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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머 Mar 11. 2021

내 사랑 좀 읽어봐

글 쓸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나올 수가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운전을 하다 보면 시시때때로 죽음이 떠오른다. 차가 갑자기 튀어나오거나, 장거리 운전 중에 졸음이 밀려오거나, 비나 눈이 와서 차가 돌 때면 어쩔 수 없이 사고를 상상한다. 쿵 소리가 나며 차가 찌그러지고 나는 즉사한다. 몸은 안전벨트에 고정되어있지만 고개는 아래로 떨구고 있다. 차에서 정체모를 연기가 피어오른다. 


 덕분에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죽기 직전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 뭐가 제일 아쉬울까? 처음엔 곧잘 생각해냈다. 인생을 더 즐기지 못한 것 같아(대체 즐기는 게 뭔데?), 너무 걱정만 했어, 하고 싶은 거 다 해볼 걸... 대체로 추상적이었다.


 주행거리가 늘어날수록 '죽으면 뭘 후회할까?'라는 질문에 내성이 생겼다. 하도 질문하고 생각하다 보니 별로 경각심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가끔은 죽음을 앞에 두어도 아쉬울 게 하나도 떠오르지 않기도 했다. 그럴 때 내가 많이 힘들다는 걸 알아차렸다.


 오늘은 오랜만에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다. 할 일이 있어 이틀 연차를 냈는데 어제 다 끝내버리는 바람에 오늘은 할 일이 없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바빠서 잠시 미뤄뒀던 생각을 꺼내 들었다. 돈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돈을 모아서 무엇을 할 거고, 그걸 하려면 얼마가 필요한지 셈을 했다. 돈에게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내가 돈 위에 있고 싶었다. 


 돈 모을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우선 두 가지뿐이었다. 첫 번째는 매년 두어 번씩 물 맑은 바다에 가서 스노클링 하기. 이건 많아봐야 일 년에 200만 원만 있으면 되니까 충분히 가능하다. 두 번째는 서른이 되기 전에 햇살 잘 들고 깨끗한 내 집 마련하기. 그러려면 최소 5억은 있어야 한다. 앞으로 한 30년 모으면 되겠다. 하하. 그런데 난 서른 전에 집을 얻고 싶고, 그때까지 5년도 채 안 남았다. 회사일 말고 다른 걸 해야 한다... 뭘 하면 좋을까 그런 고민을 하다가


 역시 운전이 문제다. 하필 차를 가지고 나왔더니 또 죽음이 고개를 들이민다. 안녕? 그 이유 다 좋은데, 서른 되기 전에 죽으면 어쩌게? 죽음에게는 얼굴이 없지만 오늘은 어쩐지 얄미운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다. 얄밉지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괜찮다. 난 이 질문엔 이미 베테랑이다. 자신만만하게 상상해본다.


 그야, 햇살 좋은 집에 살지 못한 거, 일 년에 두 번씩 스노클링 하지 못한 거...


 그러나 즉사하기 직전에 그런 생각할 여유가 있을까? 나는 정말로 죽기 전에 햇살 좋은 집에 살지 못한 것과 일 년에 두어 번 스노클링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할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거리며 차오르는 마음이 있었다. 그 뜨거운 것은 식도를 타고 올라와서 목구멍을 탁 막았다. 아직 즉사 직전에 처해본 적은 없지만, 나는 마치 이미 죽어본 사람처럼 정확한 답을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충분히 표현하지 않은 것,

 그리고 고마운 사람에게 고맙다고 충분히 표현하지 않은 것.

 나는 이것을 후회하며 죽어가겠구나.


 때로는 명확히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내게는 사랑한단 말이 그렇다. 부끄러워서 입으로는 못하는 말, 글에 꾹꾹 눌러 담아 안겨줄 테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사랑을 첩첩 쌓아 언젠가 한 권 책으로 만들어 사랑한단 말 대신 쓱 내밀고 싶다.


 아니, 사랑한단 말도 꼭 같이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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