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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머 Nov 21. 2020

일기, 9년 동안 꾸준히 쓰는 이유

혼자 앉아 나를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해

 혹시 일기를 쓰시나요? 저는 학생 때부터 일기를 써오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게 2012년이었으니 올해로 9년 차네요.


9년 동안 쓴 일기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먼지 쌓인 책장을 뒤져 그동안 써온 일기장들을 모아봤습니다. 쓰다 말았거나 일기 목적이 아니었던 3권의 노트를 빼고도 모아보니 꽤 무겁더라고요.


 줄도 쭉쭉 그어져 있고, 딱 쓸 페이지만 펼쳐두고 나머지 페이지는 접어둘 수 있는 스프링노트를 고집해왔는데요. 가장 최근 일기장(맨 위)은 스프링 없는 무지 노트를 사봤는데 마음에 들어서 다음 일기장도 비슷한 걸로 구매하려고 합니다.


 아! 노트 말고도 휴대폰에도 일기를 쓰고 있어요. 일기장 들고 다니면 남들이 가방 몰래 열어서 볼 것 같아서 무서워요(자의식 과잉). 그래서 밖에서 일기 쓰고 싶을 때, 혹은 가족도 몰랐으면 하는 이야기를 쓸 때는 휴대폰 일기 어플에 토독토독 씁니다. 휴대폰은 얼굴인식 기능으로 이미 잠가놨지만 혹시나 누가 볼까봐 일기 어플에는 이중으로 잠금까지 했어요.


브런치 메인에 노출된 것도 기록했어요!(뿌듯)

 이 어플은 2015년 12월부터 꾸준히 써왔어요. 지금까지 작성한 일기가 1515개네요. 컴퓨터랑 동기화되지 않는 건 아쉽지만 분기에 한 번 정도 PDF로 변환해서 메일에 보내 놓는 식으로 저장하고 있어요.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

 2012년에 처음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던  그때 제가 했던 경험을 기록하고 싶어서였어요. 이렇게 공개적인 곳에 말하는 건 처음이라 쑥스럽지만 당시 제도권 교육에 불만이 많았던 저는 잘 다니던 학교에서 뛰쳐나와 학생들이 만드는 학교에 잠깐 다녔습니다. 그때 그 경험이 평범하지 않을 거라고 직감하고 이걸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 길로 문구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노트를 샀습니다. 그리고 매일 있었던 일을 기록했어요. 명함 받은 것들 모아서 붙여놓고, 했던 활동 기록하고 활동지 붙여놓고...


 결과적으로 저는 두세 달 만에 다시 제도권으로 돌아왔지만 그 경험을 통해서 값진 것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일기 쓰는 습관이에요. 그 전에도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어릴 땐 동시도 쓰고, 왼손에 흑염룡이 살았던 중학생 시절 찐한 짝사랑을 노래하는 글도 써봤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그 날의 인상 깊은 사건을 정리하고,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기록하는 일에 매력을 느꼈어요.


일기를 쓰면 답이 보인다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마음이 답답하거나 우울할 때는 일기장부터 펼쳤어요.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들을 쭉 적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거든요. '일기를 쓰면 나아질 거야'라는 생각보다는 '빨리 일기 안 쓰면 죽겠다'는 심정이었어요.


 부끄럽지만 제가 쓰면서 실시간으로 성찰했던 기록들을 증빙하고자 제 실제 일기장 중 몇 페이지를 공개하겠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일기를 쓰면 기분이 나아졌기 때문에 자꾸 일기장을 펼쳤던 것 같아요. 일기를 쓴다는 건 마음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저를 괴롭히던 감정들과 생각들을 작정하고 혼내주는 행위예요.


 어떤 문제가 있거나 선택을 해야 할 때, 사실 답은 이미 스스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내가 내 상태를 잘 모르니 답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어려운 거고요. 이럴 때 일기를 쓰면 내 상황과 감정을 훨씬 멀리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요. 어려운 문제도 쓰다 보면 알게 돼있습니다. 써도 써도 답을 모르겠더라도, 적어도 '이건 해결하기 진짜 어려운 문제구나. 내가 어려운 문제를 붙잡고 있느라고 참 힘들었구나. 도움을 청하든지 해야겠다.'까지 생각이 나아갈 수 있는 거죠.


모자란 뇌내 기억용량 보완

 저는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아요. 특히 대화를 잘 기억 못 해요. 예를 들면 애인과 다툴 때 제가 뱉었던 말을 정확히 기억 못 한다던지, 어떤 티키타카가 오갔는데 무슨 문장들이었는지, 면접 때 어떤 질문을 받았고 뭐라고 대답했는지 등등이요.


 그런데 사건이라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가장 많이 생기잖아요? 일기에 그 사건을 기록하려면 대화 내용을 적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기억력이 좋지 않지만 일기장을 펼쳐보면 그 날 어떤 대화를 했는지 기억할 수 있습니다. 단, 대화를 나눈 직후에 바로 써야 한다는 점이 번거롭긴 해요.


 그리고 이런 기록을 통해 다음에는 더 잘 소통할 수 있게 돼요.


 '이런 말실수를 했으니 앞으로는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나한테 이런 말을 하다니 진짜 못된 인간이네. 앞으로는 상종하지 말아야겠다'

 '앞으로 이런 갈등상황은 이 방법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겠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이런 건전하고 지혜로운 생각들이 이어지기 때문이죠.


내 위치 파악 가능
아몰랑

 정신없이 살다 보면 문득 나는 지금 어디쯤에 있나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이 방향이 내가 원하던 거였는지, 지금 얼마나 왔는지 같은 생각이 들죠.


 물론 태어날 때부터 최종적인 목적 같은 걸 가지고 세상에 나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목표를 세우며 살아요. 그러나 열정 가득한 목표들도 기록하지 않으면 희미해져요. 저만해도 올해 1월 1일에 어떤 다짐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이건 제 기억력 문제일 수도 있겠네요 하하).


 그런데 목표를 글로 써두면 그걸 다 이루진 못하더라도, 그 당시의 내가 뭘 원했었는지 상기할 수 있어요. 또 그 목표에 비춰서 지금 어느 정도까지 왔는지 어림잡아볼 수 있고요.


대학교 1학년 때 썼던 일기 중 일부

 이건 대학교 1학년 때 썼던 일기인데요. 당시 제가 유일하게 가고 싶었던 회사에 대한 이야기예요. 마침 그 회사에서 서포터즈를 뽑길래 냉큼 지원했어요. 서포터즈 활동은 단 두 차례 진행되었는데 좋게 봐주셔서 두 번 다 활동할 수 있었고요. 서포터즈에 붙기 전에 쓴 건지, 막 붙고 나서 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같이 일했고, 졸업 후엔 인턴으로 취업도 했어요.


멋있게 챠쟉은 뭔지

 이건 2017년에 썼던 일기 같네요. 당시에 무술을 배우고 있었는데 검은띠를 따고 싶었나 봐요. 승단심사 열심히 준비 후 검은띠 따서 옷장에 챠쟉하고 방치 중입니다!


 이런 기록을 통해서 내가 어떤 걸 이루고 싶었는지 다시 되새기고, 실제로 그걸 이뤘는지 점검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점검하는 행위 자체보다는, 스스로 목표를 이뤘을 때 드는 성취감이 훨씬 크고 중요한 것 같아요. 이래서 일기를 끊을 수가 없습니다.


나를 격려하는 일기 쓰기

 저는 힘들다는 얘기를 남들한테 잘 하지 않았어요. 괜히 징징거리는 것처럼 보일까봐요. 요즘 너무 스스로에게만 파고드는 것 같아 가까운 사람들에게 하소연해봤지만 아무리 말을 해도 해소되지 않더라고요. 응원을 받아도 그게 와 닿지가 않았어요.


 오히려 혼자 있는 방에서 일기장을 펴고, 있는 감정 모두 끌어다가 일기장에 풀어놓는 게 더 편안해요. 그럼 감정도 해소되고 스스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응원해주게 되는데, 저한테는 남들한테 얘기하는 것보다 이렇게 혼자 풀어가는 게 더 효과적인 위로였어요.


격려 1
격려 2
격려 3

 일기를 쓰며 가장 만족스러웠던 점은 바로 제가 저를 응원할 수 있다는 거예요. 괴로워서 쓰다 보면 안쓰러운 내가 보이고, 안쓰러운 채로 열심히 하는 스스로가 기특해서 자꾸 응원을 하게 되더라고요. 풀꽃도 사람도 자꾸 보고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되잖아요. 쓰면 쓸수록 나를 알게 되고, 알면 알수록 나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선순환 때문에 일기를 써요.


일기 쓰기, 이렇게 시작해보세요

 여기까지 보시고 혹시 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드셨다면 바로 시작해보세요! 제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행위가 바로 일기 쓰는 거였기 때문에 여러분께도 자신 있게 추천드리고 싶어요.


 학교, 회사를 다니다 보면 일기 쓸 시간을 내는 게 굉장히 어려운 걸 잘 알아요. 실제로 저도 입사한 뒤로 일기 쓰는 횟수도 줄었고 가끔 쓰더라도 피곤해서 짧게만 쓰게 되더라고요. 그렇지만 짧게라도 기록을 남겨보는 게 가장 중요해요.


 저처럼 휴대폰 어플에 써도 되고, 귀여운 노트 하나 사서 써도 돼요. 쓰다 보면 니즈가 더 생길 거고, 그때 그에 맞춰서 발전시켜가면 되니까요. 대신 며칠 빼먹었다고 자책하지 않기로 해요. 저도 9년 내내 매일 쓴 건 아니고 바쁘고 지치면 몇 주에서 심지어 몇 달 동안 일기를 쓰지 않은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땐 정말 일기 쓰기도 힘들 만큼 힘들었다는 걸 잘 아니까 후회하지 않아요. 기억할만한 사건이 있었거나 마음을 정리하고 싶을 때 가볍게 꺼내서 이야기를 쭉 써 내려가셨으면 좋겠어요.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일기 쓰기 모임 같은 걸 만들어서 같이 진행해봐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쪼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일기 쓰기를 즐겼으면 좋겠어요. 오늘, 일기 한 편 써보는 거 어떠세요?




+2020년 11월 23일자 추가,


 위에 말한 일기쓰기 모임 진짜 벌렸습니다! 

https://blog.naver.com/wo0on/222152381652

 여기에서 안내글과 모집 신청서 확인할 수 있어요 :) 

신청마감: 2020년 11월 30일 2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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