 이야기보따리이자, 부끄러워 엄마에겐 잘 드러내지 않았었던 나의 마음을 담아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띄우는 작은 종이배이다.






내 꿈의 시작점

그 시작점엔 엄마가 있었다.


언젠가 세월을 그대로 담아 노랗게 낡은 파일 속에서 엄마가 적은 한 편의 시를 발견한 적이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엄마의 감수성을 처음 마주한 순간, 내가 왜 글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젊은 시절 글을 쓰며 마음의 위로를 했을 엄마의 모습은 지금 이 순간에도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모습과 닮아있을 것이다. 어릴 적 엄마는 나에게 줄곧 시를 적어보라고 말씀하시곤 했었다. 8살 남짓의 꼬맹이가 어떤 상상력으로 한 번에 척척 시를 적어냈는지 모르지만, 꼬물꼬물 한 글씨로 꼬깃한 메모장에 거침없이 써간 나의 많은 시들은 낡은 파일 속에 잠든 엄마의 시와 함께 그 세월들을 겹겹이 맞대어 지나온 날들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숙제로 제출했던 나의 동시 모음집
지금의 나는 기억도 안나는 꼬맹이 시절의 동시들을 보니 기분이 괜히 멜랑꼴리했다.


"엄마, 이건 언제 쓴 시야?"

"아, 이거 엄마 회사 다닐 때 썼던 시인데 회사 사보에 실려서 기념으로 따로 뽑아둔 거야."

잠시 동안 엄마의 시를 바라보았다. 엄마의 꿈은 뭐였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글이 좋아 자연스럽게 내 직업 또한 글과 관련된 일을 꿈꾸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모두가 꿈꾸는 삶이지만, 오랫동안 펜을 놓은 엄마는 내가 모르던 그 시절 어떤 삶을 꿈꾸며 살았을까? 글쓰기가 취미였던 엄마는 종종 사보에 실릴 만큼 글쓰기 실력을 가진 낭만 시인이었다. 29살의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게 나와 동생을 키우며 자연스럽게 본인을 위한 시간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육아가 주는 힘든 시간들은 어쩌면 엄마의 낭만과 감성을 본인도 모르게 살살 갉아먹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내내 엄마는 나의 글짓기 선생님이나 다름없었다. 학교에서 종종 열리는 글짓기 대회가 있던 전 날에는 원고지에 4B연필로 꾹꾹 눌러 적은 글을 어김없이 엄마에게 내밀었다. 혹시나 글을 못썼다고 할까 봐 쑥스럽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해서 조마조마한 눈으로 소파에 앉아 엄마 옆에 찰싹 붙어있던 어릴 적 나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 말은 이렇게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렇게 쓰면 조금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

서툰 글 솜씨였겠지만 엄마는 항상 꼼꼼히 글을 읽고 피드백을 해주시곤 했다. 엄마와 내 글을 두고 오고 가는 피드백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엄마의 피드백 방식 중 하나는 바로 내가 쓴 글을 흩트리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나의 시선'을 담아낸다는 것이었다. 엄마만의 이런 방식은 좀 더 '나만의 색'을 띈 글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고, 학창 시절 글짓기 상은 두꺼운 파일이 꽉 찰만큼 빼곡했다. 꿈이라는 흰 도화지에 그저 행복한 상상만으로도 빼곡히 빈 공간들이 채워졌던 그때, 나는 대충 짐작했던 것 같다.

'글이라는 것, 재미있는 거구나!'  






소중한 나의 1호 구독자

그 1호는 바로 이름만 들어도 든든한 우리 엄마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 이전 직장을 다니며 더욱더 글에 대한 욕심이 커져가고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17살부터 꿈꿔왔던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은 취업을 앞두고 마주하니 꽤 귀하고 높은 산이었다. 어릴 때는 패기로도 얼마든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언덕이 지금 마주하니 높은 산이 되어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일을 그만두기 전에도 매일 생각했었다.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그 종류가 언론 홍보의 보도자료가 되었든 잡지 글이 되었든 블로그 원고를 작성하는 일이 되었든 텍스트를 적어내는 일에 대해 막연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강남으로 통근을 하며 자연스럽게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자 혼자 휴대폰 메모장에 글을 적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떠오르는 잡생각들을 작은 휴대폰 메모장에 한 문장으로 정리해내며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어내곤 했다. 오랜 고민 끝에 퇴사 후, 잠시 휴식기간을 가지며 나는 내가 하고 싶어 했던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대학시절부터 눈독 들여왔던 '책 쓰기 프로젝트'가 떠올랐고, 큰 마음을 먹고 책 쓰기에 도전해보기로 다짐했다. 처음 도전해보는 제대로 된 글쓰기였지만 그저 나만의 이야기가 담긴 종이책을 내 눈으로 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다.


"너 그렇게 글 쓰고 싶으면 브런치 한번 해봐."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대뜸 브런치를 해보라는 이야기를 건넸다. 브런치? 들어만 봤지 제대로 봐본 적은 없었던 플랫폼이었다. 몇 년 전 들었던 카피라이터 강연에서 잠시 브런치에 대해 들었던 기억이 스쳤다. 엄마의 말을 듣고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작가 신청을 해서 승인이 되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내용을 보고 나의 실력을 반신반의했지만 나는 나를 실험해보기로 했다. 책 쓰기 프로젝트에 이어 풀어내고 싶었던 나의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며칠 뒤 휴대폰 창에는 나의 진심을 격려하듯 작가 승인 팝업 알림이 떠있었다.


두번째 도전을 위한 알람이 당차게 울렸다.


"꺄-악! 나 됐어! 작가 승인받았어!!"

조용했던 가족 카톡방에 소란스럽게 나의 작가 승인 사실을 알렸다.

"오 진짜? 어디 봐봐!"

"축하한다, 우리 딸!"

가족들의 따뜻한 축하 속에 나는 그렇게 작은 불씨를 틔웠다.


지금도 내 글이 업로드될 때면 어김없이 거실 어딘가에 놓여있는 엄마의 휴대폰에서 띠링! 알림이 울린다. 한 글자 한 글자 조심스럽게 써 내려간 내 문장들을 그 누구보다 정성스럽게 읽어주는 사람, "딸, 글 잘 읽었다!"라며 응원을 실어주는 사람, 바로 든든한 우리 엄마다. 내 글을 언제나 비판하고 칭찬해줄 수 있는 나만의 선생님. 지금 내가 써 내려가는 이 글도 어쩌면 엄마가 제일 먼저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적어낼 앞으로의 글들은 오직 브런치를 통해 엄마에게 보내는 큰 딸의 비밀스러운 편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보는 나의 '1호 구독자'에게 보내는 P.S

엄마, 오래오래 내 글 읽어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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