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손님으로 느낄 수 있게 해야 했다.
"저기 혹시 그린 주스 되나요?"
"아... 죄송한데... 지금 그린 주스에 들어가는 재료가 하나 떨어져서 오늘은 안 되겠네요.."
"그럼 레드 주스는요?"
"아... 레드 주스도... 죄송한데 오늘은 옐로우 주스 밖에 안돼요. 죄송해요..."
"그럼 옐로우 주스로 주세요."
"테이크아웃하시는 거죠?"
"오늘은 먹고 갈게요."
평소 아이스 카페라떼를 즐겨마시던 그녀가 웬일인지 과일주스를 주문했다. 그리고 테이크아웃이 아니라 카페에서 마시고 갔다. 몇 달만이다.
참고로 그녀는 카페 근처에 살고 있으며, 아이스 카페라떼를 즐겨 마시고 항상 테이크아웃 해가는 단골손님이다.
다음날 밤 11시 30분, 마감 30분 전.
그녀가 카페에 왔다.
"안녕하세요~ 아이스 카페라떼 테이크아웃으로 드릴까요?"
"아뇨... 혹시 오늘은 그린 주스 되나요?"
"아.... 죄송한데 사장님이 과일이랑 야채 사러 내일 가셔서 오늘까지 안돼요.. 죄송해요. 오늘도 옐로우 주스만 가능해요."
"음... (망설임) 그럼 아이스 카페라떼로 주세요."
"넵!! 죄송해요! 계산해드릴게요"
그녀는 카운터 근처에서 음료를 기다렸고, 그놈은 주방 안에서 아이스 라떼를 만들었다. 그놈은 왠지 모를 미안함에(사실 당연히 미안해야 하긴 하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그놈 생각: 겨울엔 따뜻한 라떼, 봄, 여름, 가을엔 아이스 라떼만 마시던 그녀가 갑자기 과일주스를 찾는 이유는 뭘까? 그것도 이틀 연달아서 말이다. 생과일주스를 마시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저녁을 안 챙겨 드셔서 밥 대신에 마시는 걸까?
에스프레소 추출 시간 23초,
곰곰이 생각하던 그놈은 주방에 하나 남은 자몽을 발견했다.
그놈 생각: 그래! 그녀가 이틀 연속 과일주스를 찾았다는 건 과일이 필요했다는 거야.
조금 오래된 것 같은 자몽. 집어 들긴 했지만 망설였다. 괜한 오지랖을 부리는 건 아닐까. 내일 껍질을 벗겼는데 상해있진 않을까. 잠시 고민하던 그놈은 자몽을 주기로 결정했다.
한쪽 손엔 아이스 라떼를, 다른 한쪽엔 자몽이 담긴 투명 봉투를 들고 그녀를 불렀다.
"아이스 라떼 드릴게요! 그리고 이거 내일 아침이나 오늘 밤에 드세요. 과일이 지금 이거밖에 안 남았어요."
함께 건넨 자몽에 그녀는 음료를 받아 들지 않았다. 망설였다. 옆에서 컴퓨터를 하던 사장님이 신경 쓰였나 보다. 5초의 정적이 흘렀을까? 사장님을 훑어보더니 다행히 음료와 자몽을 건네받았다.
"괜찮아요(아주 작은 목소리로)?"
"괜찮아요~ 사장님이 준비 안 해놓은 건데요 뭘~(더 작은 목소리로)"
"근데 이거 자몽인가요?"
"네~ 껍질 벗겨서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예상치 못한 자몽에 당황한 걸까? 그녀는 황급히 카페를 떠났다. 흐뭇한 미소를 짔던 그놈은 남은 설거지를 하러 갔다.
- 그 상황을 지켜본 그 카페의 CCTV가-
에필로그.
그러하다. 카페에서 일하다 보면, (특히) 단골손님이 주를 이르는 카페에서 일하다 보면 손님의 행동과 마음을 읽어야 할 때가 많다. 그 손님이 주로 오는 시간은 언제인지, 주로 누구랑 오는지, 어떤 음료를 즐겨 마시는지, 그 손님만의 특징은 무엇인지(예를 들면 달게 드신다던지), 카페에서 주로 무엇을 하는지...
그래야 단골손님이 따로 말하지 않아도 챙겨줄 수 있고, 그냥 대화 한 마디 할 수 있고, 더 반갑게 맞아 줄 수 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스트로 챙겨드릴게요', '연하게 드릴게요~'
손님 스스로 단골손님이라고 생각해도 좋지만,
단골손님이라고 느낄 수 있게 손님을 대하는 건 더 좋은 것 같다.
'당신은 이 카페의 단골손님이에요' is better than '나는 이 카페의 단골손님이에요'
P.S. 사장님 재료 좀 빨리 사 오세요!!!!
성시경의 '거리에서'를 본딴
매거진 '카페에서': 사장 없는 카페에는 내가 할 일이 많아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면서 생긴 에피소드, 거기서 배울 수 있는 점들을 정리하는 카페 매거진. 훗날 카페를 할지도 모르니. 카페 준비하시는 분들한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매거진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