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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Jan 04. 2022

5년 연애, 싸운 횟수 0번.

어쩌면 비결일 수 있는 우리만의 방식



비결 아닌 비결

쿨하고 단순해라!


무심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바꾸려고 들어갔다가 프로필 배경에 설정해둔 우리가 만나온 날짜가 눈에 띄었다. 만난 지 100일이 된 것도 신기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그 신기함도 익숙해진 건지 한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함께한 날들이 눈에 들어왔다.

'와... 벌써 이렇게 됐네'

그와 벌써 스무 번의 계절을 함께하고 있다. 봄에는 벚꽃 본다고 여름에는 바다 가자고 가을에는 단풍 보자고 겨울에는 눈 보러 가자고 설치던 그저 평범했던 날들이 문득 떠올랐다. 스쳐가는 시간들로 말미암아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들을 되새겨보았다. 우리의 날들은 잔잔한 물결과도 같은 날들이었다.


"너넨 서로 싸운 적 없어?"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싸운 적이... 있었나...?'

서운해서 나 혼자 울고불고 한 날은 있었어도 서로 얼굴 붉히며 싸운 적은 전혀 없었다. 친구와 나눴던 이야기를 되새기며 집에 오는 길에 잠시 멍 때리며 생각해보았던 것 같다.'어떻게 한 번을 안 싸웠지?'

생각해보니 우리는 항상 먼저 손을 내밀었던 것 같다.


한 번은 남자 친구와 '지인에게 상황을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서로의 주장이 맞지 않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가던 날이 있었다.

"아니, 내가 알아서 잘 말하면 되는데 자기는 왜 이렇게 걱정인 거야?"

대체적으로 쿨한 면을 지닌 그와는 달리 나는 말 한마디 건넬 때에도 수십 가지 걱정거리를 달고 건네곤 했었다. 어떤 면에서는 성격이 비슷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명확히 다르다 보니, 가끔씩 답답한 나의 성격 탓에 대화의 물결이 거칠어질 때가 있곤 했다. 나도 나름대로 걱정이 돼서 내 생각을 전했지만 답답함이 담긴 그의 답변을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잠시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서로의 기분이 상한 게 분명한 침묵이었다. 어두운 방 안에 두 개의 핸드폰 화면만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3분쯤 지났을까? 핸드폰 화면 위로 까만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의 손이었다. 그도 은근히 내 기분이 신경 쓰였는지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다. '아까는 네가 기분 나빴을 수도 있겠다'라는 무언의 마음이 담긴 그의 손길을 나도 같은 마음을 담아 꼭 쥐었다. 그렇게 3분 만의 침묵은 빠르게 종결되었다.


한 번은 이런 날도 있었다. 데이트를 하기로 했던 주말,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가도 핸드폰이 이상할 정도로 잠잠했다. 그의 집으로 향하면서 수없이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되질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왠지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일말의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기분이 썩 좋진 않은 채로 그의 집으로 향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연 순간 누워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계속되는 야근으로 많이 피곤할 그를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그에게 화가 났다. 계속해서 어르고 달래며 깨워봤지만 쉽사리 일어나지 않는 그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자고 있는 그를 두고 현관문을 쾅 닫고 집을 나섰다. 일부러 깨라고 쾅 닫고 나왔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피곤한 그를 내가 이해 못 해주는 건가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괘씸한 마음을 가득 안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다 와갈 때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미안해'라는 말을 남긴 그의 톡이 보였다. 나도 참 단순한 건지 미안하다는 그의 말에 미운 마음이 금세 사그라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 깊게 잠들었어서 쾅 닫고 나오는 소리조차 듣지도 못했다는 게 이 사건의 웃긴 포인트다. 나 혼자 곤히 잠든 사람 두고 북 치고 장구 친 것 같아 어이없기도 하고, 그가 미안해하며 머쓱해하는 그 상황이 너무 웃겨서 카톡으로 'ㅋㅋㅋㅋ'을 남발했던 추억이 된 그날이 떠오른다.


그렇다. 우리는 꽤 단순하고 쿨했던 것 같다. 불현듯 우리 아빠와 엄마가 싸운 다음 날의 재미있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시절, 전 날 벌어진 엄마와 아빠의 싸움으로 어색하게 감도는 집안 공기에 눈치만 보고 있었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가 나를 툭치며 밥그릇을 내밀고 말씀하셨다.

"너네 아빠 갖다 줘!"

그릇을 보자마자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노란 오므라이스 위에 케첩으로 꼬불꼬불 '미안해'라고 적혀있었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엄마를 돌아보았지만 애써 바쁜 척을 하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엄마의 쿨한 사과에 하루 동안 말 한마디 않고 있던 아빠가 환히 웃으며 한 말은 어이없게도 이 말이었다.

"오므라이스 되게 맛있네!"


생각할수록 어이없게 쿨하고 단순한 화해법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미워도 다름을 인정하는 것, 이해하지 못하겠어도 억지로라도 상대의 입장에서 한번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바로 서로의 규칙으로 정의하지 않아도 무언으로 행해져 왔던 우리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한 번만 먼저 손 내밀고, 두 번만 눈 딱 감고 쿨하게 사과하고 사과를 받아들여보자.

나도 모르게 어느새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보는 보살 아닌 보살이 되어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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