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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머 Jun 19. 2021

길빵러에 대한 몇 가지 가설

 길빵.


 그것은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를 말한다. 길빵 금지법을 발의하네 뭐네 시끌시끌했던 게 2019년. 2021년이 벌써 반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길빵러(길빵을 하는 사람)들은 곳곳에서 뻔뻔스러운 얼굴로 길빵을 자행하고 있다.


 어떻게 전 세계적인 역병이 창궐한 이 시국에도 굳이 마스크를 내리고 자신의 들숨 날숨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파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이해가 안 되면 뇌는 불안해한다. 그래서 내 나름의 가설을 세워서 그들의 심리를 조금이나마 추리해보려고 한다. 아래는 내가 세운 나름의 가설들이다.






1. 길빵러들에게는 찌푸린 얼굴 페티시가 있다.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지나가는 사람이 맞은편에서 걸어오면 인상을 절로 찌푸리게 된다. 길빵러들은 이 찌푸린 얼굴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불특정 다수의 찌푸린 얼굴을 보면 흥분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잔뜩 구겨진 미간을 보면 설레고. 마스크 속으로 자신에게 어떤 욕을 할지 두근대는 심장, 그리고 분출되는 도파민에 중독되어 자꾸만 길빵을 하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2. 길빵러들은 관종이다.

 '관심병사'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맞다. '관심종자'의 줄임말인 관종에게도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길빵을 하게 되면, 길빵을 하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시선을 받을 수 있다. 당연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관심을 받고 싶은 욕망이 올바르지 못한 방식으로 발현된 것이 길빵 아닐까?



3. 길빵러들은 공동체 의식이 투철하다.

 길빵러들에게는 의외로 공동체 의식이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정상인이라면 '공동체에 피해를 주지 말자'라는 건전한 사상을 품고 살겠으나 길빵러들은 신선한 시선으로 공동체 의식을 바라보는 것뿐이다.

 

'나만 담배로 인한 피해를 볼 수는 없다. 다 같이 피해보고 다 같이 아프자!'


 이것이 길빵러들의 공동체 의식인 것이다. 담배의 온갖 해로운 물질들이 이들의 폐뿐만 아니라 사상까지 썩게 만든 거라는 게 내 가설이다.



4. 길빵러들에게는 큰 뜻이 있다.

 공동체 의식에서 더 나아가서 길빵러들은 세계적인 의식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바로 '전 세계 사람들을 폐질환에 노출시키자!'는 것이다. 이왕이면 세계평화나 남북통일 같은 조금 더 건설적인 비전을 가지고 살았으면 더 좋았겠다는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



5. 빵러들은 용감하고 자존감이 높다.

 '코로나 따윈 두렵지 않다. 마스크 안 쓰고 다니다가 전염되면? 어차피 흡연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건강한 폐는 남아있지 않다. 뒈져버려도 상관없다. 나는 강하다. 또한 남들이 두려워하는 것도 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만한 깡다구가 있다. 남들이 싫어해도 나는 상관없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나는 졸라 강하다.'


 그들은 이런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마스크를 내리고 자신의 숨과 담배 연기를 타인에게 뿜어낸다는 생각을 해내고 그것을 기어코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길빵러들을 이해해보려고 가설을 세워가며 노력해보았지만 결국, 도저히,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여러 가설을 세우며 생각했다. 이렇게 몰상식한 사람들도 용기를 내서 길빵을 해댄다면, 나라고 못 낼 용기인가. 그렇다. 길빵러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었던 것이다.


 비록 지금은 길빵러 앞에서 이야기하지 못하고 뒤에 와서 분노에 찬 손가락으로 키보드나 두들기고 있는 형편이지만 나는 다짐했다. 모든 길빵러들에게 담배 끄라고 소리 지르는 건 힘들겠지만, 주변에 아기가 있다면 담배 끄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용기 정도는 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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