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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머 Nov 14. 2020

벤츠 운전대 내려치며 울어본 후기

쾅쾅

재미로 보는 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자전거 위에서 우는 것보단 벤츠에서 우는 게 편하다'라는 스코틀랜드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이 속담이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벤츠에서 울어봤습니다(?). 


 이해를 위해 TMI를 좀 풀어보자면 저는 요즘 회의감을 심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회사에 대해서요. 물론 사람 스트레스도 있지만 제가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가치관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저는 지구 환경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미 많이 훼손된 자연을 회복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제가 지금 다니고 있는 물류·유통업계는 너무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저는 이 회사에 다니고 있는 아주 많은 사람들 중 권한은 쥐뿔도 없는 신입사원이지만 어쨌든 그 일에 일조한다는 게 스스로에게 부끄럽고요.


 그래도 당장 퇴사하지 않는 이상은 열심히 다녀야 하니 어제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도로에는 차는 별로 없었고 날은 좀 흐렸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달리다가요, 문득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나는 그냥 잘 좀 살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서요. 


 요즘 안 그래도 눈물이 많아졌는데 그 와중에 이렇게 현타가 오니 또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좀 울었습니다. "잘 살고 싶어!!!!! 잘 살고 싶은데 그게 왜 이렇게 어렵냐!!!!!!"중2병처럼 소리도 질러봤어요. 눈물 때문에 눈앞이 흐려져서 잠깐 갓길에 댈까 했는데 눈물은 생각보다 금방 멈추더라고요. 눈이 안 보이면 당장 제 생명이 위험해지니 본능적으로 멈춘 걸까요?


 사실 차 안에서 우는 게 처음은 아니고요―애인이랑 싸우고 집 가는 길에 멈추거나 주차장에서 울어본 전적 有―인생 현타가 와서 울어본 건 처음이라서 이 경험을 기록해보고자 글을 썼답니다. 


그래서 벤츠 안에서 울어본 후기
벤츠(중고라서 저렴하게 업어온 착한 친구/미션오일 갈 때 됐는데 아직 안 갈아준 점은 유감)


 벤츠에서 울든 자전거에서 울든 그냥 길거리에서 울든 다 이유가 있는 울음들이지만 차에서 우는 게 좀 나은 점도 있긴 했습니다. 우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는다는 점, 온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니 너무 춥거나 덥지 않다는 점 정도가 있겠네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주먹으로 핸들 내려치면 아플 것 같아서 내려치진 못했고요.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때려보니 손바닥 얼얼하더라고요. 다들 핸들은 단단하다는 걸 잊지 맙시다. 아무튼 울어본 결과 벤츠에서 운다고 해서 슬픔이 덜하진 않더라는 겁니다. 


 오히려 차 산 게 억울하더라고요. 차를 갖고 싶어서 산 건 아니고 업무 특성상 출장이 잦아서 어쩔 수 없이 산 차인데, 차 때문에 돈은 하나도 못 모으고 유지비는 유지비대로 나가니까요. 물론 정말 운 좋고 감사하게도 좋은 차 저렴하게 잘 샀지만 그건 그거고 슬픈 건 슬픈 거니까요…….


 울고 나서야 와 닿았어요. 내가 나를 아끼니까,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살았으면 한다는 게요. 생각보다 많이 지쳐있었구나 싶었고요. 또 소리도 질러보니 좋더라고요. 그동안 내가 나에게 이런 말(잘 살고 싶은데 잘 못 살아서 미안해)을 해주고 싶었구나. 내가 나에게 미안하기도 했구나. 


 울음 멈추고 난 다음에는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마 그 울음에 그동안 쌓인 부정적인 감정들을 실어서 날려 보냈나 봐요. 그랬더니 당장 지금이 보이더라고요. 지금까지 힘들었던 건 그저 그런 시간을 보낸 것일 뿐이고 우리는 또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야 하니까요. 


울고시픔울어


 이 글을 쓰기 전에, 이렇게 날것의 이야기를 쓰고 사람들한테 공개해도 될까 싶었는데요. 사람이 엄연히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건데 당연히 우는 날도 있는 거 아닌가? 우는 나도 결국 나인데 안고 가야 하지 않나? 생각하며 용기 내어 올려봅니다. 어차피 사람들은 남에게 그렇게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걸 이젠 잘 알고 있기도 하고요.


 그냥 저 스스로에게 바랍니다. 울고 싶은 순간에는 펑펑 울 수 있기를요. 사람이 메마르면 슬퍼도 눈물이 안 날 수가 있더라고요. 겪어봤는데 그거 참 고통스러웠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달리는 차 안에서 울어볼 수도 있고 얼마나 다이내믹해요! 험한 세상이지만 우리 스스로의 마음을 잘 보듬으며 하루하루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져요. 우리 존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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