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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면 인터넷도 멈춘다

베트남 통신망이 자연재해에 유독 취약한 이유

by 한정호

며칠 전 태풍이 베트남 남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더니, 오후부터 인터넷이 심상치 않았다. 다음, 네이버 같은 사이트는 첫 화면까지는 떴지만, 내부 페이지로는 들어가지지 않았다. 잠시 끊기는 게 아니라 몇 시간씩 이어지는 ‘무응답 상태’. 며칠을 그렇게 보냈고, 지금도 가끔 연결이 끊어지곤 한다.


이런 현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폭우가 쏟아지거나 강풍이 몰아칠 때마다 반복되어 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의 인터넷은 왜 이렇게 자연재해에 취약할까?'


1. 인터넷의 두 다리 : ‘지상망’과 ‘해저케이블’

베트남의 인터넷은 두 개의 축 위에 서 있다.

도시와 마을을 잇는 지상 광케이블망, 그리고 해외로 연결되는 해저케이블(국제망).


우리 일상에서 접속하는 대부분의 해외 사이트와 영상들은 이 해저케이블을 통해 흐른다. 따라서 케이블 중 한두 개만 문제를 일으켜도, 포털, 유튜브, 클라우드 같은 외부 서버 접속이 느려지거나 멈춰버린다.

베트남은 현재 5개의 주요 해저케이블망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 중 2~3개만 동시에 문제가 생겨도 전국적으로 속도 저하와 접속 장애가 발생한다. ‘한 줄이 끊어지면 한 나라가 멈춘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2. 태풍과 폭우 : 인터넷을 마비시키는 보이지 않는 손

태풍이 지나갈 때, 우리가 떠올리는 피해는 주로 전신주가 쓰러지고 도로가 잠기는 장면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더 큰 문제가 벌어진다.

강풍은 지상 광케이블을 끊어버리고, 침수는 중계 장비와 전원 공급 장치를 마비시킨다. 전력 불안정은 통신국의 장비를 꺼버리고, 항만 폐쇄는 해저케이블 복구 선박의 출항을 지연시킨다. 즉, 인터넷 장애는 단순한 ‘선 하나 끊김’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재해가 만들어내는 연쇄 반응의 결과다.


3. 초기화면은 뜨는데 내부로 못 들어간다

: 우리 눈에 보이는 증상들

이 시기엔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다. 포털의 첫 화면은 열리지만, 클릭하면 멈춘다. 유튜브 영상은 5초마다 버퍼링이 돈다. 결제 단말기가 작동하지 않아 손님이 기다린다. 업로드가 중단되어 영상 편집이 마무리되지 않는다. 이는 모두 ‘국제 트래픽’이 병목된 결과다.

서버는 살아 있지만, '바다 속 길(해저케이블)'이 끊어진 것이다.


4. 복구는 ‘시간과 날씨’의 싸움

해저케이블의 수리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수리 가능한 전문 선박과 장비가 필요하고, 파도가 높으면 잠수조차 불가능하다. 때로는 한 케이블의 복구에 몇 주가 걸리기도 한다.

지상망 역시 마찬가지다. 전력 복구가 늦어지면, 통신망도 함께 멈춘다. 그 사이 기업은 거래를 중단하고, 소상공인은 영업에 차질을 빚는다. 정보의 흐름이 끊어지는 순간, 도시 전체의 맥박이 멎는다.


5. 우리는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까

자연재해를 막을 수는 없지만, 피해를 줄이는 지혜는 있다.

가. 중요한 송금·결제는 태풍 전 미리 마쳐두자.

나. VPN, 다른 DNS(예: 8.8.8.8, 1.1.1.1) 설정을 익혀 두자.

다. 모바일 데이터용 예비 SIM을 한 개쯤 준비해 두면 유용하다.

라. 매장이라면 수기 영수증·QR코드 이미지 등을 미리 저장해두자.

이런 작은 준비가 위기 상황에서 큰 차이를 만든다.


6. 근본적 해결은 ‘복원력(Resilience)’에 있다

결국 이 문제는 개인의 대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가와 통신사가 함께 ‘복원력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가. 해저케이블의 다변화,

나. 지상망의 지중화 및 방수 강화,

다. 지역 데이터센터와 CDN 확대,

라. 재난 시 신속 복구 시스템 마련.

이런 투자가 이루어질 때만, 베트남의 인터넷은 비바람 속에서도 끄떡없는 기반이 될 것이다.


비바람이 멎은 뒤의 생각

태풍이 지나가면 도로는 다시 말라붙고,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아진다. 하지만 우리의 통신망은 여전히 상처를 입은 채 천천히 회복된다.

그 불편 속에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인터넷이 멈춘다는 건, 곧 우리의 일상이 멈춘다는 뜻’이구나.


비바람은 자연의 일이다. 그러나 매번 같은 문제로 불편을 겪는다면, 그건 이제 사람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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