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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Apr 06. 2023

끌림

마음이 이끌었던 그날의 나



2021년 02월 27일 01시


[끌림]

달큰한 바람이 불어오려던
어느 초여름 날의 저녁,

나는 처음으로 마음이 가는 데로
몸을 맡겼다

어떠한 의지로 원해서가 아닌
마음이 이끄는 끌림이었다

내 마음이 옳다면
한없이 좋아지는 것

끌림이다





오랜만에 기억 저편에 머물러있는 간지러운 기억들을 꺼내볼까 한다. 추억은 참 신기하다. 몇 달, 몇 년이 지나도 케케묵은 추억들은 정확히 그날의 공기와 느낌을 기억한다. 오늘 풀어낼 이야기는 2017년 어느 6월이 이야기이다. 그날 내가 느꼈던 미세한 떨림은 어떤 계절에 기억하더라도 변함없이 그날의 온도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6년째 연애 중이다. 서로의 밑바닥을 기꺼이 내보인 그와 나. 지나오니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가끔씩 처음 사귀던 그날을 떠올리곤 한다. 어느새 설렘보다는 편안함에 올라선 우리 둘이지만 가끔 잠자리에 들기 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여전히 설레곤 한다. 메모장에 글을 적던 날도 문득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을 때였다.


그와 나의 첫 만남은 헬스장이었다. 헬스의 'ㅎ'도 몰랐던 스물한 살 시절, 나는 성인이 된 후 내 의지로 뭔갈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아르바이트한 돈을 모아 헬스장을 등록했다. 학교를 마치고 곧장 헬스장으로 가면 매일 7시 30분 정도의 저녁시간이었다. 그도 매일 퇴근 후 헬스장에 오다 보니 우연히 같은 시간대에 다니게 되어 마주치는 날들이 잦았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운동을 오곤 했는데, 자주 마주치다 보니 어느덧 가벼운 눈인사를 주고받는 날이 많아졌다.


눈인사를 나누던 날들이 쌓여 말이 트였고, 조금씩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헬스 트레이너인 아는 동생에게 오래전부터 운동을 배워왔고, 가끔씩 운동을 처음 접하는 동료들에게 운동도 가르쳐주곤 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스물한 살의 무모했던 나는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정말,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무슨 앞뒤 재지도 않고 들이미는 자신감이었냐만은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헐, 저도 운동 배울래요!"


이걸 순수했다고 해야 할까, 겁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정말 운동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전화번호를 받아냈다. 그와 가끔 추억여행을 떠날 때면 아직까지도 뜨거운 감자인 사건이다.


그는 가늘게 실눈을 뜨고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흐음... 번호를 먼저 물어본다는 건 분명 나한테 관심이 있었으니까 물어본 거일 텐데에...?"

그런데 정말 그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 '운동'이 궁금했다. 결정적인 호감이 생기던 건 그 이후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울리던 카카오톡 알림음은 점차 불이 붙기 시작했다. 운동 지식을 나누던 톡은 불붙은 속도와 비례하게 어느덧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톡들로 가득찼다. 밤이 깊은지도 모른 채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과를 다니고 있는지, 좋아하는 건 뭔지 등 알아가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거리도 한 뼘씩 가까워졌다. 연락을 기다리게 되고, 얼른 만나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간지러운 마음들로 하루가 채워졌다.


나는 일부러 그가 가는 시간에 맞추어 내 운동 시간을 변경했다. 어쩌다가 그가 야근이라도 해서 혼자 운동하게 되는 날이면 어찌나 허전하던지. 나도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함께 운동을 마치고 각자의 집으로 헤어지려던 어느 날, 그는 내게 물었다.

"집까지 데려다줄까?"


쿵, 순간적으로 가슴 한구석을 아리며 큰 파동이 일었다.

'뭐야, 나 방금 심쿵한 거야?'

좋으면서도 당황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나는 그에게 그러자고 답했다. 헬스장에서 집까지는 약 15분 거리. 우리의 발걸음은 아주 천천히 나아갔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집 앞에서 2분만 걸어가면 공터인데. 조금만 더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한데. 입 밖으로는 내지 못해 안에서만 둥글둥글 내 맘을 굴리고 있을 때쯤 그가 말했다.

"저 앞에 공터 가서 좀만 더 있다가 갈까?"

오예!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뭐지, 텔레파시라도 통한 건가? 생각하며 수줍은 얼굴로 '그러자'라며 짧게 답했다.


집 앞 공터에는 우리를 위해 자리라도 내어주듯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 텅 빈 배드민턴장 너머 있는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조금의 어색함과 긴장감이 맴돌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떨려서 두 손만 만지작 거리느라 시선은 바닥에만 두었다. 여름을 앞둔 6월 말이라 그런가 모기들이 윙윙거리며 주변을 맴돌았다. 약간의 적막, 이어진 우리의 이야기 그리고 또다시 약간의 적막.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마주치는 그의 눈을 나는 똑바로 보지 못했다. 몽글하게 채워지는 공기의 밀도가 나를 설레고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럼 이제 진짜로 집에 갈까?"

이제 진짜로 집으로 향하는 길. 눈앞으로 무언가 스윽 들어왔다. 정체는 바로 그의 손. 또 쿵, 또 한 번의 파동이 일었다.

'뭐야 이 남자, 왜 이렇게 훅들어와? 설레게.'

고민도 없이, 나는 그의 손을 맞잡았다. 정말 이런 거 고민 많이 하는 성격인데, 웬일인지 머리보다 손이 먼저 덥석 그의 손을 잡았다. 이런 게 바로 끌림인 건가, 짧은 찰나에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시작된 우리의 연애. 그 흔하디 흔한 '나 너 좋아해. 우리 사귈래?'라는 고백 한번 없이 맞잡은 손. 그날 밤의 공기와 적막, 잠 못 들던 설렘까지. 벌써 5년도 더 된 일이지만 모든 것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런 날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어서, 더 몸 달아 그때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어느새 봄을 알리는 따스한 바람이 살랑 불어온다. 잠깐의 봄이 지나고 나면 또다시 돌아올 6월. 그날이 돌아오면 나는 또 행복한 추억에 잠기며 그와 함께 첫날을 기념하겠지. 오래도록 추억을 함께 하길 바라며 적었던 메모장을 보며, 기분 좋게 두 번째 기록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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