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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Jan 25. 2024

돌아올 수 없는 날을 사랑하는 일

나의 세 번째 한 줌


작년이 지나기 전, 꼭 적으려고 했던 글인데 핑계일지도 모르겠지만 벌써 2024년으로 미루어져 지금에서야 바지런히 키보드를 두드려본다. 조금은 늦었지만, 지난 한 해 나의 쉬는 날들을 가득 채웠던 그날의 감성들에 대해서 적어보려 한다.


옛날 감성이 끌리는 이유

내가 필름 카메라를 처음 접하게 된 이유는 바로 지금의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는 특유의 거침이 있기 때문이었다. 투박하면서도 거친 화질과 노이즈 낀 이미지 너머로 그날의 시간을 불러왔다. 엄마가 남겨놓은 앨범 속 사진을 통해 접해야만 했던 그 시절의 감성을 필름 카메라로 통해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매력이었다. 그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옛날 감성이 끌렸던 이유.


필름 카메라에 담아낸 순간의 것들


너무나 당연해서 미처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시간을 입어 소중해지는 이유는 아마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때문에 빈티지는 값지고, 그때의 시절은 아련하다. 며칠 전,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오래된 디카가 문득 떠올랐다. 최근에 다시 돌아온 디카 붐으로 인해 이따금 카메라가 있는지 궁금해진 나는 엄마에게 물었고, 엄마는 서랍장 안쪽에서 고이 간직하고 있던 디카를 꺼내 보였다. 버렸을 줄만 알았던 디카가 서랍장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니 이내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이 낡은 카메라 안에는 어떤 시간이 담겨있을까, 재빠르게 SD카드를 넣어 확인해 보았다.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의 모든 날이 있던 방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찍은 듯한 옛집의 곳곳들


사진을 한번 싹 정리한 탓에 많지는 않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과거의 날을 마주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전에는 엄마가 그저 쉽게 못 버리는 스타일이라 골동품들이 쌓여간다고만 생각했지만, 어쩌면 내가 '추억'이라는 귀한 가치를 간과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온 레트로 붐으로 인해 세상의 빛을 본 낡은 카메라처럼, 엄마의 서랍 속에 가득 들어있는 2000년대 휴대폰들 속에는 또 어떤 날의 우리가 담겨있을까 궁금해졌다.




지난해에는 유독 2000년대 한국 로맨스 영화를 많이 찾아보았다. 그 당시의 한국영화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이유는 오로지 그 시절에만 나타낼 수 있었던 감성일 것이다. 여름의 풍경은 여름의 풍경대로, 겨울의 풍경은 겨울의 풍경대로 편안함을 주었다. 영화 속 흐르는 계절을 따라 나도 마치 그 시대에 녹아들듯 빠져들었다.


배우들의 앳되고 풋풋한 모습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묘미었다. 돌아올 수 없는 그들의 청춘과, 사랑을 담고 있었기에 세월이 흘러 그것들이 닿을 때 좀 더 울림이 있는 거겠지. 흔한 스토리이지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날들이기에 결코 그저 흔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그 시대의 감성을 이해하며 보는 맛에 자꾸만 중독되어 갔던 여름이었다.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하나이다. 기억하기 위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때의 나와, 우리, 그 순간을 담아두기 위해서. 보고 싶을 땐 꺼내보고 문득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5년 전의 나, 10년 전의 나를 보며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나는 친구들에게 꼭 함께 찍은 필름 사진을 인화하여 나누어주곤 한다. 각자의 시간을 따라 바쁘게 살아가던 중에도 벽 한켠에, 앨범 한쪽에 시간을 고이 머금고 있는 기억을 마주하는 순간, 잠시 쉬어가라고. 함께 추억할 수 있다는 건 값진 일이기에 나는 앞으로도 쌓여갈 소중한 기억들을 함께 나누려 한다.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무심코 현재의 시간에 치여 놓치고 만다. 나 또한 지금도 현실에 치여 많은 시간을 놓치곤 하지만,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사랑하는 일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며 꼭 잊지 말아야 할 일과도 같을 것이다. 열심히 달리면서도 천천히 주변의 것들을 기억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먼 훗날 웃음 지으며 볼 수 있는 것들을 가득 남기기 위해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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