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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머 Dec 12. 2020

미니멀 라이프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공간이 내 마음에 쏙 들었으면 좋겠어

 이유는 모르겠는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 방을 내 마음대로 꾸며야겠다'는 생각을 깊이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원래 있던 책상, 원래 있던 침대- 그것들은 꼭 그런 모양이어야 하고 꼭 그 위치에 있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예쁜 에어비앤비 숙소나 잘 꾸며진 카페에 가면 들어가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저는 한 번도 '내 방도 그런 기분 좋은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그냥 살다 보니 편하긴 하지만, 정말 그냥 편한 공간 이상이 되지는 않았어요. 너무 좁고 볕도 잘 안 들고 춥게만 느껴졌고요. 


 재택근무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점점 방이 갑갑해졌어요. 좁은 방에 침대, 책장, 책상, 서랍, 전자피아노가 가득 들어차서 가구 사이로 걷기도 힘들 정도였거든요. 하루하루 불만이 쌓이다가 결국 며칠 전에 폭발해서는 책장, 책상, 서랍을 다 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우선 서랍을 정리했어요. 책상판을 지지하고 있던 3단 서랍인데요.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했어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각종 비상약, 앞으로 단 한 번도 쓸 일 없을 것 같은 모양 펀치, 10년 된 파우치, 정체모를 종이 쪼가리들, 실습할 때 입었던 앞치마, 고등학교 명찰 등등... 버릴 거 다 버리고 나니 서랍 한 칸을 채 못 채울 만큼만 남더라고요. 남은 물건들은 베란다에 갖다 두었어요.


 책장은 완전히 비우기가 힘들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한 권 두 권 야금야금 모은 책들을 버리긴 싫더라고요.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는데 책장 맨 아랫칸에 식용유니 샴푸니 바디워시니 하는 것들이 가득 차있었어요. 싸그리 모아서 역시 베란다에 처박아두었습니다.


 다시는 펼쳐보지 않을 것 같은 전공책들도 다 버렸어요. 버리면서 망설이기는커녕 졸업할 때 진작 버릴 걸 그랬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두툼한 화일로 철해뒀던 실습일지도 한 장 한 장 다 뽑아서 종이로 따로 분리해서 내놨습니다.


 다 쓴 노트들은 스프링을 분리해서 버렸어요. 구부러진 스프링 끝부분을 펴느라 손톱이 아팠습니다. 스프링 한 열 개는 분리한 것 같아요. 물건 사는 걸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다른 사람들보단 적게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하나 꺼내보니 정말 많이도 가지고 살았더라고요. 버리는 일의 번거로움을 몸소 느껴보니 앞으로는 물건을 들일 때 신중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빠의 도움을 받아서 책장, 책상, 서랍을 다 내다 버렸습니다. 버리는 김에 바닥에 깔려있던 소음방지 패드들까지 싹 내놓았더니 쓰레기 처리 비용만 31,000원 나왔습니다. 당근마켓에 올려서 팔아볼까도 고민했지만 팔리기 전까지 집에 물건을 보관해야 하고, 크기도 워낙 크다 보니 귀찮더라고요.


 그리고 집에서 놀고 있던 나무 책상을 제 방으로 옮겼습니다. 모니터, 스피커, 키보드, 마우스, 연필꽂이만 올려두었어요. 방을 청소하다가 발견한 정체불명의 조그만 드라이플라워를 세워두었더니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분위기도 화사해진 것 같아요.


before 사진은 너무 심각해서 차마 올리지 못하고 after만 공개해봅니다.. 


 이렇게 치우고 나니 좁았던 방이 훨씬 크게 느껴집니다. 실제로 큰 가구들을 빼고 나니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어요. 그래 봤자 원체 좁은 방이긴 하지만 그래도 발에 채이는 것 없이 움직일 수 있어서 시원합니다.


 더 좋은 점은 자꾸 책상 앞에 앉고 싶어 진다는 거예요. 아침에 잠에서 깨면 휴대폰이나 아이패드를 들여다보며 꾸물대기 일쑤였는데 정리하고 난 뒤로는 벌떡 일어나서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켭니다. 그 말인즉슨 글을 쓰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는 거죠.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일하는 환경을 좀 더 좋게 바꿔보고자 하는 마음도 원래는 있긴 있었는데... 정리를 하고 나서 일이 더 잘 되냐고 물으신다면 그 질문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아무튼 제가 마음먹고 제 손으로 치우고(물론 아빠의 손길도 있었지만요) 직접 정리하고 나니 뿌듯하구요, 새로 태어난 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정말 즐겁습니다.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설레요.


 미니멀 라이프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짐을 없애고 단순한 공간으로 만들고 나니 저도 모르는 새에 마음에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리면서 개운하니 좋네요. 물건을 많이 소유한다는 건 결국 많이 버려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인 것 같아요. 정리하고 버리는 게 귀찮은 저는 그냥 적게 소유하는 게 낫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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