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카페에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찌소년 Apr 25. 2016

그녀는 자연스레 단골이 되었다.

4.22 금요일 오전 11시 40분,

첫 손님이 왔다. 



그녀: 아이스 바닐라라떼 한 잔 가져갈게요~!



라는 말과 함께 그놈에게 뭔가를 건넸다.

베이지색 종이 위, 이름, 010으로 시작하는 11개의 번호.



가 적혀있을 것 같았던 그놈의 예상은 역시나 김칫국이었다. 그녀가 건네준 건 지난번에 사용한 것으로 예상되는 종이컵 홀더와 캐리어였다. '깨끗한 거니 재사용하면 된다'는 그녀의 메세지는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받을 수 있었다. 







그녀: 저 잠시만 어디 갔다 올게요!
그놈: 얼마나 걸리세요?

그녀: 3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그놈: 아~오래 걸리시면 얼음이 녹을 것 같아서요. 


얼음과 우유, 커피맛이 섞여 음료 본연의 맛이 사라질까 봐 시간을 물었던 그놈은 그녀가 자리를 비운 3분 동안 그녀에게 건네줄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별거 아닐 수 있는 컵홀더와 캐리어.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그녀의 마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그녀의 마음에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었던 그놈은 바닐라라떼를 제쳐두고 카페 이곳저곳을 샅샅이 뒤졌다.



찾았다.



3분이 지나고,

그놈은 그녀가 가져다준 캐리어 한쪽엔 바닐라라떼를 나머지 한쪽엔 브라우니를 담아서 건네주었다. 


브라우니를 건네준 이유는 설명하지 않은 채 브라우니를 먹는 방법만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감사하다는 한 마디와 함께 카페를 떠났다.






그놈과 그녀에게 저장된 사진 한장. 브라우니 & 캐리어, 컵홀더


머릿속에 저장된 사진 한 장,

카페에서 일하면 사소한 일에 감사함을 느낀다. 손님의 인사 한마디, 떠난 자리 위에 가지런히 정리해둔 컵, 맛있다는 한 마디, 사진 찍는 모습들까지 카페 주인은 아니지만 손님의 사소한 행동에 일의 보람을 느낀다.


그런 그놈에게 그녀가 전해준 캐리어와 컵홀더는 머릿속에 저장된 사진 한 장과 같았다. 반대로 그녀에게 브라우니는 머릿속의 사진 한 장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놈과 그녀는 그 두장의 사진으로 그 순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놈에겐 '컵홀더와 캐리어'라는 사진 이름으로, 그녀에겐 '브라우니'라는 사진 이름으로 말이다. 






카페에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녀는 자연스레 단골이 되었다. 

두 달 후의 그림을 상상했다. 그녀는 자연스레 단골이 되어 있었다. 그놈이 그녀를 카페에서 본건 그날 하루지만, 두 달 후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충분한 근거들이 있었다.


컵홀더와 캐리어를 들고 왔다. 가져다준 걸 봐서는 근처에 거주하거나 근처에 일하고 있다. 그녀에게 '브라우니'라는 사진 한 장을 전해주었다. 그녀의 성향상 다음에 캐리어를 들고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사실 두 달 동안 그녀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괜찮다. 그래도 그놈에겐 그녀는 단골손님으로 기억될 것이다.




오늘 또 배웠다.

카페를 자주 방문해야 단골손님으로 인식될 것 같지만, 손님과 직원 간의 사진(기억) 하나만으로도 손님은 직원에게 단골손님이다. 그놈은 그녀를 '캐리어 손님'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단골 카페를 가는 이유를... 처음엔 단골이 아니었을 텐데. 궁금하다.






성시경의 '거리에서'를 본딴

매거진 '카페에서': 사장 없는 카페에는 내가 할 일이 많아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면서 생긴 에피소드, 거기서 배울 수 있는 점들을 정리하는 카페 매거진. 훗날 카페를 할지도 모르니. 카페 준비하시는 분들한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매거진이 되길 바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